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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Oct 16. 2020

'쌀쌀함'에 대한 최대 방어 수단은?

'쌀쌀하다' 오늘 아침에 가장 적당한 단어입니다. 지금 서울의 바깥 기온은 영상 9도입니다. 새벽에 눈을 뜨고 쳐다본 휴대폰이 전하는 온도는 영상 6도였습니다. 며칠 전부터 아침 기온이 10도 언저리를 오르내리고 있음을 눈치채게 됩니다. 쌀쌀함의 느낌은 거기서 시작됩니다. 출근길 전철에서 만난 사람들의 옷차림은 벌써 트렌치 코드에 목도리 패션도 보이고 하얀 털 내피의 외투까지 눈에 띕니다. 옷차림은 벌써 겨울의 계절이 혼재되어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온도차로 인한 신체 적응의 문제입니다. 시간차의 문제였던 것입니다. 한겨울의 영상 9도는 인디언 섬머일 테니 말입니다.


'쌀쌀하다'는, 기온이 내려가 약간 춥게 느껴지는 상태를 말합니다. 춥긴 하지만 춥다고 하기엔 그렇고, 그렇다고 시원할 정도보다는 진한 것 같을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하지만 추움에 더 가까운 단어입니다. 비슷한 단어로는 서늘하다 선선하다 등이 있으나 추움쪽에 가장 가깝게 간 단어가 쌀쌀하다입니다. 의성어와 의태어가 발달한 한글에서만 표현할 수 있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에스키모인들은 '하얀 눈'에 대한 표현이 20여 개가 넘는다고 하는 것을 보면 해당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처한 자연조건이 어떠냐에 따라 표현형도 계속 변형되고 발전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언어의 형태가 발달한다는 것은 그 사회에서 그 단어 표현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글은 모든 소리를 글로 적을 수 있기에 감정 표현의 극단까지도 끌어올 수 있습니다. 감정표현의 극단은 바로 언어입니다. '사랑한다'는 표현을 제스처로 해봐야 눈짓으로 해봐야 전달이 제대로 안됩니다. 부드러운 말로 '사랑한다'라고 해야 진정한 사랑이 전달됩니다.


뭐 사랑이 철철 넘치는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 소리가 들리지 않게 하고 시각적으로 보기만 한다면 전혀 감정이 전달되지 않습니다. 감정에 있어 소리는 그만큼 중요한 매개체인 것입니다. 한국 사회가 오늘날처럼 감정의 사회가 되고 있는 것도 바로 모든 감정을 표현해 낼 수 있는 한국어의 특성에서 발현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하지만 영어에서 '쌀쌀하다'를 대신할 단어를 찾는다면 'chilly' 정도의 형용사밖에 없습니다. cold나 cool로는 쌀쌀하다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그나마 chilly 정도도 'appreciably or disagreeably cold' 표현이어서 우리 정서의 쌀쌀함을 대신하기엔 어렵지 않나 봅니다. 어떻게 보면 영어는 명쾌한 것일 수 있습니다. 추우면 추운 거고 더우면 더운 거지 애매하게 쌀쌀하다 으슬으슬하다고 온도를 세분화해서 표현하면 더 헷갈릴 수 있습니다. 춥다는 거야 덥다는 거야 어떻다는 거야로 말입니다. 그래서 영어는 딱 들으면 명확해집니다. 애매함이 없습니다.

이 쌀쌀함을 거시적인 지구 대기학적으로 보면 한반도의 경우 북쪽에 위치한 차가운 시베리아 기단의 세력이 커져 따뜻한 북태평양 기단을 밀고 내려오기 때문입니다. 이는 지구의 공전 주기에 따라 조금씩 변하는 기울기에 따라 태양의 햇빛 길이에 따른 영향 때문입니다. 지구 표층에 발을 디디고 사는 모든 생명체는 공전의 움직임이라는 절대적 영향권 아래에 있습니다. 지구 생명체에게 있어서 태양은 절대 신이며 자전과 공전의 움직임은 생사여탈권을 쥔 절대자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구 생명의 기원이 바로 태양에너지로부터 발원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태양은 생명을 탄생시키기도 하지만 죽이기도 합니다. 쌀쌀함의 기원이 뜨거움에서 오는 아이러니였던 것입니다.


강약 세기의 조절, 메비우스의 띠 같은 순환의 길에서 쌀쌀함은 그 어느 단계에 있겠지만 그 위치가 어디인지는 나타낼 수 없는 그런 시간입니다. 알 수 없는 시간의 어느 순간을 쌀쌀함이라 하는데 그 순간은 생명체에게 많은 변화와 적응을 요구합니다. 쌀쌀함은 움직임을 둔화시키고 호르몬의 배출을 억제시킵니다. 이런 환경에 40억 년 적응하고 생존해온 생명체들은 제각각의 방법으로 그 쌀쌀함을 대합니다. 인간은 보온이 되는 옷을 더 입음으로써 체온의 변화를 최소화시키고 식물들은 잎을 떨어 버려 에너지를 최소화시킬 준비를 합니다.


쌀쌀함에 대한 준비를 하는 것 중에 최고는 움직임을 통해 외부의 쌀쌀함에 대응하는 것입니다. 수동적인 막음을 통해서는 한계가 있습니다. 적극적인 움직임을 통해 스스로 발열함으로써 외부와의 온도차를 극복하는 것입니다. 빼앗긴 온도만큼 스스로 열을 내어 상쇄시키는 에너지 보존법칙이 여기에도 존재합니다. 

움직임.

쌀쌀함에 대한 최선의 방어수단인 것입니다. 움직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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