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일상을 잘 영위한다는 것을 사회적 성취나 관계의 원만함에서 찾곤 한다. 하지만 일상의 가장 밑바닥에는 ‘신체’라는 거대한 실체가 자리 잡고 있다. 몸을 잘 관리해서 잘 쓴다는 것, 그것이 일상의 기본값이다. 그리고 이 신체를 목적에 맞게 움직이는 행위를 우리는 ‘운동(運動; Exercise)’이라 부른다.
사전적 정의로 운동은 건강 유지와 증진을 목적으로 몸을 움직이는 일이지만, 생명사적 관점에서 운동은 그보다 훨씬 근원적인 의미를 지닌다. ‘살아있다’는 것은 결국 움직인다는 뜻이다. 움직임은 살아있는 존재가 내보이는 가장 정직한 증표다. 이 움직임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 몸을 구성하는 약 10조 개의 세포들을 들여다봐야 한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단일한 개체가 아니라, 10조 개의 세포가 유기적인 군체를 이루어 만들어낸 거대한 생태계다. 우리가 느끼는 사랑과 눈물, 웃음과 대화, 심지어 인류사에 기록된 증오와 전쟁, 평화조차도 사실은 이 세포 군체가 생존과 번영을 위해 일으키는 고차원적인 화학반응이자 상호작용의 결과물일 뿐이다. 생각을 하는 인간이 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단위, 그 세포들의 일사불란한 움직임이 곧 ‘나’라는 존재를 구성한다.
가끔 이 움직임의 대표 명사인 '운동'을 하면서 드는 의문이 있었다. 나는 집 근처 조깅코스를 3개 정도 짜놓고 움직이고 있다. 지금은 추워서 실내 피트니스센터 트레드밀 뛰는 것으로 장소를 옮겼지만 말이다. 조깅을 하거나 근력운동을 하면서, 문득문득 드는 의문이 바로 "지금 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뛰고 있지?"라고 하는 것이다.
치매에 걸리지 않으려고? 건강을 유지해서 병원비 아끼려고? 땀 좀 흘리고 샤워하면 느끼는 개운함 때문에? 러너스 하이 중독의 유혹에 빠진 브레인을 달래려고?
뛰고 걷고, 푸시업 해가며 가빠 키우는 노력을 해봐야, 사실 일시적인 몸의 건강 유지에 지나지 않음을 알고 나면 허탈해진다. 일상에 치어 열흘정도 조깅을 하지 않다가 다시 뛰어보면 확연히 느낀다. 다리 근력이 다르고 호흡도 가빠진다는 것을.
바로 몸뚱이가 가진 신체적 한계이자 효율성에 특화된 기능 때문이다. 근력을 키운다고 근육이 무작정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각자의 신체 사이즈에 맞게 최적화된 몸의 항상성이 따로 있는 것이다. 그것은 유전적으로 타고난 형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매일 다시 운동화 끈을 매는 이유는 운동이 미래를 위한 저축이 아니라, ‘현재를 위한 축제’이기 때문이다. 운동의 진정한 본질은 언제 올지 모를 미래의 건강을 담보 잡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뛰는 그 순간의 거친 호흡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일이며, 내 몸 안에서 벌어지는 거대한 에너지 순환의 결과물인 땀방울을 통해 ‘내가 지금 여기 살아있음’을 세포 단위로 감각하는 일이다.
냉정하게 말해, 우리가 가슴 근육을 키우고 허벅지를 단단하게 만드는 노력은 일시적인 유지 보수에 지나지 않는다. 생명체는 놀라울 정도로 효율성에 특화되어 있다. 일상에 치여 단 열흘만 조깅을 쉬어도 몸은 즉각 반응한다. 다리 근력은 눈에 띄게 약해지고, 조금만 뛰어도 폐부는 찢어질 듯 가빠온다. 우리 몸은 쓰지 않는 에너지를 저장하지 않으며, 필요 없다고 판단되는 근육은 가차 없이 솎아낸다. 이것이 바로 신체가 가진 한계이자, 생존을 위한 최적화 전략이다. 유전적으로 타고난 형질과 각자의 신체 사이즈에 맞게 설정된 ‘항상성(Homeostasis)’의 벽은 그만큼 높고 견고하다.
생명은 매 순간 만들어지고 매 순간 소멸하는 동적인 현상이다. 에너지는 넘쳐도 독이 되고, 부족해서 고갈되면 역시 독이 된다. 적당한 선을 유지하며 외부 환경에 대응하는 생명의 항상성은 우주의 질서만큼이나 엄중하다. 인간은 지구상의 생명체 중 유일하게 미래를 현재로 당겨 살 수 있는 종이다. 우리가 오늘 흘리는 땀은 내일의 나를 결정짓는 설계도와 같다. 지금 이 순간 내 몸의 모든 기관과 근육이 함께 공진화(Co-evolution)하며 움직이고 있음을 지켜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존재의 경이로움을 체험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운동은 뇌를 맑게 하고 정신을 깨운다. 근육의 움직임은 뇌신경세포 성장인자(BDNF)의 분비를 촉진하며 우리의 인지 기능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해 준다. 결국 운동은 몸뚱이를 가꾸는 일을 넘어, 나라는 존재의 사유 능력을 보존하는 행위다.
지금 하루의 시작이 찌뿌둥하거나 머릿속이 멍하다면, 그것은 세포 군체가 정체되어 있다는 신호다. 거창한 계획은 필요 없다. 지금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맨손 체조를 시작하거나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근육의 결을 느껴보라. 현재 내 몸의 상태를 정직하게 체크해 보는 것에서부터 ‘삶’은 다시 시작된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연일 강추위로 바깥이 추우니, 피트니스 센터로 달려가 트레드밀 위에 올라서자. 벨트의 속도에 맞춰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할 때 비로소 깨닫게 될 것이다. 나는 10조 개의 세포가 응원하는 거대한 생명의 오케스트라이며, 이 움직임이야말로 내가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존재 증명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운동화 끈을 묶는 행위는, 오늘 하루도 뜨겁게 살아내겠다는 나 자신과의 가장 경건한 약속이자 내가 '살아있음'을 확인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