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무계획이 계획이다

by Lohengrin

'휴일에는 아침글을 안 쓴다'라는 것이 나름대로의 규칙입니다만 오늘은 2026년의 새해 첫날인지라 예외적으로 자판과 마주해 봅니다. 가끔은 정해진 길을 벗어나 오솔길 걷듯 나서보면, 생경한 풍경과 만날 수도 있고 우연히 앞에 오는 사람이 아는 얼굴일 수도 있는 그런 행운으로 다가오기도 하니까요.


항상 그렇지만 새해 첫날은 늘 새로운 다짐을 하는 것으로 시작하지요. 휴대폰 달력에 잊지 말아야 할 기념일들을 이정표 깃발 세우듯 적어 놓습니다. 지난해 달력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혹시 음력 날짜로 표기한 것도 있는지 중복확인을 합니다.


그런데 적어놓을 날짜들이 몇 개 안 되고 있음에 흠칫 당황하게 됩니다. 가족들 생일이야 무의식 중에도 튀어나오는 날짜이지만 그것조차 날짜 표시를 해봅니다. 그리고 미리 통보된, 가까운 친구들의 자녀 결혼 예정일도 서너 건 이미 적혀 있고, 1월부터 시작하는 강의 스케줄이 3월까지 표시되어 있습니다. AI 강의와 자연과학 공부 강의로, 듣는 강의도 있고 하는 강의도 있어 나름 1/4분기 일정의 얼개들이 짜여 있습니다. 그리고는 그 이후의 다른 날들은 온통 흰 여백의 나날입니다. 주로 일정표의 흔적을 채우던 골프 부킹 일정들이 하나도 없음을 알게 됩니다. 아직 월례회 일정들이 나오지 않은 이유도 있겠지만 그만큼 사회적 연결망에서 제외되고 있음을 직감하게 됩니다.

골프 부킹 일정이 전무하다고 해서 서운하거나 소외당한다는 생각은 전혀 안 듭니다. 오히려 '잘 됐다'라는 생각이 앞섭니다. 물론 그 기저에는 골프비용이 만만치 않은데 경제적 수입을 연금에 의존해야 하는 현재 통장 현실과 맞닿아 있어서 그런 듯하기도 합니다. 지난해 골프 일정을 뒤적여 봅니다. 23회 출격을 했더군요. 정년퇴직을 하고 빈둥거리는 백수가 심심할까 봐 여기저기서 불러줬습니다. 그래도 작년 골프 일정을 보니, 주말보다 주중에 스케줄들이 주로 적혀 있습니다. 눈탱이 맞는 주말 골프에서 그래도 저렴한 주중 골프로 전환을 했던 것입니다. 올해도 주중 골프들이 틈틈이 잡혀서 필드를 다니겠지요. 그렇지만 예전처럼 어디 필드 나갈 일 없나 두리번거리거나, 저렴한 골프장 부킹해놓고 같이 갈 동반자 찾아 헤매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2026년 올해는 무엇을 할까를 계획하기보다는 무엇을 안 할까를 더 염두에 두는 듯합니다. 그렇잖아도 지난달부터 신년 계획을 어떻게 짤지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 한편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큰 일을 벌이고 공부 스케줄을 짜는 것은 아닙니다만, 평생직장생활에서 습관화된 루틴이어서 그런가 봅니다. 그러다 불현듯, 무얼 할까 고민하는 모습이 초조해 보이는 듯했습니다.


"왜 굳이 시간에 각을 잡아 놓으려고 하지? 그냥 다가오는 대로 마주하고 해결하면 되지 않나? 시간의 관리자는 나인데 왜 초조해하지? 오늘 아니면 내일 하면 되고, 당장 결과물을 내놓아야 할 이유도 없는데"라는 생각이 미치자 내려놓게 됩니다.


"그래! 그냥 닥치면 해"


당연히 미리 계획하고 준비하고 해야 시간을 잘 쓸 수 있음도 압니다. 그렇게 해야 나중에 어떤 결과물을 손에 쥘 수 있음도 압니다.


하지만 60대 중반으로 다가가고, 정년퇴직을 해서 시간을 오롯이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조건에서는, 서두르거나 계획하지 않아도 충분히 버티고 살아낼 수 있는 여유가 있음도 알게 됩니다.


말은 아무 계획도 안 잡는다고 하면서도 분명 무언가 실행하고 있을 것임을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출발은 그냥 무계획으로 가보렵니다. 이제는 정해놓은 목표의 산이 없어도 됩니다. 그냥 무소의 뿔처럼 천천히 앞으로 가보렵니다. 자신감과 활력만 있으면 됩니다. 그 근간은 건강입니다. 몸에 힘이 있고 생기가 있어야 합니다. 아무 계획이 없거나 혹은 있거나의 밑바탕은 바로 건강에서 시작됩니다.


사실 무엇을 할 것인지는 정해져 있습니다. 만나보시고 실행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같이 힘차게 출발해 보시지요. 2026년의 시작, 첫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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