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평과 공정을 판단하는 최종 의사결정기구가 법원이다. '그렇게 하자'라고 규정과 규칙을 법으로 명문화시켜 놓고 다툼을 종결하는 최종 수단으로 삼는다. 그 결과에 반대 의견을 가질 수는 있지만 불복할 수는 없다. 법원의 판단에 따르자고 구성원들이 합의를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판결에 불만이 있을 수 있으니 삼세번의 기회를 준다.
세상의 모든 법들이 완벽할 수는 없다. 무한대의 우연 확률 속에서 만들어지는 인간사인데 그 무한대 확률을 다루는 것도 역시 인간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법은 그 무한대의 인간사에서 벌어지는 현상 하나를 다루는 일이다. 그래서 '법 기술자'들이 교묘한 화술과 미꾸라지 변신술로 법 조항의 행간 사이를 이리저리 넘나드는 술수를 부리는 야바위꾼이 되기도 한다. 그 영악한 술수가 전대미문의 황당한 내란 사건 재판 과정을 보면 그대로 드러난다.
판사를 했다는 놈이 증인 선서를 거부하기도 하고 묵비권도 권리라고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라고 한다. 법기술의 최정점이자 '아는 놈'들이 어떻게 법을 이용해 처먹는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민낯이다. 그래도 벙어리가 된 줄 알았더니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라는 말은 한다.
전대미문의 황당한 쿠데타를 주도하고 가담했던 인물들에게 하나씩 형량이 구형되고 선고되는 과정의 판결문을 보면서 가끔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용어와 문장들도 있다. 법전의 문구들은 정확한 묘사가 생명이다. 그래서 뜻과 의미를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한자 표기 단어가 많다. 소리를 문자로 표기하는 한글로 담아내기에는 애매한 의미를 한자는 명확히 전달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중에 지난번 내란 주범 체포방해죄 1심 선고 시에 구형량보다 절반이나 형량을 줄어 선고를 하면서 쓰인 용어 중에 "정상을 참작하여"라는 문구가 있다.
'정상을 참작'한 사유로 "허위 공문서 작성 범행에 적극적으로 주도하거나 확정적 계획 아래 범행을 했다고 보기 어려운 점, 형사처벌 전력이 없는 초범인 점"을 들었다.
전대미문의 사건이니 당연히 처음 벌어졌고 이 사건 당사자는 당연히 초범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정상을 참작하여 양형조건에 반영을 했다고 명시하고 있다. 의례적으로 판결문을 작성하다 보니 적힌 문구로 보인다.
그렇다면 판결문에 적힌 "정상을 참작"했다는 뜻과 의미는 무엇인가?
먼저 판결문에 적시된 정상은 '뜻 정(情) 자에 형상 상(狀)'자로 "있는 그대로의 사정과 형편"이라는 단어다. 법률 용어로는 "구체적 범죄에서 구체적 책임의 경중에 영향을 미치는 일체의 사정"을 말한다. 법률 용어가 아닌 일반 언어 속의 정상은 '특별한 변동이나 탈이 없이 제대로인 상태'를 뜻하는 '正常'도 있고 산의 꼭대기를 일컫는 '頂上'도 있다. 동음이어로 용어의 혼선이 있어 주의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럼 참작은 무슨 뜻인가?
참작(간여할 參, 따를 酌)은 "여러 가지를 합하여 양을 조절하다"라는 의미로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정도, 길이, 기간, 분량이나 양형 등을 조절하거나 조정한다"는 뜻이다. 본래 참작(參酌)은 "상대방의 주량을 헤아려 술을 알맞게 따라주는 것인데 법률 용어로는 범죄 행위에 대한 인정상 정서나 상황을 참고하여 결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헤아려 판단하거나 결정할 때 쓰는 용어로는 '고려(考慮)하다'와 '감안(勘安)하다'도 있다. 이 단어들은 쓰이는 맥락과 판단 성격에 따라 조금씩 용례가 다르다. '고려하다'는 "판단 결정 계획을 세울 때 관련 요소를 생각에 넣어두다"라는 의미이지만 '어떤 요소를 판단 과정에 포함하다는 의미일 뿐 그것을 적극적으로 조정하거나 반영한다'는 뉘앙스는 약하다. 반면 '감안하다'는 "여러 사정, 자료, 수치를 면밀하게 조사 검토한 뒤 판단에 반영한다'는 뜻이다. 즉 단순한 고려가 아니라 전문적, 정책적 판단의 근거로 삼는 행위를 말한다.
단어에 따라 비슷한 의미를 갖지만 문틈의 아구가 맞듯이 정확한 용례가 있다. 단어와 용어 선택의 엄중함이 그만큼 중요하다.
'초범'이라는 단어가 누구에게, 어디에 쓰이느냐에 따라서 다가오는 뉘앙스가 확연히 다르다. 나라를 뒤엎을 사건을 저지른 초범은 그냥 초범이 아니다. 배가 고파, 시장에서 호빵 하나 훔쳐먹은 초범과는 격이 다르다. 나라의 운명이 뒤바뀔뻔했다. 초범이라는 용어가 정상참작용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되는 내란이다. 아직 최종 법률적 상황이 종료되지 않았으니 내란이 아니라고 우기기도 한다. 법기술자들의 말장난일 뿐이다. 온 국민이 생중계로 다 봤다. 총 든 군인의 모습을. 그것을 쿠데타라 한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리려한 초범의 정상참작은 끼어들 틈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