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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Feb 10. 2020

지락 지요(至樂至要)

주말인 어제 점심식사를 언론계를 은퇴하신 원로 한 분과 했습니다. 자녀들도 출가시키고 대학 강단에서 후학들에게 평생 몸담았던 언론계의 지혜를 전하고 계십니다. 대화중에 그분께서 제 아이들의 동정을 묻습니다. 첫째 여식은 지난해 취업을 해 잘 다니고 있고 막내 녀석은 대학 2학년이 되는데 올해 군대 입대를 예정하고 있음을 전했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그분의 첫 일성이 "자녀들에게 고맙다고 말하게나"였습니다. "자녀들을 앞에 앉혀놓고 큰 절을 하라"고 말입니다. 삶의 선배이시자 앞선 지혜의 체득자께서 하시는 말씀이지만 가슴에 퍽 하고 와 닿습니다.


명심보감 훈자 편에 나오는 "至樂(지락)은 莫如讀書(막여독서) 요 至要(지요)는 莫如敎子(막여교자) 니라 - 지극히 즐거운 것은 책을 읽는 것 만한 것이 없고, 지극히 중요한 것은 자식을 가르치는 것 만한 것이 없느니라"라는 경구가 오버랩되는 말씀이었습니다. 

우리는 주변에서 자식들의 일탈로 인해 가정이 망가지는 현상을 자주 목도합니다. 자식들이 올바로 사고하고 행동하도록 가르치고 지도하지 못한 부모와 사회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후성유전학이 최근 관심을 받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주변 환경이 어떠하냐에 따라 생명은 영향을 받습니다. 밭이 좋으면 좋은 식물이 자라는 것이 생명 활동의 이치입니다. 자식들의 앞 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제 품의 자식들이 각자 독립해 제 갈길을 갑니다. 막내 녀석도 올해 군대에 가면 2년여 집을 떠나 있을 것이고 큰 여식도 직업이 승무원이라 집에 있는 날이 한 달의 절반도 안됩니다. 네 식구가 살던 집이 신혼집이 되어버린 느낌입니다. 그래도 각자의 길을 가고 있는 자식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아비의 마음은 시원섭섭함 뭐 이런 기분입니다. 자식들을 출가시킬 때도 이런 마음이 들까요?


명심보감으로 다시 돌아가 독서를 화두로 이어 봅니다. 명심보감이 널리 읽힌 시대에 독서란 곧 정보의 습득이자 인간사의 지혜를 알 수 있는 유일한 창구였을 겁니다. 동양은 서양의 로마시대처럼 아고라에서 소피스트들의 토론을 통한 지혜의 공유가 이루어지기보다는 서책을 통한 지혜의 전달 방법을 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문화적 차이라는 것인데 문화는 지리적, 기후적 영향을 그대로 반영하게 됩니다. 문화는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최적화된 반응의 총체입니다. 이 문화가 전승되는 것을 역사라 합니다. 역사는 곧 문화의 기억인 것입니다.

 

로마 그리스 시대를 지리적 기후학적 측면과 대비해보면 이들 지역은 지중해성 기후로 사철 온화한 지역입니다. 도시생활이 같이 번성하고 날씨도 화창하니 광장에 모일 수 있는 환경이 자연스럽게 조성되고 그러다 보니 토론 문화도 같이 발달합니다. 반면 중국은 대륙이라 날씨와 문화를 접목하기에는 부적절하긴 하지만 중국문화의 주종을 담당했던 중원의 풍경은 높은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지형적 관계로 화창한 날보다는 구름 낀 흐린 날이 훨씬 많았을 거라 짐작이 갑니다. 당연히 광장에 모이기보다는 개별 학습이 훨씬 유용했을 겁니다.


전 인류의 발달사를 들여다보면 이렇게 각 문화마다 지역적, 환경적, 기후적 적응이 만들어낸 특색을 볼 수 있습니다. 21세기 들어서 특히 인터넷이라는 도구가 전 지구를 글로벌화시킨 현세대에 있어서는 지식과 지혜의 전파가 지역적으로 일어나지 않고 한 채널을 통해 동시에 일어나는 세상으로 바뀌었습니다.


무엇을 습득하고 받아들일 것인가는 이제 전적으로 개인의 의지에 달렸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넘쳐나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걸러낼까요? 무엇이 필요한 정보인지를 골라내는 능력을 키우거나 이미 앞서간 사람의 뒤를 따르는 것이 방법일 수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이 뉴턴이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섰기에 우주의 원리를 찾을 수 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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