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의 후예라 불리는 새들 중에는 이름부터 위엄 있는 '군함조(Frigatebird)'가 있다. 학명은 Fregata ariel이며, 영어 이름인 '프리깃(Frigate)'은 과거 돛을 단 쾌속 군함인 '호위함'에서 유래했다.
강력한 비행 능력과 수평선 위를 가로지르는 모습이 마치 바다를 호령하는 군함과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흔히 군함 위에 잠시 내려앉아 쉬어간다고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사실 군함조의 생존 방식은 그보다 훨씬 절박하고 경이로운 진화의 결과물이다.
군함조의 가장 역설적인 특징은 바닷새임에도 불구하고 깃털에 방수 기능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바닷새는 꼬리 근처의 尾지선(uropygial gland)에서 나오는 기름을 깃털에 발라 물에 젖지 않게 관리하지만, 군함조는 이 기능이 매우 취약하다. 만약 바다 한가운데 내려앉는다면 깃털은 금세 물을 머금어 무거워질 것이고, 다시는 날아오르지 못한 채 익사하고 말 것이다. 즉, 군함조에게 바다는 생명의 근원이자 동시에 치명적인 함정인 셈이다.
이러한 태생적 결함은 군함조를 '비행의 명수'로 만들었다. 몸집은 암탉 정도에 불과하지만 날개를 펼치면 그 길이가 무려 2m를 훌쩍 넘는다. 몸무게 대비 날개 면적이 조류 중 가장 넓은 축에 속하는데, 이는 최소한의 에너지로 오랫동안 공중에 머물기 위한 최적의 설계다. 군함조는 수면 위를 낮게 비행하며 물 위로 튀어 오르는 날치나 오징어를 낚아채거나, 다른 새가 잡은 먹이를 공중에서 가로채는 방식으로 허기를 채운다. 물에 젖으면 죽는다는 숙명이 그들을 조류 중 가장 오랜 시간 하늘에 떠 있을 수 있는 존재로 진화시킨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군함조와 같은 가마우지목(Suliformes)에 속하는 사촌, '가마우지'의 선택이다. 가마우지 역시 깃털의 방수성이 현저히 낮다. 하지만 가마우지는 이를 '결함'이 아닌 '무기'로 활용했다. 일반적인 새들은 깃털 사이의 공기층 때문에 발생하는 부력으로 인해 깊이 잠수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반면, 가마우지는 깃털이 물에 흠뻑 젖게 둠으로써 부력을 최소화했고, 덕분에 훨씬 더 깊고 빠르게 잠수하여 물고기를 사냥할 수 있게 되었다.
똑같이 '방수가 안 되는 깃털'을 가졌음에도 두 새의 삶이 이토록 극명하게 갈린 이유는 무엇일까? 그 핵심은 '사냥터의 환경'에 있다. 가마우지는 주로 해안가나 민물, 호숫가에서 활동한다. 사냥을 마친 뒤 언제든 바위나 나무 위에 앉아 날개를 넓게 펼쳐 젖은 깃털을 말릴 수 있는 환경이다. 반면, 망망대해를 무대로 삼은 군함조에게는 내려앉아 깃털을 말릴 여유 따위는 허락되지 않았다.
결국 가마우지는 '잠수를 위한 젖음'을 택했고, 군함조는 '살기 위한 비행'을 선택한 것이다. 이는 생존에 있어 절대적으로 우월한 형질이란 존재하지 않음을 시사한다. 그들은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의 적응 방식을 찾아낸 '공룡의 실존 화석'들일뿐이다.
인간의 삶 또한 이와 닮아 있다. 우리는 스스로 태어날 장소와 부모, 그리고 초기 환경을 선택할 수 없다. 누군가는 척박한 망망대해 위에서 태어나 평생을 쉬지 않고 날아야 하는 운명을 맞이하고, 누군가는 거센 물살 속으로 뛰어들어야 하는 환경에 놓인다. 태어나는 당사자의 의지와 무관하게 주어지는 이 '환경'이라는 변수는 때로 가혹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환경은 생물을 구속하는 틀인 동시에, 고유한 형질을 완성하는 조각가이기도 하다. 군함조에게 방수 안 되는 깃털이 없었다면 그토록 거대한 날개를 가질 이유도, 신비로운 비행 능력을 갖출 일도 없었을 것이다.
생명은 주어진 결핍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빚어낸다. 주어진 환경을 원망하기보다 그 안에서 내가 뻗을 수 있는 날개의 길이를 고민하고, 내가 잠길 수 있는 수심을 측정하는 과정, 우리는 그것을 '산다'라고 부른다.
환경은 숙명이지만, 그 안에서의 적응은 생명의 의지다. 군함조가 하늘을 택하고 가마우지가 물속을 택했듯, 우리 역시 우리에게 주어진 무대 위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가장 찬란하게 살아낼 일이다. 그것이 살아있는 모든 존재에게 부여된 숭고한 숙명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