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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Aug 14. 2020

글, 언어 그리고 생각의 도구

매일 아침 글을 쓰다 보면 언어와 문자에 담겨 있는 의미와 뜻에 가끔 의문을 갖기도 합니다. 사회적 합의에 의해 형성된 의사전달체계로 정교하게 짜인 구조를 호모 사피엔스들은 본능적으로 적응하고 언어를 구사하여 본인의 의사를 표현합니다. 말과 글은 표현의 차이와 귀와 눈이라는 전달 매개만 다를 뿐 생각을 전한다는 형식에 있어서는 같은 전달체입니다.


아침인사를 터키어로 Gunaydin!이라고 쓰고 말로는 '귀나이든'이라고 읽습니다. 글자는 라틴알파벳 표기입니다. 터키는 예전에 아랍어로 표기했었는데 어려워서 라틴알파벳으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문자를 가진 민족은 정말 대단한 것이죠. 말을 글이라는 콘텐츠로 옮겨 저장을 해서 전수한다는 것, 그 위대함을 세종대왕께서 1443년 훈민정음으로 이루어내셨습니다. 하지만 말이 아닌 문자와 글로써 의사를 전달하는 도구로는 한자만 한 것이 없다는 생각입니다.

藏天下於天下 (장천하어천하 ; 천하를 천하에 감추어라) 장자 대종사 편에 나오는 말입니다.


대단한 호기입니다. 기상의 광대함이 우주 만물을 담고 있습니다. (사실 창천하어천하 표현은 여러 고사에 나옵니다만 장자는 도둑이 물건을 훔쳐갈 때 감추는 것에 대한 예를 들 때 사용한 것입니다) 말과 언어의 표현에 있어 중국사람만큼 과장법을 유효적절히 적재적소에 사용할 줄 아는 민족은 드뭅니다. 글자가 표현해 낼 수 있는 범위에 따라 그 문자 민족의 생각 폭도 정해집니다. 과장법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수용할 수 있는 표현이 많다는 것입니다. 


한자가 가지고 있는 특성 때문입니다. 우리는 한자를 흔히 상형문자라고 이해하지만 상형문자에서 진화되어온 한자는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상형문자는 실체가 없는 것은 표현할 수 없는데 한자는 소리와 뜻을 함께 가지고 있는 형성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자는 복잡한 진화를 했습니다. 기존 상형문자에서 쓰던 음을 가져다 소리가 같은 뜻의 표기로 쓰는 가차 문자도 있습니다. 한문 한 글자 한 글자가 모두 주어 동사 형용사 역할을 하는 모노시러블(monosyllable) 문자입니다. 한자는 한 글자가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母 자만 해도 어머니를 뜻합니다. 다른 언어권에서는 단어 하나가 뜻을 나타내는 문자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우리 한글은 소리글자이기 때문에 귀로 들리는 모든 소리를 문자로 쓸 수 있습니다만 뜻을 전하지는 못합니다. 반드시 그 소리를 쓴 문자의 뜻을 표기한 사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귀나이든'이라고 한글로 써놓을 수는 있으나 그 뜻은 전달하지 못합니다. 그 글자의 의미에 대한 주석을 달아놓지 않으면 무엇을 뜻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한자의 위대함은 여기에 있습니다. 2천 년이 넘은 중국 고전인 논어 장자 노자 책들을 지금도 원문 그대로 해석을 해낼 수 있습니다. 다만 모노실러블인 한자의 특성으로 인해 같은 문장을 놓고도 주어 동사 형용사 부사의 위치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는 묘한 특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문책에는 그렇게 많은 주석서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같은 원문 책을 놓고 누가 해석했느냐에 따라 문장의 묘미가 천차만별로 나타납니다.


한자의 이런 특성 때문에 고전이 그 시대에 맞게 계속 재해석됩니다. 고전이라고 옛날 책이 아니라 현재의 시간에 되살아나 현재의 의미로 다시 다가오는 것입니다. 천하를 천하에 감춘다는 진실의 메타포는 그래서 의미가 있습니다. 생각을 전하는 글의 힘은 이렇게 매일 표현되고 무한대의 전개를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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