오늘은 1년 24 절기 중 스물두 번째에 해당하는 동지(冬至)다. 용어상으로 보면, '겨울에 다 달았다'는 뜻이다. 24 절기 중 남은 것은 이제 '추움'을 의미하는 소한(小寒)과 대한(大寒)뿐이다. 24 절기는 태양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설정한 것이다. 농업을 위주로 했던 인류가 자연의 순환에 대나무 마디처럼 의미를 부여한 지혜의 산물이다.
사실 이 태양계의 자연주기에 따라 설정한 절기에 맞춰 달력의 월도 맞춰서 절기가 시작하는 입춘을 한 해의 시작인 1월로 했으면 헷갈리지 않았으련만 한번 정한 기준은 불편함에도 감수하게 만든다. '그렇게 하자'라고 합의하여 만들었기에 그렇게 따를 수밖에 없다. 기준이라는 것이 이렇게 엄중하다.
그렇다고 24 절기가 음력이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 태양의 움직임을 따라 설정한 양력 기준이다. 그래서 24 절기는 한 달에 두 개씩 월초와 월말 경에 들어가 있다. 12월에 대설과 동지가 들어가 있고 1월에 소한과 대한이 들어가 있다. 우리가 명절이라고 하는 설이 음력 날짜를 따르기에 절기와 헷갈릴 뿐이다.
밤이 가장 길다는 동지의 과학적 근거를 보자. 지구는 23.5도 기울어진 자전축을 중심으로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 이 자전축 기울기와 공전궤도에 따라 계절이 바뀌고 태양의 남중 고도가 달라지는데 동지 무렵에는 자전축의 기울기 때문에 북반구가 태양에서 가장 멀어지게 된다. 태양이 적도 남쪽 23.5도 남회귀선에 위치하는 시점이 동지다. 이때 북반구에서는 태양의 고도가 가장 낮아지고 노르웨이와 같은 북극권 이남의 특정 지역에서는 태양이 하루 종일 지평선 아래에 머무르거나, 지평선을 따라 움직이는 현상이 나타난다.
그래서 동지는 지구의 기울어진 자전축과 공전 궤도 때문에 북반구가 태양으로부터 가장 멀어지는 지점에 놓여 태양빛을 가장 적게 받는 날이다. 그렇다고 동지가 해가 가장 늦게 뜨는 날이라거나 가장 일찍 지는 날이라는 오해는 금물이다. 실제로 서울기준으로 일출시각은 1월 초순이 동지보다 늦고 일몰시간은 12월 초순이 동지인 오늘보다 이른데 이는 일몰과 일출 시각이 지구 공전궤도의 찌그러진 이심률뿐만 아니라 지구 자전축의 기울기와 위도 모두 작용하는 균시차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즉 동지가 일출시각이 가장 늦고 일몰시각이 가장 이른 날은 아니지만 일출시각의 변화와 일몰시각의 변화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동지가 하루 전체의 밤 길이를 따지면 가장 긴 날은 맞다.
동지는 밤의 정령이 지배하는 정점이다. 내일부터는 서서히 태양의 시간을 늘릴 것이다. 태양의 힘은 낮의 정령이 최고치에 이르는 하지를 향해 달려간다. 동지와 하지의 낮길이 차이는 무려 5시간 정도나 된다. 동지 때 일출은 아침 7시 43분, 일몰은 17시 17분으로 9시간 34분이 낮시간이고, 하지 때는 일출이 아침 5시 11분이고 일몰이 19시 57분으로 14시간 46분이 낮시간이다.
동지를 인문의 시선으로 바라본 백미가 있다. 황진이의 시조 '동짓달 기나긴 밤을'이다.
"冬至ㅅ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버혀 내여
春風 니불 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 님 오신 날 밤이여든 구뷔구뷔 펴리라"
"야지반(夜之半) - 깊은 밤
절취동지야반강(截取冬之夜半强)
춘풍피리굴번장(春風披裏屈幡藏)
유등무월랑래석(有燈無月朗來夕)
곡곡포서촌촌장(曲曲鋪舒寸寸長)"
동지에 대한 에로티시즘 표현의 극치가 아닐까 한다. 한시로 쓰인 것과 한글 시조로 쓰인 것 중, 어느 것이 원문인지는 모르겠으나 한시 세 번째 문장 칠언절구를 보건대 에로티시즘을 완곡한 표현으로 순화시킨 것을 보면 한글 시조는 번역본일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물론 해석의 시선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말이다. 어찌 됐든 황진이 시는 동짓날 밤의 길이를 끌어다 쓴 사랑 표현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과학의 시선이든 인문의 시선이든 동지인 오늘의 시간은 이렇게 시간의 정령이라는 현상에 매몰되어 있다. 흐른다는 것이다. 아니 자연은 그대로인데 인간의 시간만이 흐를 뿐이다. 그것도 100년이라는 한정된 시간 속에서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이, 자연의 시간을 눈치채고 알아내서 이정표로 남긴 시간이다. 밤의 길이가 제일 긴 오늘 밤, 어둠의 시간에 사색의 범위를 넓혀보자. 내일부터는 점점 밤의 시간이 짧아져 잠잘 시간도 줄어들 테니 말이다. 어둠은 오늘로 끝이다. 태양의 시간으로 들어갸야 한다. 충전의 시간에서 일어서, 그 에너지를 활력의 시간으로 바꿀 때가 왔다. 바로 오늘이 기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