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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Aug 13. 2020

목숨을 내걸 만큼 절실했는가?

아직까지는 장마가 안 끝났다고 합니다. 빨리 물러갔으면 좋으련만 무슨 미련이 그리 많을까요? 씻어낼 것들이 그만큼 많아서 일까요? 푹푹 찌는 폭염이 이어지면 며칠 지나지 않아 비가 그리워지는 간사함으로 다시 환생하겠지요. 그래서 장마와 태풍 속을 지났을 기억을 떠올리고 다가올 뜨거움을 잊게 해 줄 그림 하나를 소개합니다.


19세기 중반 인상주의 화풍의 시작을 알렸던 윌리엄 터너가 1842년에 그렸다는 눈보라(snowstorm)라는 작품입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이 그림에는 작가가 직접 붙인 긴 부제가 있다고 합니다.


 "<눈보라 - 얕은 바다에서 신호를 보내며 유도등에 따라 항구를 떠나가는 증기선. 나는 에어리얼 호가 하위치 항을 떠나던 밤의 폭풍우 속에 있었다>"

윌리엄 터너는 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 직접 배의 돛대에 4시간 동안 자신을 묶고 폭풍우 속에 있었다고 합니다.  자연의 힘 속에 오롯이 들어가 그 위력을 경험해봐야 화폭에 진정한 그림을 표현해낼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랍니다. 폭풍우 속의 증기선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을 보게 됩니다. 증기선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의 폭풍우의 장엄한 힘을 붓터치로 묘사해내는 위대한 능력을 보게 됩니다. 과학자는 자연을 숫자로 표시하고 화가는 붓을 통해 그림으로 보여줍니다. 다른 행위지만 같은 현상을 보여줍니다.


생뚱맞게 이 아침에 그림 한 장을 놓고 들여다보는 이유는 더워지는 바깥 기온을 잠시 잊고자 하는 의도도 있지만 노트북을 열고 아침 글을 준비하면서 포털사이트를 건너오는 사이, 우연히 윌리엄 터너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이야기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2015년 1월에 개봉해 지나간 "미스터 터너"라는 영화 소개였습니다. 작가가 자기의 그림을 위해 생명을 내놓을 만큼 폭풍 속에 몸을 묶고 서있을 수 있는 자세는 과연 어떤 것인지 궁금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 열정이 후세에 까지 터너라는 이름을 남긴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전문가로 인정받는다는 것은 그만큼 목숨을 걸고 해낸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위대한 예술가는 열정을 지닌 사람의 전형입니다. 어떤 일을 함에 있어 목숨을 내놓을 정도로 절실했던 적이 있는지 되돌아봅니다. 암만 생각해도 하나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공부를 함에 있어서도 그렇고 회사 일을 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열심히 하고 노력하고 완수하려고는 했지만 목숨을 걸고 도전했던 일은 없었습니다. 전문가가 못된 이유였던 것입니다. 간절하고 절실하면 그만큼 많은 노력과 시간을 집중해서 이루어내려고 합니다. 간절하고 절실하다는 것은 이루지 못하면 죽음이자 끝이라는 의미입니다. 삶의 존재 이유를 가져야 할 절박함입니다. 그래야 이루어집니다. 그래야 전문가가 되고 예술가가 됩니다.


목숨을 내걸 정도의 시간을 지나고 버텨왔기에 전문가와 예술가가 인정받는 것입니다.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경지에 다 달아 그 현상을 표현해내고 전달해 줍니다. 한마디로 위대한 사람들입니다. 인간사회에는 이렇게 목숨을 내걸 만큼 노력하는 사람이 많아야 합니다. 그래야 일반인이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것들을 알려주고 깨우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사회가 건전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지표로 삼을 수 있습니다. 윌리엄 터너의 그림 속 증기선이 폭풍우를 뚫고 바다를 항해하여 나가듯이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현실에 등대가 되고 길이 되는 사람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주말에 영화를 다운로드하여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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