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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Sep 08. 2020

머리보다 몸이 기억하게 하라

아침 글을 쓰기 위해 하얀 회면을 바라보며 키보드에 손가락을 올려놓습니다. 편지 쓰기를 하기 전에 자판에 올려져 있는 손가락을 내려다봅니다. 매일 자판을 두드리며 문서를 검색하고 정보를 찾고 영상을 보지만 지금처럼 자판 위의 손가락을 내려다보기는 처음이 아닌가 합니다. 갑자기 왜 손가락을 쳐다보게 되었을까?


아침 글의 서문을 어떻게 시작할까 잠시 고민하는 틈에 보게 되었습니다. 자판 위 왼쪽 ㄱ ㄴ ㄷ 등 초성과 오른쪽 ㅗ ㅏ ㅐ 등 중성 문자들의 위치를 손가락은 어떻게 알아서 찾아갈까요? 반복된 훈련의 결과입니다. 누가 가르쳐주거나 하지 않아도 반복을 통해 자판의 위치를 무의식적으로 입력했다는 뜻입니다. 분명 자판의 위치를 보고 글자를 구성하는 요소들을 입력해나갈 때 시각과 촉각, 그리고 팔과 손가락의 근육을 움직이는 액틴과 미오신의 신경전달 물질까지 반사적으로 움직여 행위를 만들어내고 글들을 적어 내려갑니다. 기적 같은 일입니다. 어떻게 이런 복잡한 일들이 순식간에 일어날까요? 차근히 들여다봐도 신기할 뿐입니다.


행동을 한다는 것은 브레인의 지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반사신경처럼 브레인에 신호가 전달되기 전에 근육 차원에서 행위를 선행하는 기재도 있긴 합니다. 그러나 반사신경을 제외한 모든 행위는 브레인의 명령에 따릅니다. 결국 무심코 자판을 오가는 것 같은 손가락의 움직임도 브레인의 치밀한 명령에 따라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행동하기 전에 미리 알고 있다"는 것이 움직임의 기본 패턴입니다. 이렇게 작은 동작, 행동 하나하나까지 기적이 아닌 일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루하루, 한 시간 일분일초라도 헛되이 보내면 안 되는 이유입니다. 모든 것이 기적 같은 일인데 어찌 흘려들을 수 있으며 무심할 수 있겠습니까? 한 순간 한 순간 깨어 한 호흡 한 호흡 지켜보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없습니다.

몸이 기억하고 있는 것. 반사신경처럼 움직일 수 있는 것. 모든 것은 끊임없이 반복된 패턴의 기억입니다. 이 몸의 패턴에 익숙해져 내가 소홀히 하는 일은 없는지, 무신경하게 대했던 대상은 없는지 되돌아볼 일입니다. 잊혔던 몸의 기억을 되살려 안아주고 손잡아주는 배려가 필요한 때인 것 같습니다. 코라나 19로 자꾸 멀어져 가는 사람과의 인연을 몸의 기억으로 재생해야겠습니다. 상상 속의 기억은 유효기간이 짧습니다. 그러나 몸의 기억은 오래갑니다.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주 만나 교감을 하고 공감을 해서 몸의 기억을 유지해야 합니다. 코로나 19가 장벽을 치고 있긴 하지만 말입니다. 문자로 이메일로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봐야 공허만 메아리일 뿐입니다. 공상만 증폭시킵니다. 그래서 사랑은 만나서 해야 합니다. 몸이 기억하고 있기 떼문입니다.


"브레인에 저장하지 말고 근육에 저장하라". 사랑과 감정은 반사신경 같은 것일 겁니다. 몸이 먼저 말을 하는 기재를 따르기 때문입니다. 사랑과 감정은 브레인이 만들었지만 반응속도를 높이기 위해 근육으로 기억의 위치를 옮긴 것이 아닌가 합니다.


온 세상은 경이로 가득한 신비로운 곳입니다. 더구나 오늘은 태풍이 지나고 그 뒤끝에 남은 잔바람의 소소함이 지배하고 하늘의 흰구름이 태풍의 속도로 흐르고 있습니다. 몸이 기억하는데 잊고 있는 것이 있다면 찾아가고 해 보기에 어울리는 날입니다. 기억은 추억을 깨우고 추억은 현재에 실행을 불러옵니다. 산다는 것, 삶이라는 것은 그렇게 기억을 되살리고 이어가고 만들어내는 것의 연속입니다. 그리고 그 연속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 호모 사피엔스이기에 가능했던 '의미의 장'을 펼쳐 들면 세상은 온통 경이의 환희로 가득 차 있음을 알게 됩니다.


간발의 차이, 순간의 선택이 세상을 보는 기억의 차원까지도 바꾸어 놓습니다. 힘들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힘들고 가볍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가벼워지는 것이 삶입니다. 내려놓을 때 내려놓을 줄 알고 들고뛸 때 들 수 있는 힘과 자신감을 충전하면 됩니다. 듣고 싶은데로 듣고 보고 싶은데로 보는 확증편향은 이럴 때 긍정의 힘을 발휘합니다. 계속하는 이야기지만 산다는 것은 그런 겁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고 살아내는 것입니다. 사랑하며 살 일이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삶이며 그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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