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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Sep 09. 2020

재촉하지 마라. 어차피 올 텐데

재촉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이 빨리 오도록 다그치다"입니다. 한자로는 催促입니다. 재촉할 최, 재촉할 촉 자입니다. 재촉할 최를 재로 읽습니다. 아침에 붙잡은 이 단어의 화두는 바로 계절을 재촉하는 현상들 때문입니다. 태풍은 스쳐 지나갔지만 그래도 빗맞아도 한방 이라고 이름값은 하고 간 모양입니다. 이틀이나 지났는데 태풍이 지나간 흔적의 후유증으로 여기저기 가로수들의 나뭇가지들이 부러져 보도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아파트 뜰에 심어진 대추나무와 감나무에 매달려있던 초록의 열매들 중에서 바람의 힘을 이기지 못한 녀석들이 보도에 내려와 있습니다. 아직 추석 제사상에 올라가려면 20일을 더 기다려야 하는데 초록의 옷을 입고 떨어져 있습니다. 설익고 떫어 제 기능을 할 수 없는지라 청소 쓰레기 더미에 묻혀있습니다. 가로수로 심어진 은행나무에서도 태풍의 바람을 이기지 못한 은행알들은 그나마 누런 색깔을 입고 보도에 나뒹굴고 있습니다. 이미 행인들에게 밟혀 특유의 냄새를 풍기고 있는지라 깡충깡충 피해서 걸어야 합니다. 밟았다가는 특유의 냄새를 사무실까지 끌고 올 것 같아서입니다. 전철역까지 이어진 은행나무 가로수 중에 유독 은행알을 많이 떨군 나무가 눈에 띕니다. 태풍의 바람을 이기지 못한 때문일까요? 아니면 같은 골목에 심어진 나무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는 방법과 자손을 퍼트리는 방법으로 태풍의 바람을 이용하여 선빵을 날리는 묘법을 터득한 것일까요?


바로 계절을 향한 재촉이 아닐까 문뜩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현상에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며 사회적 공감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더구나 실존이 아닌 상징을 이름 붙인다는 것은 더욱 그렇습니다. 가을을 부르는 현상과 소리는 이미 우리의 오감을 자극한 지 상당 시간 흘렀습니다. 아침저녁으로 들리는 풀벌레 소리가 달라졌지만 미처 눈치채지 못했을 뿐입니다. 피부에 닿은 바람의 흐름도 온도가 변했습니다만 한낮의 더위에 역시 금방 잊히고 말았습니다.


주변에 사소한 모든 것을 들여다보면 이미 시간과 온도의 변화에 맞춰가고 있었습니다. 둔감한 인간만이 모르고 있었습니다. 아니 변화가 있었음에도 변화를 받아들이길 거부하고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편하고 안정적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사리사욕적 관점을 빼면 세상은 모두가 기적임을 알게 됩니다. 나의 오늘이, 어제 그렇게 내일을 갈망하던 환자의 소원이었음을 알아채는 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계절을 재촉하는 변화의 움직임을 눈치채는 것 역시 어렵지 않습니다. 조금은 가만히 들리는 모든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보이는 모든 현상의 움직임에 시선을 고정하면 얼마나 지금 이 순간이 경이로운 세상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 순간을 내가 지켜보고 살아있다는 것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됩니다.


계절은 재촉한다고 오는 것이 아님도 역시 압니다. 그렇지만 그럴 수도 있다는 상상의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현상이 가치를 갖게 됩니다. 그 가치를 부여해야 비로소 인지의 대상으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길어진 어둠의 정령을 뚫고 나선 새벽길이 점점 길게 느껴집니다. 이제 시간의 흐름은 점점 더 빨라지는 걸 느끼게 될 겁니다. 시간을 재촉하고 마음을 재촉해 다급하게 느껴집니다. 그렇게 새로운 하루, 새로운 주일, 새로운 한 달 속에 있습니다. 오늘이 벌써 수요일인 것처럼 말입니다. 내 살아있는 생애중 가장 젊은 날을 살고 있으니 오늘도 불같은 정열로 살아야겠습니다. 재촉하지 않아도 어차피 다가올 시간이자 계절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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