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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Sep 24. 2020

상상은 실재보다 강하다

며칠째 청명함이 지배하는 날씨입니다. 그 청명함에 머리까지 명징하게 하는 바람의 상쾌함은 덤입니다. 갑자기 영국 런던에서 2시간여 가면 셰익스피어의 생가가 있는 Stratford upon Abon과 Bourton on the Water의 냄새가 스쳐 지나갑니다. 다녀온 지가 벌써 6년 정도 된 것 같은데 기억이 생생히 오버랩됩니다. 당시 두 번째 방문이긴 했지만 일주일 정도 머무는 시간 동안 런던은 전형적인 안개의 도시였는데 간간히 며칠은 오늘의 하늘 같은 청명함을 보여주어 대비되었기에 더욱 생생한 기억으로 상기되는가 봅니다. 기억의 트리거에 망령처럼 자리한 강한 인상 때문일 겁니다. 또한 브레인이 기억을 저장하는 방법이 그렇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현상을 기억 속에 저장할 때 이전의 비슷한 기억 근처에 저장하는 브레인의 속성 때문입니다.


책과 영화를 통해 주워 들었던 회색의 런던이 단 두 번의 현장에서 생생히 살아 각인되고 그 중간중간의 영상으로 청명함이 자리한 현상. 기억은 그렇게 과거를 불러 현재에 재해석되는 것임을 재삼 느끼게 됩니다.


기억의 시간이란 무엇일까요? 태양과 지구가 돌며 만들어내는 기울기의 일정한 반복에 숫자를 붙여 '시간'이라는 개념을 만듭니다. 반복되는 현상을 인간들이 이해할 수 있는 상징 언어로 만들어놓은 것 중의 하나가 숫자입니다. 시간은 그 이해 가능한 숫자의 주기를 의미합니다. 일초, 일분, 한 시간, 하루, 일 년, 그리고 수십억 년까지 계산해 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반복되는 현상을 숫자로 표현하는 '법칙'이라는 발견은 인간이 만들어낸 최고의 창조물 중 하나입니다. '만유인력의 법칙' '열에너지의 법칙' '보일의 법칙' 등등 ---


자연현상을 규명해낸 수많은 석학들의 법칙들이 있습니다. 덕분에 우주 근본의 시간이 밝혀졌으며 그 안에 있는 지구의 시간까지도 면면이 공개되었습니다. 발가벗듯이 까밝혀진 우주의 사실 앞에서 절대자에 기대는 인간의 모습은 얼마나 가소로운지요.

그러나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인간들의 속성은 생물학적 흐름에 지배를 받게 됩니다. 자고 먹고 싸고 자고 먹고 싸고 --- 곧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에너지를 지속적으로 흡수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도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5분간만 숨을 멈춰도 생명의 숨이 멎습니다. 그 이상도 아니고 이하도 아닙니다. 치열한 생물학적 생존을 바탕으로 모든 것이 자리를 차지합니다.


깨달음의 순환고리 마지막에는 결국 인간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중에 자신의 존재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은 기억을 남기고 재생하는 시간의 축적입니다. 한 줌 재로 사라지는 날까지 세상을 보는 눈높이는 어디까지 열릴 수 있을까요? 오감을 떠나 무한한 상상의 세계를 만들어내고 그 세계를 구현해내는 인간이야말로 위대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상상의 세계는 실존보다 강력한 현실일 수 도 있습니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 책에서 "인류 공통의 신화는 사람들의 집단적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다'라고 전제하고 '법과 정의, 인권의 존재를 믿는 어느 것도 사람들이 지어내고 서로 들려주는 이야기 밖에서는 존재할 수 없다. 인류가 공유하는 상상 밖에서는 우주의 신도, 국가도, 돈도, 인권도, 법도, 정의도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지적합니다.


물론 허황되고 비현실에 머물러 있는 상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현실을 기반으로 한 상상, 상상을 현실로 구현할 수 있는 세상의 시간. 바로 기억의 조합을 통해 가능한 일입니다.


오늘 하루는 어떤 기억들을 끄집어내어 조합하고 새로운 상상을 만들어내어 현실화시킬까요? 흥미진진한 하루가 될 것입니다. 무한대로 벌어지는 시간의 다툼에서 살아남는 해법을 구사하는 전사의 모습이 보입니다. 상상은 실존보다 강할 수 도 있습니다. '잘 될 것이다' '잘 되고 있다'는 상상의 최면은 마약보다 강한 효과를 발휘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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