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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Aug 10. 2020

빗소리가 매미소리를 대체한 여름을 보내다

예전 같으면 여름의 절정일 시기입니다. 폭염으로 달구어진 아스팔트의 신기루가 지면을 장식하고 있을 그런 때 말입니다. 학교와 직장이 방학을 하고 휴가에 들어가 있을 겁니다. 그런데 올해는 장맛비가 폭염을 대신합니다. 덥지 않아서 좋을지 모르지만 계절에는 항상 때가 있습니다. 그때에는 반드시 그것이 이루어지고 발생해야 흐름에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때를 잘못 맞추거나 이루어지지 않으면 순환에 문제가 생깁니다. 당장 오랜 장마로 인해 농작물에 피해가 오고 있음은 시장의 채소 가격 상승으로 다가와 있습니다. 과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벌써 추석 제사상에 올릴 과수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때를 안다는 것은 자연에게 있어서도 그만큼 중요합니다. 중요함에도 우린 그저 당연한 것으로 치부하고 무시하며 살아왔을 뿐입니다.                                                                                                                                                            

한여름은 저 비가 아니라 태양이 지배해야 맞습니다. 한여름의 비는 지나가는 소나기처럼 왔다 가면 족하는 수준이면 됩니다. 태양의 계절인 여름이 중요한 이유는 에너지의 극대화 시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최고조로 달한 에너지는 곧 기울 것이기에 그때가 최고일 때 최대한의 에너지를 축적해 놓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지나치면 과유불급이긴 합니다. 최고의 균형을 유지하는 게 정답입니다.

그 최고의 정답 중 하나가 바로 온도의 유지입니다. 온도가 바로 생명을 좌우하는 바로미터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태양계 골디락스 존에 위치한 덕에 이 최고 기온은 바로 지구 생명체 생존활동의 최고점과도 연결됩니다. 온도가 높다는 것은 에너지도 그만큼 최고점이라는 소리입니다. 그래서 최고로 더운 여름날은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생명활동도 최고조로 달하는 날입니다. 최고로 에너지를 흡수하기도 하고 최고로 저장하기도 합니다.


이 절정의 여름은 어떤 색과 소리로 최고의 날임을 표현할까요? 이글이글 아지랑이 속에 신기루처럼 환상을 보여줄까요? 극한의 더위로 하얗게 변한 빛의 향연을 들려줄까요? 요즘 같은 장맛비 속의 물안개는 여름을 대표하는 색과 소리가 아닌 것만은 분명합니다.


계절별로 어떤 색과 소리가 들리고 어울리는지 궁금해집니다. 


봄은 역시 노란색입니다. 봄을 시작하는 색으로 진달래, 목련, 산수유, 벚꽃 등 도 있지만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개나리의 색상이 가장 먼저 각인되기 때문입니다. 봄을 맞이하는 순서도 개나리는 다른 봄꽃보다 조금 늦기도 하지만 만날 수 있는 빈도수에 있어서는 단연 으뜸이어서 그런가 봅니다.


여름

여름의 색은 짙은 초록입니다. 색깔도 숙성됩니다. 연한 색에서부터 점점 짙어져 나중에는 검푸르게 되는 완숙에 이르기까지 뜨거운 여름의 색깔은 짙어진 산하의 초록이 아닐까 합니다.


가을

가을의 색은 역시 황혼의 색인 갈색입니다. 완숙미를 너머 종결을 향해 치닫는 색입니다. 더 이상 이 세상에 바랄 게 없어 모두 다 주고 홀가분하게 떠나는 고승의 뒷모습처럼 가을은 그렇게 인생을 알게 하는 색깔로 자리합니다.


겨울

겨울은 회색입니다. 흰색으로 대변되는 눈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흰색보다는 회색이 더욱 가깝지 않나 생각됩니다. 숨 가쁘게 달려온 지난 계절을 쉬게 하는 정점이기에 눈에 띄지 않고 조용히 침잠하게 하려는 배려라고나 할까요 흰색은 너무 희어서 감히 손댈 수 없을 것 같은 경외감이 있지만 회색은 자유스러움이 있습니다. 차가움 속에 접해있는 경계선의 색이기에 부담 없이 풀어놓을 수 있는 색입니다.

한편 계절 하면 들리는 소리가 있을 겁니다. 그럼에도 소리를 떠올려 계절과 맞춰보려고 하면 마땅히 짝이 맞는 소리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여름과 가을을 빼고는 말입니다. 여름은 역시 매미소리이며 가을은 또한 귀뚜라미 소리입니다. 그럼 봄의 소리는? 겨울의 소리는? 봄에 나무에 물오르는 소리를 듣기는 쉽지 않고 겨울에 눈 내리는 소리를 듣기 역시 쉽지 않습니다. 왜 어떤 계절은 소리와 연계가 되고 어떤 계절은 안 되는 것일까요?


소리에 대한 학습이 없었기 때문일 겁니다. 소리라는 것은 언어적 표현이 아니라 오감 중의 하나인 청각을 통해 전달되는 외부 자극입니다. 수정란의 생명이 형체를 갖추기 시작하고 오감을 형성할 때 가장 먼저 생성되는 것이 후각 세포라고 합니다. 그리고 청각, 시각 세포 순으로 만들어집니다. 생존의 경쟁력 중에서 가장 중요한 오감 중의 하나입니다.


그 최상의 경쟁력을 발휘해보아도 봄과 겨울의 대표 소리를 찾기에는 역부족인 것 같습니다. 꽃피는 봄 산야에 알을 품고 있는 종달새 소리일까요? 눈 쌓인 가지가 툭툭 부러지는 소리일까요? 개개인이 생각하는 계절의 소리는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개개인이 속한 공동체 공간이 인정하는 계절의 소리가 없다는 것은 그 사회가 그만큼 관심을 갖지 않았다는 것이며 문학적으로도 공감대를 갖지 못했다는 의미입니다.


소리 하나를 표현하는 것조차도 바로 그 공동체의 공간적 의미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입니다. 개인의 존재를 정의할 때 가장 중요한 공간적 의미가 소리에도 적용된다는 뜻입니다. 지구라는 행성에서 대한민국이라는 대지위에 서울이라는 공간, 그리고 각자 위치한 지역과 가족에 이르기까지 온갖 공간들이 존재하는데 이 공간이 개인의 방향을 정하는 것입니다.


아프리카 사막에서 태어났다면 물을 찾아 수십 킬로미터를 걷고 있을 것입니다. 치열히 전쟁 중인 분쟁지역이라면 하루하루의 목숨을 연명하는 있을 것입니다. 처음의 그 공간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집니다. 바로 운명이라고 표현합니다.


잠시 비 내림이 소강상태에 빠진 틈에 들리는 매미소리는 그래서 이 한여름의 운명이었던 것입니다. 절기상 이미 지난주에 입추를 지났습니다. 시간의 추는 그렇게 차면 기울고 기울면 차는 순환의 사이클을 따라 돌고 돕니다. 화살처럼 앞으로 나가면서도 스스로 도는 운명이기에 벗어날 수 없는 순환을 살게 됩니다. 계절의 색과 소리가 반복해서 찾아오고 그 반복을 인지하는 우리의 운명처럼 말입니다. 받아들일 일입니다. 들리는 데로 보이는 데로 듣고 보다 보면 자연의 순리도 들리고 보이게 됩니다. 밖의 저 빗소리 조차 그대로 받아들일 일입니다. 곧 잦아들어 태양빛에 훌훌 하늘로 올라갈 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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