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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Aug 18. 2020

계절과 타인의 얼굴

한 달 휴업을 마치고 새로운 마음으로 출근을 했습니다. 한 달만의 업무 복귀가 벌써 두 번째임에도 '출근한다'는 것은 새로운 긴장으로 다가옵니다. 밤새 두세 번은 깬 것 같습니다. 새벽 골프 나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샤워를 하고 어떤 옷차림을 할까 옷장 앞에서 고민을 하다 군청색 싱글 정장에 손이 갑니다. 한 달만의 출근인데 뭔가 격식을 갖춰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직장생활 30년 한 사람들에게 출근은 넥타이매고 양복 입고 구두 신고 나가야 출근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꼰대의 습성이 배어 있어서이기도 할 겁니다. 출근 복장 자유화되어 반바지 입고 출근해도 되지만 오늘만큼은 넥타이는 매지 않았지만 양복 정장을 입고 출근해야 회사에 가는 기분이 들 듯해서입니다.


그렇게 한 달 만에 출근의 기분을 장착하고 집을 나서 회사로 향했습니다. 전철역까지 걸어오는 5분여 시간 동안 그동안 잊고 있고 집중하지 않았던 소리와 냄새와 보이는 모든 것에 예민하게 뉴런들이 반응합니다. 환경은 어찌할 수 없이 주어지는 것이기도 하지만 만들어가기도 합니다.

오늘 아침 귓전으로 들리는 소리에 집중해보셨나요? 집에서 전철역까지 오는 5분여 시간 동안 귀에 들린 소리는 매미소리가 아닌 귀뚜라미 소리였습니다. 귀뚜라미는 연 1회 산란하며 불완전 변태과정을 거쳐 늦여름에서 가을까지 성충 시기를 보내다가 알 상태로 월동을 한답니다. 귀뚜라미 우는 소리는 여름의 끝이자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전령사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귓전을 지배하는 소리로 귀뚜라미가 등극을 했습니다. 매미소리를 들어보려고 찾았으나 들이지 않습니다. 오직 귀뚜라미와 풀벌레가 내는 소리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저 귀뚜라미 몇 마리가 내는 정도의 협주가 아닌 오케스트라의 소리로 연주를 합니다. 귓전에 닿은 귀뚜라미 소리가 계속 유지되는지 궁금해서 전철에서 내려 회사로 오는 출근길의 방향을 일부러 바꾸어 봅니다. 비가 오거나 날이 더울 때는 중앙선을 타고 왕십리역까지 와서 2호선을 타고 시청역까지 오는 루트를 택합니다만 오늘은 회기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고 시청역으로 옵니다. 1호선 시청역 뒤쪽으로 내리면 덕수궁 대한문 쪽 지상으로 올라오게 됩니다. 그러면 돌담길을 따라 돌아 시청 별관 뜰을 지나 회사로 올 수 있습니다. 이 루트는 서울 다운타운 내 공원 같은 지역을 통과하는 거라 제일 좋아하는 출근길 루트이기도 하지만 오늘처럼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는지를 판가름할 때도 좋은 길이 됩니다.


덕수궁 앞으로 올라오며 귀를 계속 밖으로 기울입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와 함께 매미소리가 힘껏 들려옵니다. 덕수궁 돌담길과 시청 별관 뜰을 지나오면서도 계속 귀를 기울여봤지만 매미소리의 강력함이 모든 소리를 지배합니다. 


같은 서울에 살면서도 생태계의 차이는 이렇게 많이 납니다. 온도 차이입니다. 제가 사는 동네는 그래도 서울이지만 도심에서는 벗어나 있고 뒤편으로 산도 있어 시내보다는 1~2도 정도 기온 차이가 있습니다. 작은 차이인 것 같지만 곤충의 생태계에는 아주 커다란 계절의 경계를 알리는 숫자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발붙이고 사는 대지의 움직임과 하늘에 떠있는 태양의 기울기를 어찌 거스를 수 있겠습니까? 해뜨기 전 아침이 서늘한 기운으로 휘감긴다는 것을 어찌 인식치 못할 수 있겠습니까? 해가 뜨면 무서우리만치 뜨겁게 대지를 달구겠지만 그래도 이른 아침은 찬바람이 비집고 들어온 지 며칠 되었습니다. 이 찬바람을 눈치챈 동물이 귀뚜라미였던 것입니다.


날씨의 변화와 계절의 변화를 가장 피부로 느끼고 있는 동물과 곤충들은 이미 눈치채고 있었던 것입니다. 시차를 두고 번성할 기회를 정한 생명은 최적화된 시기가 오면 어김없이 본연의 색깔들을 드러내는 것이죠. 시도 때도 없이 본성을 보이는 인간이라는 동물도 결국은 생태계의 흐름의 일부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공존해야 함을 알게 됩니다.


인터스텔라에서 처럼 인간의 유전자 쌍만 가지고 지구를 벗어나 봐야 생존할 수 없습니다. 노아의 방주처럼 지금 지구 상 모든 동식물을 데리고 가야 인간도 그 안에서 함께 생존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스스로 광합성을 하여 생존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주기율표에 있는 원소들을 합성하여 고효율의 에너지 식량을 만들어내기 전 까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지구가 평화롭도록 하는 게 최선의 방책일 수 있습니다. 힘들고 더럽다고 벗어나 봐야 생존하기는 더 힘들어집니다. 더럽혀지지 않도록 관리하고, 힘들지 않도록 서로 존중하고 협력하는 것이 서로 살 수 있는 길입니다.

자기의 얼굴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거울을 통해 보는 얼굴은 완벽히 자기 얼굴을 보는 것 같지만 왜곡되어 있습니다. 결국 자기 얼굴은 타인을 통해 들여다보게 됩니다. 타인의 마음이 내 마음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서로 공생해야 서로의 얼굴도 잘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마주 보고 있는 상대가 웃고 있으면 내가 웃고 있는 것이고 찡그리고 있으면 내가 찡그리고 있는 것입니다.


서늘해진 아침 기운을 받아 더운 낮에도 잘 버티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폭염경보가 코로나 19 경보처럼 발동되는 하루가 되겠지만 이 또한 하이젠버그의 불확정성의 원리가 적용되는 무한대의 확률 중 하나 일터이니 그대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하지만 능동적 기다림(active waiting)을 통한 수용이어야 합니다. 수동적 기다림(passive waiting)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무한대의 확률 중 가장 최적의 확률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이 동반되어야 한다는데 핵심이 있습니다. 세상은 그저 그렇게 설렁설렁 가는 것 같지만 최고의 가치를 위해 최선을 다할 때 진정한 의미로 다가옵니다. 바로 귀뚜라미 소리와 타인의 얼굴에 주의를 기울이는 이유입니다. 한 달의 휴업을 마치고 일상에 복귀하는 자세를 다잡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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