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기 아까워 못쓰다 결국 똥 된 것들

by Lohengrin

혹시 집안 어딘가에 아까워서 차마 쓰지 못하다가, 결국 몇 번 손길도 주지 못한 채 낡아버린 물건이 있지는 않으신가요? 정성이 깃든 애장품일 수도, 세월의 때가 묻은 애착품일 수도 있겠지요.


특히 1960~70년대라는 척박한 시절을 인내와 근면으로 버텨온 우리 부모님 세대에게 이러한 '아낌'은 단순한 습관을 넘어 생존의 양식이었습니다. 모든 것이 부족했던 시절, 부모님들은 어떻게든 아껴서 간직해야 했습니다. 자신은 덜 먹고 덜 입더라도 그 가난의 굴레만큼은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삶 전체에 체화된 것입니다. 쓰고 싶어도 훗날을 위해 남겨두어야 했던 그 마음이 안쓰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슴 뭉클한 고마움으로 다가옵니다.

정작 당신들은 그 좋은 것들을 제대로 누려보지도 못했습니다. 장롱 깊숙이 숨겨둔 금가락지처럼, 물건을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을 삼으셨던 것이지요. 장롱 한쪽에 오롯이 걸린 밍크코트가 그렇고, 찬장 높은 곳에서 빛을 내는 예쁜 접시와 컵들이 그렇습니다. 큰맘 먹고 장만한 명품 코트조차 행여 해질까 염려되어 귀한 외출 자리에서도 결국 평범한 모직 코트를 꺼내 입으시던 뒷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주방의 그릇들은 또 어떻습니까? 평생 한 번 갈까 말까 한 영국 여행길에 큰 결심으로 구매한 왕실 브랜드의 본차이나 접시를 떠올려 봅니다. 깨질까 염려되어 뽁뽁이로 겹겹이 싸서 캐리어에 고이 담아 온 그 귀한 접시들 말입니다. "언젠가 귀한 손님이 오면 이 접시에 멋지게 음식을 담아 대접하리라" 다짐했지만, 정작 그 접시가 식탁 위에 오른 적이 몇 번이나 될까요? 아마 식구들의 생일날조차 꺼내기 망설여져 대부분의 시간은 찬장 구석에서 고요히 먼지만 쌓여가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왜 좋은 것을 지키는 데만 급급해, 정작 그 물건이 주는 효용과 삶의 혜택을 외면하며 사는 것일까요? 예쁜 그릇을 매일 식탁에 올린다면, 끼니마다 마음이 화사해지고 일상의 설렘을 만끽할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그저 '장식장의 소품'으로 박제해 두기엔 우리가 치른 비용과 기대가 너무나 아깝습니다.

혹여 매일 사용하다 접시에 작은 이가 빠지면 또 어떻습니까? 본래 물건의 가치는 주인의 손때가 묻고 삶의 순간에 깊숙이 스며들 때 완성되는 법입니다. 큰 비용을 들여 좋은 것을 샀다면, 그만큼의 가치를 삶 속에서 충분히 뽑아내는 것이 훨씬 현명한 선택 아닐까요?


물론 우리 세대 역시 아끼는 것을 미덕으로 교육받았습니다. 절약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은 분명 존중받아야 할 가치입니다. 하지만 가치를 보존한다는 명목하에 실제 그 가치를 누릴 기회조차 박탈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합니다.


흔히들 "아끼다 똥 된다"라는 농담 섞인 진담을 하곤 합니다. 고스톱 판에서 조커를 숨기고 있다가 남이 점수를 나는 바람에 '독박'을 쓰는 경우나, 스크린 골프에서 멀리건을 아끼다 18홀이 끝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물건과 기회는 '있을 때' 써야 비로소 빛을 발합니다. 누릴 수 있을 때 누리고, 즐길 수 있을 때 즐겨야 합니다. 예쁜 그릇이 있다면 아낌없이 꺼내 음식을 담아야 합니다. 그래야 음식도 돋보이고 식탁의 분위기도 한껏 고조됩니다. 드레스룸에 갇힌 명품 옷 역시 이제는 세상 밖으로 나와야 합니다. 옷은 한 계절만 지나도 유행이 변하고, 입지 않아도 세월에 따라 변색되기 마련입니다. 옷걸이에 걸어두고 혼자 흐뭇해할 것이 아니라, 직접 입고 나가 나의 품격을 드러내는 도구로 삼아야 합니다.


예물로 받아 어디 두었는지조차 가물가물한 액세서리, 아끼느라 모셔둔 가방이 있다면 오늘 당장 꺼내보시지요. 나를 위해 과감히 사용하고 자신 있게 표현해 보시지요. 그것은 사치가 아니라 나 자신의 자존감을 높이는 소중한 의식입니다.


혹시 나중에 자식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줄 계획이신가요? 하지만 그것은 큰 착각일 수 있습니다. 세대마다 유행이 다르고 물건을 보는 안목도 다릅니다. 내 눈에 귀한 것이 자녀 세대에게는 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내가 가진 지금 이 순간, 가장 아름답게 써보는 것이 정답입니다.


간직하기만 한 물건은 결국 시간이 흐르면 그 생명력을 잃게 됩니다. 오늘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꺼내 보시지요. 그리고 사용하는 겁니다. 충분히 그럴 자격이 우리에겐 있습니다. 남겨두고 아껴두기만 하면 아시죠? 똥 된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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