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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Oct 15. 2020

색을 색답게 바라보다

이 계절은 색이 지배합니다. 아직 도심 한가운데까지는 본격적인 색의 향연이 펼쳐지지 않았지만 곧 꽃보다 아름답다고 표현되는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면 삽시간에 온 산하가 색의 치장을 하고 나타날 겁니다. 이번 주말 정도가 설악산과 오대산 단풍이 절정일 것 같다고 합니다. 보통 절정의 단풍은 산 전체가 80% 정도 물들었을 때라고 합니다.


색은 진화의 산물입니다. 불변하는 빛의 색은 예외입니다. 태양으로부터 발원하는 빛의 색 중에서 인간은 가시광선의 색인 빨주노초파남보 7가지 색만 봅니다. 빛의 색을 합하면 흰색이 됩니다. 색 중에는 물감을 섞는 색도 있습니다. 물감을 섞는 색은 더할수록 검은색이 됩니다. 색도 어떤 색이냐의 본질에 따라 형태가 달라집니다. 한자문화권에서 이야기하는 공즉시색의 색도 있고 농밀함을 표현하는 색도 있긴 합니다만 오늘은 자연의 색을 들여다봅니다.


자연에서 붉은색은 진화의 정점입니다. 현화식물이 번식을 위해 곤충을 유혹하는 색깔로 사용하기도 하고 열매를 맺는 나무들도 유전자를 담은 씨앗을 퍼트리기 위해 과육을 붉게 하여 동물들을 유혹합니다. 포유류들이 시각을 통해 붉은색을 지각하기 시작한 것은 진화사에서 그리 오래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동물과 식물의 공존이 색을 만들어내고 더욱 짙게 했다는 것이 자연의 신비인 것입니다.

아파트 정원에 심어진 감나무를 보게 됩니다. 감들이 주황색을 너머 붉은 기운이 감돌 정도로 익어가고 있습니다. 모과나무의 열매도 진녹색 잎사귀 사이에서 약간의 노란색을 띠며 눈에 보입니다. 한여름 나뭇잎에 가려 그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숨어있더니 이제 조금씩 자기의 존재를 보여줍니다. 크기는 지금보다 작을지언정 여름 내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텐데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존재들입니다.


이제 색을 통해 자기의 존재를 드러낼 시기가 된 것입니다. 자기 유전자를 더 넓은 세상으로 내보내기 위한 노력들이 나무들 사이에서 치열한 경쟁으로 나타납니다. 자유롭게 장소와 공간을 오고 갈 수 있는 동물들에게 더 맛있게 보이기 위해 색깔을 눈에 띄게 바꾸어가고 맛깔스러운 향기도 내뿝습니다. 선택받기 위한 자기 뽐냄입니다. 그렇게 선택받은 자들이 대지위 여기저기, 저 강 너머 산 너머까지 발 달리고 날개 달린 동물을 통해 세력을 넓혀갑니다. 색은 식물 생존과 번영의 중요한 부분이었던 것입니다.


인간은 그저 자연이 펼치는 색의 향연에 마음만 들뜨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인간이 자연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는 바는 한치도 눈에 뜨이지 않습니다. 현상유지만 시켜도 다행일 텐데 오히려 파괴의 원흉입니다. 색을 색으로 바라보지 않고 동물적 色으로 바라보기도 합니다. 발정 난 색은 추해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색을 색다움으로 바라볼 때 그 안에 배어있는 은은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가을의 색은 바로 그 은은함입니다. 있는 듯 없는 듯 융합되고 배합되어 있어,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른 색을 발현합니다. 가을의 색은 그런 것입니다. 화이불치(華而不侈 ;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 검이불루(儉而不陋 ;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다) 우리 선조들의 미학적 시선을 대표하는 말입니다. 자연에 인간의 손길을 최소한으로 닿게 하여 조화롭게 만들어내는 지혜가 곧 가을 색을 보는 시선의 정수가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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