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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Aug 19. 2020

인고(忍苦)의 착각

주변에 대입 수험생을 둔 분이 계실까요? 제 주변엔 벌써 다들 자녀들이 대학에 들어갔거나 첫째 아이들은 사회에 진출해 있습니다만 늦게 결혼했거나 셋째 자녀가 있는 몇몇 친구가 수험생 자녀를 두고 있긴 합니다. 올해는 코로나 19로 대입 수험일이 12월 3일로 예년에 비해 거의 한 달 정도 미뤄져 있고 온라인 수업이 진행 중이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합니다. 한국사회에서 거쳐갈 수밖에 없는 길이기에 안타깝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저는 아이를 둘 키우면서 '무관심한 아빠'의 지조를 꾸준히 지켜온 수준이라 대입 수험생을 둔 주변인들에게 크게 조언할 것도 없습니다. 아이들이 나름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을 그저 지켜보는 정도였으니까요. 아니 오히려 아이들의 공부를 방해하지 않았나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큰 녀석 고3일 때는 수능시험장 밖에 차를 세워놓고 시험 끝나고 나오는 녀석을 태우고 하와이로 갔던 적도 있습니다. 막내 녀석 고3 때는 스페인으로 가족여행을 준비했는데 극구 안 가고 공부하겠다고 하여 3 식구만 다녀온 적도 있습니다. 여행 안 가고 공부하더니 뭐 그해에 재수를 했습니다. 결국 작년에 입학을 하고 터키를 같이 다녀오긴 했습니다.

오늘 아침에 사무실에 있는 직원 한 명이 수험생을 두고 있는데 개학을 앞두고 코로나 19가 다시 확신 분위기라 아이 학교 가는 게 걱정이라며 고3인데 잘 적응이나 하고 있는지 물어보지도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직원한테 책 한 권을 권했습니다. 고려대 허태균 교수가 쓴 '어쩌다 한국인"입니다. 출간된지는 한 5 년은 되는 것 같습니다. 한국인의 진심 확인을 심리학적 관점에서 쓴 것인데 재미있습니다.


그 책 속에 '인고(忍苦)의 착각'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한국사람들은 현재 자신이 힘들고 고생스럽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는 만큼 후일에 그에 대한 보상을 받을 거라고 믿고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인고의 착각'은 인과(因果) 혼동의 오류를 일으킨다고 지적합니다. 세상에는 고생을 한 사람들 혹은 더 심한 고생을 한 사람들이 무지하게 많은데도 성공하는 사람은 극히 일부라는 겁니다. 성공에 고생이 필요한 건 맞지만 고생한다고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또한 성공을 이루는 사람의 경우, 그들이 고생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고생의 내용이 실질적으로 성공에 도움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자녀의 시험성적을 올리기 위해 기도하고 같이 밤새 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졸고 있는 자녀를 깨워준다던지 더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준비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런 '인고의 착각'에 빠지는 것일까요? 바로 불안을 다스리는 착각적 통제감과 자신은 무조건 잘 될 거라고 생각하는 비현실적 낙관주의 때문이라고 합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본능 중의 하나가 통제의 욕구랍니다. 원하는 일은 일어나게끔, 원하지 않는 일은 일어나지 않게끔 막는 영향력을 발휘해서 환경을 통제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으려 한다는 겁니다.


인생의 수많은 일들은 본인의 의지와 노력과 관계없이 벌어지게 되는데 이를 운이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이 운을 그냥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내버려 두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마치 우리가 어쩔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이죠. 일상에서 수많은 미신적 행동들이나 징크스에 대한 믿음들도 이런 착각적 통제감을 위한 것들이고 이런 착각이 사람의 심리를 편하게 해 준다는 겁니다. 매주 로또를 사며 일등에 당첨될 거라는 착각적 통제 감도 같은 맥락입니다.

허태균 교수의 책을 읽으면, 전문가는 하나의 현상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뒤집어 보고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같은 사회, 같은 현상들 속에서 공유하고 공감하면서도 그 안에서 패턴을 찾아내 범주화를 시키고 일반적 언어로 해석을 해내는 능력이 바로 전문가의 영역입니다. 아인슈타인이 "뉴턴의 어깨 위에서 세상을 바라본다"라는 명언을 했듯이 이렇게 앞 선 자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들여다보는 행운을 누릴 수 있어 좋습니다. 사람 사는 사회에서 사람 관계를 들여다보는 인문학은 그래서 가장 현실적인 현실의 모습이 아닌가 합니다.


수험생을 둔 부모들은 시험일이 다가올수록 초조해지겠지만 사람 사는 세상에서 사람처럼 사는 모습은 저녁 퇴근길에 시원한 생맥주 한 잔 하며 세상 사는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수험생 자녀를 둔 직원과 저녁엔 시원한 맥주 한 잔 하며 인고의 착각을 떨쳐내라고 어깨를 두드려줘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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