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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Feb 05. 2020

Serendipity

어제부터 바깥 기온이 차가워졌습니다. 이제야 겨울임을 실감하게 됩니다. 집에서 전철역까지 걷는 시간이 5분여밖에 안됨에도 귀가 살짝 시린 정도였는데 온도를 보니 영하 10도를 가리키고 있더군요. 추위가 차가움에 대한 부정적 의미로 각인되었지만 부정의 뒷면에는 반드시 Collateral Beauty가 따라옵니다.

"나쁜 게 반드시 나쁜 게 아니고 좋은 게 언제나 좋은 것은 아니다"라는 겁니다. 양면성이자 다양성입니다. 우주만물의 근본 원리이자 양자역학의 시각인 불확정성의 원리와도 맞닿아 있습니다.


추우면 추운 데로 장단점이 있고 따뜻하면 따뜻한 데로 장단점이 공존한다는 것입니다. 비가 내리면 우산장수는 웃겠지만 아이스크림 장수는 울 것이고 햇살이 쨍쨍 비추면 아이스크림 장수는 웃을 것이고 우산장수는 침울할 것입니다. 그렇게 인간사의 흐름도 장단점이 맞물려 돌아갑니다. 항상 즐거우면 좋을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습니다. 3일만 지나면 오히려 즐거움이 피로가 됩니다. 지지고 볶으며 살아가야 즐거움이 무엇인지 어렴풋이나마 인식합니다. 슬프고 기분 나쁜 사건도 있어야 행복이 무언지, 즐거움이 무언지 알고 되고 기쁨도 배가 됨을 눈치챕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아침은 눈이 내리지 않아 그나마 다행입니다. 어제저녁에 내리던 진눈깨비들이 밤새 그쳐 있어 빙판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밤새 눈이 내렸다면 아침 출근길이 조심스러웠을 텐데 말입니다. 결국 세상을 보는 관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개인적 세상은 각각 펼쳐집니다.


출근길을 나서며 마스크도 챙겼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면서 손에 들린 마스크를 쓸까 말까 잠시 망설여집니다. 마스크를 쓴다는 것은 혹시 내가 할지도 모를 기침을 통해 체액이 나가는 것을 방지하는 행위이지, 타인으로부터 접하게 될 비말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기능은 아주 미약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호흡기 질환의 유행이라면 당연히 마스크를 쓰는 게 맞지만 말입니다. 막연한 공포는 이렇게 무섭습니다.


싸늘한 아침 풍경 때문이기도 하지만 밤의 은은한 정령인 달의 그림자도 한반도 반대편으로 내려간 덕분에 칠흑 같은 어둠이 아직 가시지 않고 있습니다. 달은 그저 궤도를 돌고 있을 뿐인데 그 궤도의 순간순간만을 인지하는 인간은 삶의 상당 부분을 의지하고 있습니다. 설이 지나고 정월대보름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달의 본질이 바뀐 것도 아닌데 말이죠.


우리 은하에는 1천억 개가량의 태양계와 같은 항성계가 있고 우리 은하를 너머 우주에는 또 1천억 개 이상의 은하가 있습니다. 우주는 인간의 인지능력으로 감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별들을 품고 있습니다. 그 안에 태양계의 한 행성인 지구처럼 골디락스 존을 돌고 있는 행성에 생명이 있을 것인지에 대한 물음은 너무 몰상식할까요? 지구와 비슷한 조건을 가지고 있는 외계행성들이 이미 4천 개 정도 발견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발견된 외계 행성 중에서 지구에서 490광년 떨어진 ‘케플러-186f’가 지구와 가장 닮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공전 일수는 130일이고 크기는 지구와 비슷합니다. 2007년에 지구에서 20광년 떨어진 적색왜성 글리제 581 주위를 돌고 있는 행성 글리제 581-c도 발견했습니다만 항성과의 거리가 가까워 생명체가 살기에는 지나치게 뜨거울 것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오면서 골디락스 행성 후보에서 멀어졌습니다. 그래도 외계인을 만날 날이 올까요?


아직까지 인류의 현대 과학기술로는 공상과학소설과 영화로나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물리적인 거리를 뛰어넘거나 줄일 기술을 개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인류가 우주로 보내 가장 멀리 가고 있는 무인 우주선인 보이저호가 1977년 발사되어 1989년에 태양계 끝인 해왕성을 지날 때 초속 17km였고 현재 태양계를 벗어나 오르트 구름 속을 날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행성의 중력을 이용해 우주선 궤도를 돌게 하다가 원심력의 반발로 가속을 붙이는 슬링 기법을 통해 우주선의 속도를 높이는 방법을 쓰기도 합니다만 이 속도로 20광년 떨어진 글리제 581-c까지 간다고 해도 수십만 년을 가야 합니다. 이 시간적 한계를 극복할 방법이 아직까지는 없습니다. 그래서 인류는 화성에 집착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우주로까지 시선을 넓히게 된 데는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아인슈타인 같은 천재들의 덕분입니다. 천재는 “일상에서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능력을 지닌 자”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이 그렇고 수많은 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들의 면면을 보면 그렇습니다. 일상 속에 묻혀 간과하기 쉬운 것들을 뒤집어 보고 자세히 보고 그 안에 숨어 있는 원리를 캐내는 능력을 발휘한다는 것입니다. 샘킨이 지은 '사라진 스푼'이라는 주기율표에 나오는 원자들의 이야기만 봐도 맥주를 마시다, 잔에 만들어지는 거품을 보고 액체수소를 원자에 충돌시켜 소립자를 만들어내는 거품 상자를 만들어 노벨상을 받은 글레이저에 대한 일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런 우연한 행운을 serendipity라고 합니다만, 우연은 아니라고 봅니다. 남들과 다른 직관으로 현상을 통찰하여 세렌디피티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주기율표 이야기가 나와서 그런데, 세상 만물 모든 것을 주기율표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현재 밝혀진 원소의 개수는 118개. 이중 자연에 존재하는 것은 96개, 나머지는 인공으로 만들어낸 원소들입니다. 원소가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지만 금방 붕괴되어 자연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들입니다. 그 많은 원소 중에서 생명을 만들고 유지하는 것은 6가지입니다. C, H, N, O, P, S, 탄소, 수소, 질소, 산소, 인, 황입니다. 그리고 나머지 칼슘 칼륨 철 정도를 생명에 도구로 활용하는 정도입니다. 글레이저가 아이디어를 얻은 거품도 사실 칼슘이 제일 잘 만들어 냅니다. 우리 신체 구조에도 뼈를 구성하는 원자가 칼슘입니다. 뼈의 구조가 거품 구조인 것입니다. 구멍이 숭숭 뚫린 --- 그러나 그 거품이 굳으면 단단한 뼈의 구조로 형성되는 것입니다. 이 아이디어는 우주왕복선 외피 구조를 만드는데 쓰이고 항공기 외피의 허니웰 구조로도 활용됩니다. 세상 모든 것은 주기율표의 활용과 재구성에 지나지 않았다고 하면 지나친 확장인 것 같지만 그것이 사실이었던 것입니다.


근원을 추적하면 결국 세상은 한 곳에서 만납니다. 양자역학을 통해 그 원소의 안까지도 들여다보고 뮤온과 파이온, 힉스까지도 찾아냈지만 세상 만물의 구성은 원소까지만 접근해도 충분합니다. 가깝게는 죽음과 직면할 수밖에 없는 생명도 결국 원래의 자리였던 원소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C, H, N, O, P, S 가 모여 개체를 만들고 있다가 다시 그 본래 모습으로 회귀하는 것입니다. 자연은 원래 그런 것이고 생명 또한 원래 그런 것입니다. 우리는 정말 Serendipity 한 삶을 부여받는 행운아로 이 세상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 우리가 깨어 있어야 하고 우리가 행복해야 할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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