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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Sep 22. 2020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그대 곁에 있음을 아는 것

푸른색 하늘이 바다인지 헷갈립니다. 햇살이 그 푸른색의 한편을 차지하고 있지 않았으면, 지나가는 버스가 없고 눈길을 낮춰 앞산 꼭대기 송전탑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으면, 그리고 스쳐가는 차량의 소음이 없었으면, 그저 소리 없는 바닷가에서 보는 그 푸른 깊이와 진배없습니다. 


오늘 아침의 기온은 17도를 가리킵니다. 반팔 셔츠를 너머 긴팔 스웨터를 챙기고, 여름 재킷을 너머 두께가 있는 블레이저를 걸칩니다. 하루가 다르게 차가워지는 아침 공기는 머릿속을 맑게 합니다. 푸른색 도화지를 가로지르는 주황색 햇살의 주사선이 조화를 이룹니다. 시간상 많이 늦어진 아침 풍광입니다. 어둠의 정령이 지배하는 시간이 길어짐을 뜻하지만 빛의 정령이 등장하면 가장 눈부신 빛의 향연을 펼쳐 푸른 바다를 하늘로 가져옵니다.


이 계절 하늘의 본질은 바로 바깥의 구름 뒤에 숨어있는 짙푸른 바다색 빛깔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물론 태양빛의 파장 길이를 가져다 붙이면 물리학의 지루한 강의가 될 수 도 있지만 그저 감상의 눈으로 바라만 봐도 한없이 좋을 그런 파란색의 향연입니다.


그럼 본질이란 무엇일까요? 본래 가지고 있는 성질을 말합니다.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라 만고불변의 진리 같은 사실을 말합니다. 이 본질은 사람에 따라 달리 보이는 것이 아니라 누가 봐도 딱 '그것이다'라는 명확한 공감을 갖고 있는 것을 뜻합니다.


'나무'라고 하면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서 있는 그 존재 자체를 말하며 이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본질을 제대로 표현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들은 본질을 잘못 보는 착각을 하며 살기도 합니다. 지구의 낮과 밤에 대한 본질의 인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루 중에 낮과 밤이 절반씩 자리하고 있으니 낮과 밤 중에 어떤 것이 본질인지 신경 쓰지 않습니다. 공기와 물이 옆에 있으니 고마움을 모른다는 단순함과 같습니다. 그저 태고적부터 반복되어 왔고 거기에 적응하고 진화되어 왔기에 본질을 따질 필요도 없이 당연히 거기 그대로 있음만을 인지합니다.

그러나 낮과 밤의 본질은 무얼까요? 자전과 23.5도의 기울기를 가지고 있는 본질에 더하여 바로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대기가 빚어내는 현상 때문입니다. 지구의 대기권을 구성하고 있는 산소, 이산화탄소, 질소 등의 물질이 없다면 지구의 낮과 밤은 하나로 통일됩니다. 바로 깜깜한 밤이 원천입니다. 낮이라는 것은 태양 에너지가 지구에 도달할 때 대기와 부딪혀 난반사가 되어 발생하는 분산 현상입니다. 지구는 태양처럼 스스로 에너지를 방출하는 항성이 아닙니다. 태양이 없다면 그저 어둠의 우주 공간에 떠있는 깜깜한 행성일 뿐입니다.


결국 지구는 깜깜한 밤이 본질입니다. 낮은 그저 현상일 따름입니다. 지구의 대기가 빠져나가 밤의 정령이 지배하는 시대(숨은 쉴 수 있다는 허황된 가정을 담는다면)가 온다고 할지라도 발걸음이 망설임이 없이 찾아갈 수 있는 장소가 있는지요? 망설임 없이 찾아갈 사람이 있는지요? 온몸에 각인되고 체화되어 스스로 찾아갈 수 있다면 칠흑 같은 어둠뿐이겠지만 내비게이터처럼 찾아갈 곳과 사람이 있다면 인생을 정말 잘 살고 있는 겁니다. 서로의 손을 잡아야 앞에 누군가 있는지 알겠지만 망설임 없이 손을 뻗어 부둥켜안을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구일까 망설였다면, 손을 내밀까 고민했다면 이미 마음에 의심이 작동했다는 것입니다. 의심을 키워 확신을 얻을 수는 있겠지만 그 의심은 낮의 정령이 있을 때 확인했어야 하는 과정입니다.


불현듯 선택의 순간이 닥치면 망설임 없이 갈 수 있는 곳, 찾아갈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다시 한번 되물어 봅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서로를 인지하는 하급의 단계를 뛰어넘어야 합니다. 오감을 차단하고도 서로를 찾을 수 있는 능력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능력자들입니다. 옆에 그대가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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