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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Aug 11. 2020

관찰자의 시각

언제쯤 아침 글에 '비'이야기가 빠질까요? 이번 주면 끝낼 수 있을까요? 이렇게 빗속에서 한 계절을 다 보내고 새로운 계절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여름이라는 단어가 없어지고 장마로 대체된 해'로 기록될 듯합니다. 봄, 장마, 가을 겨울로 말입니다.


하지만 가만히 침잠해보면 이렇수 도 있는 것이 자연입니다. 모든 것이 가능한 상태가 자연입니다. 지구 역사 46억 년의 흐름 속에 한 달 지속된 장마는 그저 아무런 흔적조차 없는 그런 현상입니다. 그 안에 빠진 인간의 간사한 근심과 걱정만 있을 뿐입니다. "비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너무 많이 내렸다"는 것은 오로지 인간의 관점입니다. 자연은 1,000mm가 내리던 10,000mm가 내리던 내릴 수 있고 감당할 수 있습니다. 홍수다 범람이다 라는 표현조차 인간의 언어이자 인간의 생활권으로 넘어 들어온 물의 이야기입니다. 자연에서의 물은 그저 중력이 이끄는 데로, 상선약수의 힘으로, 낮은 곳으로 내려갈 뿐입니다. '물길'은 물이 내려가는 길인 것입니다. 막고 쌓고 길을 낸 것은 오직 인간만이 행해왔던 자연의 거스름이었을 뿐입니다.

인간만이 변화에 예민합니다. 한 달 정도 비가 내렸더니 비가 세상을 지배합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밖에 비가 오는지가 우선 관심사고 출근하는 길 중에 침수된 도로는 없는지, 전철은 제대로 다닐 수 있는지 먼저 신경 쓰게 됩니다. 바로 인간에게 변화는 삶의 경계를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이기 때문입니다. 변화는 이전과 다른 현상입니다. 다르다는  것은 나에게 어떠한 영향을 줄지 예측할 수 없다는 겁니다. 예측할 수 없기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관심을 가져야 어떻게 변화할지 관찰해 대응할 수 있는 여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밖의 저 비는 예전과 다른 현상이자 변화입니다. 예의 주시하는 까닭입니다. 살아내고 견뎌내기 위한 방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물의 세상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이 벌써 가을이라는 단어도 슬그머니 한치 옆을 지나갔음을 뒤늦게 알게 됩니다. 지구의 자전축이 기울어져서 발생하는 계절의 등고선은 그렇게 어김없이 다시 계절을 만들어 냅니다. 무한대의 상태변화 연속 속에 선택해 나가는 것이 새로움의 정의라고 할 때 부딪히는 모든 상황이 새로움인 것은 계절에도 반영되는 진리입니다.


우리는 시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시간의 굴레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 바로 적용되는 현실로 받아들입니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는 양자역학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존재하는 이 현실에서도 적용되고 있습니다. 다만 그렇게 해석하지 못할 뿐입니다.

그럼 과연 시간이란 벗어날 수 없는 그런 것인가? 빅뱅 이후로부터의 137억 년도 시간의 방향성을 기본으로 하고 지구 역사 46억 년도 마찬가지입니다. 현대 과학이 밝혀낸 인지의 시간 한계입니다.


하지만 우주에는 위도 없고 아래도 없고 바깥도 없고 안도 없습니다. 우주에서는 모든 점이 중심입니다. 우주에는 '영원'만이 존재합니다. 한번 움직이면 영원히 같은 방향으로 같은 속도로 움직입니다. 우주의 본질입니다. 그렇다면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인간의 착각일 수 있습니다. "태어나고 나이 들고 병들고 죽는데 시간이 안 흐른다고???" "뭐 이런 궤변이 있지!"라고 할 수 있으나 이것은 '관찰자의 순간'이 보는 현상에 대한 언어적 이해일뿐입니다. 생명체는 무한대의 이벤트 다발들이 엉겨 붙어 겨우 100년을 형태 속에 갇혀있다가 다시 풀어내는 현상일 뿐입니다. 나 이듬이 있고 늙음이 있다는 시계열적 관점은 전적으로 관찰자의 상태라는 것입니다. 이 현상들을 눈치채고 수식으로 표현한 뉴턴과 아인슈타인이 위대한 이유입니다. 천체 우주 모든 것에 적용되는 일반적인 원리 F=Ma 영원한 진리가 인간을 눈뜨게 했고 우주로 나아가게 했습니다. 피부에 닿는 습기며 들리는 매미 소리며, 코끝을 스치는 하수구의 역거운 냄새까지 모든 현상에 대한 자각을 인문학적인 관념이 아니라 수학적 논리로 풀어냅니다. 태양계 너머로 우주선을 보내고 김정은이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만들었다고 깝죽거리는 것도 모두 서양의 근대 과학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들여다보면 '과학이 신'입니다. 비가 많이 내리는 이유도 북태평양 고기압의 수증기 유입량과 속도 드리고 시베리아 기단의 남하 속도와 대기의 온도 등 변수 등에 따라 기단의 정체와 이동속도까지 계산해내면 얼마나 많은 수증기가 대지로 내려올지 예측할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원인의 근본까지 접근해서 발생할 확률을 비교적 정확히 알아내는 일, 그것이 바로 관찰자의 시각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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