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이 승리한다는 신화의 종말

by Lohengrin

우리는 아주 오랫동안 생명의 시작을 '치열한 전쟁터'로 묘사해 왔다. 수억 마리의 정자가 단 하나의 목표물을 향해 전력 질주하고, 그중 가장 빠르고 강한 '승자'가 난자라는 고지를 점령한다는 서사다.


이 '정자 경쟁(Sperm Competition)' 모델은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이라는 근대 진화론의 프레임과 완벽하게 맞물리며, 마치 남성 중심적인 경쟁 사회가 자연의 섭리인 양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의 분자 생물학은 이 오래된 신화에 반기를 든다. 생명은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받는 것이며, 투쟁의 결과가 아니라 '동의와 일치'의 산물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난자는 정적인 존재가 아니다. 난자는 자신이 원하는 정자를 능동적으로 고르는 세심한 '큐레이터'다. 난자와 이를 둘러싼 난포액(Follicular Fluid)은 특정 화학 신호를 방출하여 정자를 유인하는데, 이를 '화학적 유인(Chemoattraction)'이라 부른다.

2020년 스톡홀름 대학교와 맨체스터 대학교 연구진은, 난자를 둘러싼 난포액이 모든 정자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실험결과, 특정 여성의 난포액은 특정 남성의 정자를 다른 남성의 정자보다 약 18% 더 강력하게 끌어당겼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난자가 반드시 현재 파트너의 정자를 선호하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는 의식적인 사랑과는 별개로, 생물학적, 분자적 수준에서 서로의 유전적 적합성을 판별하는 '분자적 호감(molecular attraction)'이 작동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더욱 경이로운 것은 난자의 '거부권'이다. 미국 퍼시픽 노스웨스트 연구소 등의 발표에 따르면, 난자는 특정 유전 조합을 가진 정자가 도달했을 때 이를 의도적으로 거부하거나 수용하는 '유전적 편향'을 보인다. 멘델의 유전 법칙에 따르면 자식에게 유전자가 전달될 확률은 50:50이어야 하지만, 난자는 자신의 유전체와 결합했을 때 가장 건강한 후손을 만들 수 있는 정자를 능동적으로 개입해 선택한다.


정자가 난자 표면에 도달했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난자의 표면 단백질과 정자의 수용체가 결합하는 과정은 정교한 '열쇠와 자물쇠' 관계와 같다. 아무리 빨리 도착한 정자라 할지라도, 난자가 가진 자물쇠에 맞는 열쇠의 분자 구조를 갖추지 못하면 결코 수정의 문을 열 수 없다. 결국 생명은 압박이 아니라 '끌림'이 있는 곳에서 시작된다. 정자는 싸우는 것이 아니라, 문을 두드릴 뿐이다.

이러한 세포 수준의 메커니즘은 성체가 된 동물의 세계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공작새의 화려한 깃털, 사자의 갈기, 그리고 인간 남성들의 온갖 감언이설과 능력 과시는 결국 단 하나의 목적, '선택받기 위함'으로 귀결된다.


"하늘의 별을 따다 주겠다"는 터무니없는 약속이나, 경제적 능력을 과시하는 허세는 사실 정자 시절부터 각인된 DNA의 처절한 몸부림이다.


자신이 가장 빠르기 때문이 아니라, 상대방의 기준에 가장 '적합한 존재'임을 증명해야만 생존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상 모든 구애 행위는 사실 난자의 선택을 받기 위한 정자의 '분자적 신호'가 사회적 행동으로 확장된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흔히 인생을 경쟁이라 말하지만, 생명의 기원은 우리에게 다른 메시지를 던진다. 생명은 승자가 독식하는 전리품이 아니라, 두 존재의 완벽한 일치와 동의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허락되는 신비다. 가장 빠른 놈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가장 맞는 놈이 선택받는 세계가 생명 존재의 현장이다.


어쩌면 우리가 삶에서 추구해야 할 가치 또한 타인을 이기고 앞서 나가는 '속도'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혹은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존재가 되는 '적합성'에 있는 것은 아닐까. 세상의 모든 남성들이여, 그리고 경쟁에 지친 사람들이여. 자만할 것도, 좌절할 것도 없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엄격한 선택과 간절한 끌림을 통해 이 세상에 온 '가장 적합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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