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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Sep 02. 2020

나만의 온도계로 세상을 재다

태풍이 북상 중이어서 그런가요? 바람이 구렁이 담 넘듯 슬쩍쓸쩍 흘러들더니 지난밤에는 화살처럼 꽂혀 듭니다. 이불을 당겨 덮어야 할 정도로 말입니다. 이 아침에는 비까지 부슬부슬 섞여 창틀을 넘어옵니다. 계절은 창문을 넘어오는 정도를 지나 샤워룸에까지 다달아 있음을 눈치챕니다. 아침 샤워하는데 차가운 쪽의 레버를 따뜻한 쪽으로 조금씩 돌린 지 벌써 며칠 되었습니다.


기온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바로미터가 개인의 느낌과 감정까지 뒤섞인, 전적으로 개인적인 온도계였음을 다시 한번 알게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온도계를 장착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깥 기온 25도, 습도 88%는 그저 공인된 숫자에 불과합니다. 누구에게는 선선하고 누구에게는 습하고 끈적끈적하게 느껴집니다. 절대온도에 개인의 감정과 느낌이 개입되어 그런 것이 아닌가 합니다. 

우리는 그렇다고 표현하고 자기화하는 바넘 효과로 기온을 받아들입니다. 뉴스 시간에 나오는 기상 예보의 온도에 따라 일반화된 기온을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온도는 상대적이어서 철저히 개인적입니다. 그때그때의 체력 조건에 따라서도 달리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아침과 낮과 저녁의 기온차가 서서히 크게 벌어지는 때를 환절기라 합니다. 절기가 교체되고 혼용되고 있는 시기입니다. 그 뜻에는 공존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 수 있습니다. 차가움에 대한 적응을 빨리 해야 신체도 제 기능을 수행합니다. 차가움에 대한 적응이 늦으면 여러 기능이 문제가 발생합니다. 기초 체력을 향상해 변화에 적응하는 시기를 앞당겨야 합니다. 계절에 순응하는 방법입니다. 그래야 입김이 나는 아침에 강변에 피어오르는 물안개를 보며 산책을 할 수 있습니다. 공존과 적응은 곧 삶의 기본 형태입니다.


따뜻한 차 한잔이 앞에 있습니다. 찻잔에 떠있는 찻잎을 가라앉히고 마음도 더불어 가라앉힙니다. 세상의 모든 현상에 상징을 붙여 의미를 부여해, 보이는 것 하나하나를 모두 사건으로 기억하고 기록합니다. 의미는 그렇게 기록될 때만이 기억의 페이지로 떠오르게 됩니다.


태양의 기울기가 하루에 1도씩 사그라져 가며 빛의 용량을 줄여나가면 거기에 따라 세상의 모든 현상도 연동을 합니다. 호르몬도 변화하여 센티멘탈해지기도 하고 계절을 예감하고 주변을 정리하기도 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렇게 변화해 가는데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바로 생존입니다. "살아있는 동안 살아있기를 바라는 것" 이것이 가장 근원적인 시작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여기서 시작합니다.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어떤 환경에 등장한 이후 그 환경이 어떤 상태이건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움직임이 바로 산다는 것으로 정의됩니다. 철저히 비합리적이고 비윤리적이며 차별이 존재하는 것이 바로 생존이며 산다는 것입니다. 일찍이 삶의 본질을 간파한 선지자들이 인본을 이야기하며 공생을 추구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천체의 움직임 속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날 수 없는 존재로 오늘 이 순간을 삽니다. 숨 쉬는 모든 공기와, 눈앞에 보이는 모든 영상과 들리는 모든 소리들이 끊임없이 생존을 위해 움직이고 있음에 감사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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