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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Aug 21. 2020

진실을 봐도 불편해지는

세상이 온통 거짓과 속고 속이는 틈바구니 속에 있는 것 같지만 그래도 한치의 거짓 없이 진실만을 보여주는 것도 있습니다. 거짓 없는 진실, 그리고 훈훈한 감동 스토리를 찾고자 하면 이 또한  '거짓의 수'만큼이나 많습니다. 무얼 찾고 무얼 되새길 것인지는 자명합니다. 진실을 찾고 훈훈함을 찾는 일이 바로 스트레스를 줄이는 길임을 말입니다.


그런데 진실을 보여줘서 보는데 오히려 스트레스를 더 받는 경우도 있다는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바로 그 진실의 눈 중의 하나가 '체중계'입니다. 저는 매일 아침 샤워를 하고 욕실에 놓인 체중계에 올라섭니다. 디지털 숫자가 소수점 이하 한자리까지 찍힙니다. 오늘 아침 체중계 숫자는 67.2kg을 보여줍니다. 어제보다 무려 0.5kg이 늘었습니다. 최근 한 달간 67 아래 숫자를 보여주더니 오늘 아침 가볍게 67 위쪽으로 숫자의 크기를 키운 것입니다. 체중계야 진실을 보여줄 테니 올라선 저의 몸에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진실을 보면서도 불편해집니다.

'불편한 진실'과 '안심시키는 거짓'의 확증편향에서 '안심시키는 거짓' 숫자가 찍히기를 바라는 얄팍한 옹졸함이 먼저 작동한 것입니다. 지난 저녁 볶음밥 한 수저 덜 먹고 후식으로 자두 한알 안 먹고 냉장고에 돌아다니던 생맥주 한 캔을 안 마시고 안주로 먹은 캐나다 메이플 시럽 쿠키의 유혹을 견뎌냈더라면---하는 후회가 체중계에 올라있는 동안 스쳐 지나갑니다. 체중계의 숫자가 보여준 '불편한 진실'은 달콤한 입안의 행복을 이기기가 그만큼 힘든 모양입니다. 그래도 아직 70kg까지는 안 가고 있다는 '안심시키는 거짓'으로 위안을 삼아 봅니다.

지난했던 장마가 지나고 전국이 폭염에 휩싸이고 있는데 서울지역은 오늘내일 비가 지나갈 것 같답니다. 오랜 장마 끝이고 이번 주말이 벌써 처서여서 그런지 이른 아침에는 선선하지 않나요? 저만 그런 느낌일까요? 한 달이 넘는 장마기간 동안에는 제발 비야 그만 물러가라고 했는데 며칠 반짝 뜨거운 태양볕에 있으니 다시 비를 그리워하고 시원함을 찾게 됩니다. 간사한 인간의 마음을 평가하고 싶은 게 자연일까요? 자연은 그렇게 그 안에 모든 걸 품고, 모든 걸 시험하기도 합니다. 그 안에서 생존의 거미줄을 걸고 있는 인간은 한치도 벗어날 수 없으며 벗어난 적도 없습니다.


항상 오늘 지금 이 순간만을 살고 있는 인간은 바로 지금을 어떻게 살고 있는가가 모든 가치를 가지게 됩니다. 과거가 쌓여 오늘 이 순간이 된다고 합니다만 그 순간은 기억의 허상뿐입니다. 기억되지 않은 과거는 있을 수 없는 현실입니다. 시간의 흐름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며 시간의 지배를 받는 자연은 항상 그래 왔으며 시간의 배를 타고 있는 인간 또한 그 안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기에 시계열적 상황으로 시간을 보게 됩니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며 그것이 진리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을 쪼개 스틸 사진처럼 정지해 놓고 필요한 사진만 빼내는 방법을 엿보게 되면 세상을 보는 눈은 훨씬 스펙터클 해집니다. 연속 동영상으로는 볼 수 없는 것들도 하나하나 보이고 집어낼 수 있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을 넓히고 높이는 일은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세상을 보는 눈의 확장에는 동반자가 필요합니다. 혼자서는 주변을 인식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혼자 할 수는 있지만 힘과 노력이 더 들어가야 가능합니다. 하지만 동행자가 있으면 좀 더 수월하게 적응할 수 있습니다. 변수를 최대화해 착오를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시작과 끝에는 그래서 반드시 또 다른 동행자가 있습니다. 아니 공감대를 가진 여러 명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숫자는 가우스 분포를 가질 것입니다. 무작정 많으면 좋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一期一會(일기일회). "지금 이 순간은 생애 단 한 번의 시간이며 지금 이 만남은 생애 단 한 번의 인연"이라는 법정스님의 법문입니다. 법정스님의 법문집 책 제목이기도 합니다. 단 한 번의 기회를 같이할 동행자가 있다는 것은 삶을 부여받은 축복 중에 최상의 축복이 아닌가 합니다. 생명의 진리 중에 최고는 "신체가 건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유와 움직임이 신체로부터 시작되는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단순합니다. 복잡한 논리가 아니라 찰나의 순간에 대오 각성할 수 있는 평범함에 숨어 있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의 확장도 "내가 존재할 수 있게 하는 그것" 바로 건강에서 출발합니다. 건강합시다. 간강을 위해 노력합시다. 불금인데 주말에는 아침 조깅도 하고 주중에 못한 운동으로 땀을 흘려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다시 체중을 66kg으로 원상회복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조깅하러 같이 가시지 않으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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