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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Aug 31. 2020

미래의 그 어느 날, 떠올리는 2020년 8월은?

8월의 마지막 날에 섰습니다. 이른 아침에 맞는 바깥세상은 먹구름이 잔뜩 끼어 지난 한 달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듯합니다. 어제 소나기를 여러 차례 뿌렸음에도 맑은 하늘을 보여주지 못하는 잔인함을 표현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번 8월은 정말 장마에 태풍에 코로나 19로 점철된 재해의 한 달이었지 않나 생각됩니다. 그래도 못 빠져나올 것만 같았던 8월의 마지막 날에 섰으니 잘 살아남은 거라 위안을 해봅니다. 


이렇게 살아있고 살아남으면 맞이할 오늘이 있었습니다. 항상 오늘인데 최선을 다하면 될 일입니다. 자연의 흐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오로지 인간밖에 없습니다. 축복일 수 도 있지만 쓸데없이 신경 쓰는 부분일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듭니다. 하지만 이 의미부여를 하는 것이 호모 사피엔스의 확연한 본질입니다. 현존하는 가장 강한 생명체로 만든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의미를 부여하는 동기는 어떻게 발생된 것일까요?

진화에는 방향성이 없습니다. 한 단계를 거쳐 다음 단계의 앞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우리는 보통 진화라고 하면 그 전 단계보다 확연히 구분되는 발달된 형태의 모습을 떠올리는데 그것은 착각입니다. 우주 진화에 있어 방향성은 없습니다. 다만 자연선택에 의해 생존에 유리한 쪽으로 변화하는 것입니다.


"의미를 부여하고 개념을 공유하니 사회 공동체가 더 안정적이 되더라" 이런 학습이 지속되다 보니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게 됩니다. 의미부여의 누적이 지나쳐 이젠 의미의 장에 갇히는 형국이 되어버렸지만 말입니다. 인간의 모든 생각과 언어의 원천은 의미 부여입니다. 바로 공유라는 동기 때문입니다.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햇빛 찬란한 맑은 아침 하늘을 보고 파란색이라고 하는데 어떤 사람은 회색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빨간색이라고 하면 안 됩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같은 현상을 보고 같은 색깔을 떠올려야 합니다. 바로 의미의 부여는 곧 공동체의 생존과 직결됩니다. 이 현상이 거대한 지구촌에 생존하는 호모 사피엔스의 본질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대기 중의 수증기들이 급격히 뭉쳐져 무게를 덜 구름들이 빗방울이 되어 계절을 재촉하는 비로 내릴 수 도 있을 겁니다. 어제의 소나기처럼 말입니다. 비가 내리면 내리는 데로 그저 받아들일 수 도 있지만 의미를 부여하면 전혀 새로운 분위기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그저 대기의 온도차로 인해 수증기가 뭉쳐 중력의 끌림에 의해 땅으로 내려오는 현상이라고 보기보다는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감성을 덧붙이고 과거의 한때를 이어 놓고 낭만을 첨가하면 멋진 수필 속의 주제로도 쓰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를 바라보며 좀 더 인간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죠. 그저 피할 상대가 아닐 수 있다는 겁니다. '관점의 이동(paradigm shift)'입니다.


삶은 세상 사는 행동에 대한 의미부여입니다. 어떻게 정의하여 어떻게 의미부여를 하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은 무한대의 방향성을 갖습니다. 그 방향에 우위를 비교하는 평가는 의미가 없습니다. 무한대의 가치에서 어떤 것이 더 좋다 나쁘다를 내세우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삶의 가치란 스스로 평가하고 스스로 부여하는 의미에 따라 모든 것이 존중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나와 다름이, 나와 차별된다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임을 알게 되는 순간 세상의 모든 사물과 모든 존재에 감사하게 됩니다.

8월 한 달을 정리하는 날입니다. 재난의 한 달로 긴장하며 보내다 보니 여름휴가가 있었는지조차 잊어버렸습니다. 1년의 시간 속에 포함된 8월 한 달의 원래 의미는 쉼을 통해 생산성과 효율성을 더욱 높일 수 있는 그런 시간들로 받아들이던 통념을 완전히 깨 뜨기게 된 올해의 8월입니다. 이 한 달을 잘 버티고 미래의 언젠가 다시 회상하게 되는 '2020년 8월'은 어떻게 떠올려질까요? 너무나 독특하고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이어져 두고두고 회자될 텐데 말입니다. 어떤 진실로, 어떤 회한으로, 어떤 눈물과 기쁨으로 다시 회상하게 될까요?


힘든 한 달을 보낸 시간들로 느끼신다면 잊는 하루가 되기 바라며 그나마 인적 없는 휴가지에서의 설렘으로 가슴 뛰는 시간들을 감춰놓고 있었다면 그 여운을 회상해보는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시간은 그렇게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현실로 투영되어 다시 살아나는 환영의 실체입니다. 기억은 의미를 부여한 '내 안의 대화'이자 재해석하여 현실로 만든 언어입니다. 올해 8월에 대한 재해석은 훗날 어떤 기억으로 현실화될까? 미래의 그 어떤 날이 궁금해지는 8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따뜻한 차 잔에서 흰 연기로 피어오르는 수증기의 꼬리를 뒤쫓아 기억의 저편에 감추어 봅니다. 그 어느 날의 기억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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