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전, 개봉관에 잠깐 모습을 드러냈다가 일주일 만에 사라진 영화가 있다. '류이치 사카모토: 다이어리(Ryuichi Sakamoto: Diaries)'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어제 예술영화 전문 상영관인 광화문 시네큐브에서 그 영화를 봤다. (같이 영화보러 갈 사람, 손 드시오! https://brunch.co.kr/@jollylee/1300 )
우연인지 필연인지, 다큐멘터리는 2019년 4월 16일 일기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어제가 바로 4월 16일이었다. 우리에게 이 날은 2014년 세월호의 슬픔이 새겨진 날이다. 사카모토에게 이날은, 뉴욕 자택 야외 정원에 피아노를 꺼내 놓은 날이었다. 피아노를 햇빛과 비바람, 자연 상태 그대로에 되돌려 보내기 위한 실험이었다. 그 첫 장면 하나로, 평생 자연과 소리를 천착해온 음악가의 감수성을 전한다.
이후 영화는 예상하듯 흘러간다. 직장암이 발견되고 폐로 전이되어 4기 암 선고를 받은 2020년의 시간으로, 날짜들이 조용히 이어진다. 시계열 순으로 날짜가 명명되고, 사카모토의 필체가 하루하루 화면에 드러난다. 그 일기에는 구구절절한 심정이나 감정 토로 대신, 간단명료한 사실만이 적혀 있다. 카메라가 좇는 것도 암으로 쇠약해져 가는 몸이 아니다. 그 시간 내내 사카모토가 놓지 않는 소리에 대한 집착, 음악에 대한 애증이다. 병실에서 산소마스크를 쓴 채 누워, 자신이 후원하고 지휘해온 '도호쿠 유스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휴대폰으로 실황 시청하며 해학적인 표정으로 기쁨을 드러내는 그의 얼굴. 그것은 죽음을 기다리는 자의 모습이 아니라, 죽음을 맞이할 준비가 된 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여유와 유머였다.
임종 마지막 날, 의식이 코마 상태에 빠졌음에도 피아노 건반을 치던 근육의 기억으로 손가락을 계속 움직이는 사카모토의 가녀린 손으로 카메라 앵글이 천천히 다가간다.
일기장에는 예견된 죽음을 앞두고 갈등하던 흔적도 엿보인다. "수술하지 않으면 3개월, 수술하고 방사선 치료를 적극적으로 하면 6개월에서 1년을 더 살 수 있다는데——" 라는 문장에는 삶에 대한 인간적 미련이 담겨 있다. 그럼에도 끝끝내 개인적 회한이나 눈물은 일기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담담한 받아들임. 그리고 매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끊임없이 곡을 만들고, 피아노를 연주하고, 생각을 오선지에 그려 나간다.
사카모토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내내, 두 장면이 겹쳐 떠올랐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가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 "유언이 끝나자마자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가, 창틀을 두 손으로 거머쥔 채 두 눈을 크게 뜨고 먼 산을 바라보며 웃다가, 말처럼 울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창틀에 손톱을 박고 서 있는 동안 죽음이 그를 찾아왔습니다." 조르바는 끝까지 자유인이었다. 자기 자신 외에는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서서 죽음을 마주했다. 그리고 고(故) 이어령 선생님이 카메라 앞에서 "잘 있으세요, 여러분"이라며 손을 흔드시던 마지막 영상이다.
사카모토가 임종의 순간까지 손가락으로 피아노를 치고, 조르바가 자연을 향해 서서 희열로 마지막을 맞이하고, 이어령 선생님이 담담히 작별을 고하는 모습. 세 장면 모두, 죽음 앞에서의 동일한 자유 선언이다.
하지만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에게 죽음이란 그렇게 낭만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혼자 힘으로 서고 걸을 수 있을 때까지만이 온전히 자기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사카모토나 조르바처럼 희열 속에 멋지게 마지막을 맞이하기는 어렵더라도, 적어도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면 반드시 지켜야 할 한 가지가 있다. 꾸준한 운동을 통한 근력 유지다.
2025년 기준, 한국 남성의 평균 기대수명은 약 82세, 여성은 86세다. 그러나 건강하게 활동할 수 있는 건강수명은 약 66세로, 기대수명과의 격차가 무려 16~18년에 달한다. 이 숫자에 자신의 나이를 대입해보면, 앞으로 얼마나 건강하게 살 수 있는지가 숫자로 드러난다. 많은 이들이 "나는 평균보다 오래 살 것"이라 자위하지만, 통계적으로 기대수명보다 더 오래 살 확률보다 더 일찍 죽을 확률이 높다는 사실을 우리는 쉽게 외면한다.
카르페 디엠(Carpe Diem, 현재에 집중하라).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 아모르 파티(Amor Fati,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 언제 죽을지 모르기에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고,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 그래야 마지막 순간,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끝낼 수 있는 정신의 무장이 가능하다.
호모 사피엔스가 언어를 갖게 된 이래, 죽음에 대한 질문은 멈춘 적이 없다. 이 세상에 오고 싶어서 온 존재는 하나도 없으며,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아가지만 영원히 사는 생명도 없다. 다세포 동물의 숙명이다. 인류는 종교를 만들어 위안 삼았고, 동서양의 선지자들은 죽음으로부터의 자유를 몸소 보여줬다.
그럼에도 죽음은, 개개인의 삶 앞에서 언제나 두려움의 실체로 다가온다. 정해져 있지만 언제인지는 알 수 없다는 그 불안감. 이것을 완전히 떨쳐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에, 지금 살아 숨 쉬는 이 순간이 더욱 소중해진다. 죽음이 있기에 삶의 가치가 생겨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코끝에 전해지는 라일락 향기의 경이로움을 알아채는 것이고 옆에 있는 사람을 포옹하며 사랑을 확인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