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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Aug 12. 2020

시간의 척도

장마가 지나고 폭염이 오겠지만 오늘 아침,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선선합니다. 비구름 속에 갇혀 있었지만 비구름 뒤편의 시간은 계속 흘렀다는 증거인 듯싶습니다. 한곳에 집중하고 매몰되어 있으면 반대편은 잘 인지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는 사이 시간의 바늘은 훌쩍 계절을 뛰어넘었는데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것은 아닌지 뒤돌아보게 됩니다. 시간의 이런 뛰어넘기를 우리는 "시간이 유수와 같이 흐른다"라고 표현합니다. 시간은 철저히 인간이 만들어 낸 개념으로 존재합니다.


우리는 시간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시간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 본적이 거의 없습니다. 137억 년 우주의 시간을 이야기하고 46억 년 지구의 시간을 이야기하지만 막연한 숫자의 나열로만 보입니다. "그런데 어쩌라고? 그 숫자가 뭔데? 137억 년 지난 것이 나한테 무슨 의미가 있는데?"라고 물으면 시간은 아무 의미 없이 흘러가는 화살과 같습니다.


결국 의미를 부여하는데 핵심이 있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일에 의미를 부여하면, 상황이 재현되고 현상을 이해하게 되며 그러면 의미를 갖게 되어 새롭고 경이로운 것으로 거듭납니다. 의미를 부여하지 못했던 과거와는 전혀 다른 것으로 재탄생하는 것입니다. 보지 못했던 것이 보이고 알지 못했던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 새로운 세계에 들어온 듯,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됩니다. 바깥의 상황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내가 부여한 의미로 인하여 같은 현상이 달리 보일 뿐입니다.

시간을 보는 시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간의 척도를 어떻게 가져가느냐에 따라 인류의 세계관과 우주관이 변해왔습니다. 척도는 재는 기준이라는 것이고 이는 비교의 기준입니다. 바로 길이가 대표적인 척도입니다. 1미터, 2미터로 표기하는 미터법 같은 것이죠. 20세기 이후 알게 된 양자의 세계에서는 시간조차 미시계로 쪼개 놓았습니다. 인간의 삶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하는 시간의 개념입니다만 수소 전자가 핵을 한 바퀴 도는 시간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미세의 척도 단위가 필요합니다. 이 미세의 척도로 환산되는 현상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아주 자연스럽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인간의 오감과 인지 범위가 미처 감지하지 못할 뿐입니다.


인간은 양자역학이 지배하는 미시계가 아니라 일반상대성이론이 지배하는 거시계에 감각을 노출하고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미시계와 거시계 속을 동시에 순환하는 사이클 속에서만 존재합니다. 에너지를 흡수하기 위한 음식은 거시계입니다. 이 음식이 위와 내장을 거치는 동안 분해되고 이온이 되어 혈액 속을 타고 돕니다. 미시계입니다. 이 분해된 나트륨, 칼슘이온이 브레인에서 생각을 만들고 사랑을 속삭이게 합니다. 역시 미시계입니다. 그 생각과 사랑이 타인이나 사물과 관계를 맺는 인과율로 이어지는 세계는 다시 거시계입니다. 인간은 한치도 이 순환 사이클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다만 연결 짓지 못하고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지구가 시속 1,600킬로미터의 속도로 자전하며 시속 10만 킬로미터의 속도로 태양의 주위를 돈다는 것조차 감지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동차를 운전하며 시속 100km만 달려도 엄청나게 빨리 달린다고 느끼게 되는데 어째서 1,600km로 움직이는 지구에 있으면서 그 속도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요? 바로 크기의 척도에서 오는 차이입니다. 같이 움직이면 속도감이 상쇄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지구라는 자동차에 타고 쏜살같이 달리지만 그 안에 있는 탑승객은 속도감을 못 느끼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하지만 이 자전 공전 속도는 우주로 탐사선을 보낼 때는 엄청나게 중요한 속도 단위가 됩니다. 다른 행성에 탐사선을 안착시킬 때의 속도와 거리 등을 정밀하게 계산해 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저 하늘로 우주선을 쏘면 행성으로 날아가는 수준이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가 1분, 1초의 시간도 소중히 여기고 정말 잘 써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1분, 1초는 태양계 행성 운행의 속도에 맞춘 시간이자 인간에게만 통용되는 숫자입니다. 지구 상 어떤 생명체도 이 인간의 시간대로 살지 않습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 시간이 흐른다는 것, 생로병사가 있다는 것, 모두 인간의 관점인 것입니다. 바로 인간만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능력으로 자연 순환의 계에 시간의 개념을 붙였습니다. 의미를 부여하고 나니 모든 것이 처음과 끝이 생기고 그 안에 삶이라는, 살아내야 하는 시간이 생겨버렸습니다. 시간은 그렇게 모든 것을 지배하는 시작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 시간을 어떻게 살아내야 할까요? 지금 이 순간, "내 인생 가장 젊은 날"을 사는 오늘,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지 알고나 있는 건가요? 사랑해야 하고 깨어 있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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