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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Oct 06. 2020

제주 살기 프로젝트, 15일 살아보니

제주 15일 살기로 내려온 지 딱 절반의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지난 일주일은 서귀포 레지던스에서 보내고 어제 애월 쪽으로 숙소를 옮겼습니다. 한 숙소에서만 오래 머물다 보니 저녁에 되돌아와야 하고 섬이지만 이동거리도 만만치 않아서입니다. 사실 제주 살기 한 달 프로젝트는 큰아이가 진행한 건데 제가 2주일 끼어들었습니다. 비용은 절반씩 내고 자동차 운전을 해준다는 조건으로 말입니다. 육지 사는 많은 사람들의 버켓 리스트이기도 한 제주살이를 시작해보니 뭐 별거 아닙니다. 일주일 살고 이런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기도 합니다. 어디에 삶의 방점을 두고 세상을 넘겨다보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요.


15일간 제주에 내려와 있다고 하니 다들 궁금해합니다. "직장 때려치웠냐? "고요. 한 달 쉬고 한 달 근무하는 중에 휴업으로 쉬는 한 달이라 내려와 있습니다. 큰 아이도 휴업상태라 같이 내려왔고요. 와이프는 일주일 있다 어제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큰아이도 어제 서울서 오래전에 약속된 모임이 있다고 올라갔다 온다고 갔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혼자 있는 덕에 글을 쓰는 시간적 여유도 잠시 생겼습니다. 오늘 저녁 큰 아이가 다시 내려오면 글쓰기에 집중할 수 없어 다시 며칠 절필의 시간을 갖게 되겠지요.

서울서 내려올 때 목포로 해서 차를 배에 싣고 왔습니다. 15일이나 있을 거라 장기 렌트하기도 뭐하고 해서요. 덕분에 트렁크 2개에 바리바리 옷가지를 넣고 백팩에 노트북도 챙겨 왔는데 노트북 열어 볼 시간이 없네요. 돌아다니느라 ^^;;; 노트북 대신에 휴대폰으로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을 통해 매일 찍은 사진을 실시간 공유하게 됩니다. 긴 사색보다는 인스턴트적 단문과 자랑질의 표상으로 전락한 느낌입니다. 무언가 쓴다는 것은 생각의 정리입니다. 주제가 정해지고 집중적으로 들여다보는 사색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정리가 되어 글로 드러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잠시 머문 일주일의 제주는 생각 자체를 할 수 없게 합니다. 자연이 생각을 날려버리게 합니다. 스트레스를 날린다는 표현이 그래서 맞는가 봅니다. 아무 생각 없게 만드는 풍광.


그저 바라보고 있으면 시원하고 상쾌해지는 순간들. 그 시선에는 어떤 고뇌와 집중도 필요 없습니다. 집중이 되지 않습니다. 집중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그냥 이 순간, 이 시간 자체로 족할 뿐인 상태. 그것이 제주에서 일주일을 살고 있는 느낌의 결론입니다. 아니 매일 정신없이 여기저기 쏘다니고 힘들면 전망 좋은 카페에 앉아 반나절 졸기도 했기에 몸이 피곤하여 생각을 뒷전에 두어서 인지도 모릅니다.


가보고 싶은 곳 찾아가고 먹고 싶은 것 먹고. 정말 단순한 삶의 전형으로 보냈습니다.

이 한가함이 내 삶에 어떤 이정표가 될까요? 


긴장과 스트레스로 점철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있어 공백과 같은 하얀 백지장의 페이지로 남겨져 있을까요? 먼 훗날 그 빈 공백에 추억의 제주 풍광을 다시 그려 넣기 위해 말입니다. 

내 인생 언제 이런 호사와 여유를 누려볼 수 있을까? 다시 오지 않을 이 기회를 맘껏 즐기면 될 텐데 ---

참 희한하죠. 그러면 그럴수록 서울의 시간들이 생각납니다. 생각지 않으려고 해도 회사의 일들이 궁금해집니다. 휴대폰 포털사이트를 통해 회사 뉴스를 검색해 봅니다. 이런 제길 직업병인가 봅니다. 일주일 만에 노트북을 펼쳤는데 생각 정리가 잘 안되네요. 역시 글빨은 계속 써야 느는가 봅니다. 호텔 베란다 밖으로 펼쳐진 바다와 그 위를 쏜살같이 달리는 바람이 자꾸 부릅니다. 모닝커피 한 잔과 브런치라도 먹으러 카페로 내려가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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