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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Feb 06. 2020

쉼과 시간 활용법

요즘 기업들은 직원들에게 부여된 휴가를 쓰도록 독려합니다. 주말과 공휴일에 낀 샌드위치 날에는 회사 전체가 연휴를 사용하는 날로 하고 있기도 합니다. 회사 입장에서야 비용절감이 목적이겠으나 직원 입장에서도 눈치 보며 휴가 내는 일이 사라져 긍정적으로 받아들입니다. 여러 날 이어서 쉬게 되면 여행을 계획하거나 시간이 많이 들어 실행하지 못했던 다른 일들도 도전해보게 됩니다. 일상에 있어 휴가는 그렇게 사탕 속에 박힌 초콜릿 같습니다.


하지만 대놓고 쉬고 놀라고 하면 부담스러운 것이 월급쟁이 아닌가 합니다. 그만큼 일에 대한 강박관념이 배어 있기 때문일 겁니다. 대가를 내놓아야 하는 것, 보상이 따라야 하는 것, 이런 실적에 항상 젖어 살아왔기에 잠시의 여유와 시간에도 불안해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래도 마음 한켜에 이런 쉼도 있어야 사는 재미가 있음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항상 같지 않은 다름은 새로움에 대한 가벼운 흥분을 수반합니다. 이는 아드네 날린 과 도파민 분비를 통해 기분을 좋아지게 합니다. 그 환기된 상태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깨어있게 조성된 외부환경을 어떻게 내 것으로 만들 것인가가 필요해지는 것입니다. 오롯이 내 시간이 된 상황을 어떤 일에 활용하는 것이 가장 적정할까요? 어떤 일이든 의미를 부여하여 수행하면 될 것입니다. 경중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오랫동안 소원했던 친지들과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면 그것 또한 최적의 시간 활용일 테고 자신의 건강을 위해 운동을 계속하는 시간으로 삼았다면 그 또한 최고의 의미 있는 시간들일 것입니다.

또한 지적 호기심의 충족을 위해 미술관에서 하루 종일 소일하는 것도 대단한 일일 것이며 아니 하루 종일 잠을 잔다고 해도 더 활기찬 다음날을 위한 것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면 그 또한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무엇을 하던 깨어있는 의식으로 접하고 다가서면 모두가 의미 있는 일로 다가온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고 싶은 걸 해야 합니다. 하고 싶은걸 못하거나 하지 못하게 막으면 반드시 다른 방향으로 다른 무언가를 하게 되거나 금단증상과 같은 징후가 찾아옵니다. 일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모든 행위가 바로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게 됩니다.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는 것은 사회 조직 안에서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업무정도일 것이며 출근하기 싫지만 출근했다는 것조차 사실은 하고 싶은 내재적 잠재의식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거친 표현으로 바뀔지언정 규칙적으로 나갈 곳이 있다는 안도감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하고 싶다는 것은 곧 애착이자 집착의 발로입니다. 여기에는 부정적 의미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무언가를 해내는 목표의식이자 성취감이자 추진력이 그 자리를 차지합니다. 긍정의 힘으로 작용하는 놀라운 현상입니다. 저에게는 아침마다 이렇게 무언가 끄적이며 정리를 하거나 머릿속에 있는 걸 끄집어내는 일이 일상화되었기에

반드시 해야 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사람은 쉬는 시간에 무얼 하는지 관찰하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대강 알 수 있게 됩니다. 드라마나 토크쇼 등 오락프로그램을 접하고 있거나 휴대폰 게임을 하고 있거나 아니면 소주 한잔 기울이며 쌓인 스트레스를 풀거나 운동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등등을 통해 주어진 시간들을 보내게 됩니다.


어떤 것이 더 우위에 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행위에는 반드시 원인과 의미가 있기 마련이니까요. 하지만 그중에서도 좀 더 자기 계발적인 쪽으로 쉬는 시간을 활용한다면 좀 더 수준을 향상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있다고 할 수는 있을 겁니다.


시간을 할애하는 방법론을 생각해야 한다는 겁니다. 좀 더 효과적인 활용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저에게는 이 시간이 최고의 시간 활용법이기도 합니다. 끊임없이 무언가 글자를 만들어내고 조합하여 생각을 표현해 낸다는 '의식'의 현장을 보고 있으니까요. 글의 시작부터 끝까지 조리 있게 정리한 후 써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한 단어 한 줄 시작되면 그 끈을 잡고 지속적으로 의미를 이어갑니다. 어떻게 썼는지 무얼 썼는지 예측할 수 없습니다. 지난 글들을 살펴보면 '내가 어떻게 저렇게 썼지, 저런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 등 신기하기까지 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올해 들어 몇 년 전부터 자신과의 대화를 풀어내던 글 씀을 '브런치'를 통해 공개하면서 슬그머니 부담이 생긴 것도 사실입니다. 혼자 정리하고 할 때는 무엇을 쓸까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읽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글의 제약이 되어버렸고 의무가 되어버린 느낌입니다. 글에 가식이 달라붙고 잘 쓰고 잘 보이기 위한 허상의 단어들이 등장한다는 것입니다. 끊임없는 성찰을 통해 허울을 벗어내고 속살을 있는 그대로 적시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단장을 하기 시작하면 마약과 같습니다. 끊어내기가 그만큼 어렵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아름다움과 멋스러움에 취해 벗어나기 힘들게 됩니다. 아침 짧은 글에도 고뇌가 숨어있습니다만 최대한 고민하지 말자라는 것이 매일 이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저 보이고 만져지고 냄새 맡게 되는 모든 것을 소재로 하여 느끼고 생각나는 현상들을 잡아내 공유하는 것으로 만족하고자 합니다. 일상에 공감하는 것들이 있다면 그것으로 행복해하고 그 공감에 웃음을 주고 반응을 해주는 그대가 있음에 또한 기뻐하면 그만입니다. 부담 없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공유하고 공감하는 일, 이 시대에 우리가 추구하는 삶의 일부가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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