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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Oct 20. 2020

몸의 기억

아침 7시. 사무실에 적막만이 흐릅니다. 순번으로 돌아가는 당직자를 빼고 나이순으로 출근하는 묘한 분위기가 있지만 그래도 벌써 사무실에는 4명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습니다. 멀리 켜놓은 텔레비전에서 아나운서가 떠드는 소리만이 희미하게 들려옵니다. 홍보실이야 매일 이 시간이 제일 정신없고 긴장되는 순간입니다. 신문 및 방송에 나오는 기사 검색을 하고 보고를 하는 시간이 짧은 이 아침에 모두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침 이 시간이 기사 보고를 최종으로 하는 8시까지 조용히 가야 오늘 하루의 분위기를 잡아갈 수 있습니다. 안 좋은 기사라도 있는 날이면 여기저기 전화통이 정신없이 울려댑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 적막은 상대적으로 '특별한 기사가 없음'을 알려주는 바로미터입니다. 국정감사 중이라 다들 예민하게 주시하고 있는 와중인데 이런 고요함은 다소 예외의 순간이라고 할 수 도 있습니다.


고요와 침묵을 즐겨봅니다. 오늘 아침은 전화 한 통 걸려오지 않습니다. 정적, 침묵, 태풍의 눈과 같은 고요일까요. 자판을 움직이는 손가락이 누르는 키보드 달그닥 거리는 소리만 들립니다. 그리고 머리 위로 실내 환기를 위해 흐르는 벤틸레이션의 공기 소리만 남습니다. 마치 독서실에 들어와 있는 기분입니다. 입시를 앞둔 학생이 책을 들여다보듯 하얀 화면 위로 까만 글자들이 새겨지는 것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이 화면의 글로 옮겨지는 신기한 현상을 쳐다보고 있는 것입니다.

자판의 자음과 모음의 순서를 손가락들은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지도 참 신기합니다. 손가락들은 자판의 간격을 알고 정확히 글자들을 만들어 냅니다. 평소에 잘 사용하지 않는 맨 위칸의 숫자를 입력하려고 하면 자판을 내려다봐야 합니다. 정확한 위치를 손가락이 기억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의 매일 자판을 두드리며 회사 생활한 지가 30년이 되었으니 수천 시간을 글자를 입력해봤을 것입니다. 손가락이 자판을 기억하는 원리입니다.


몸의 기억입니다. 머리까지 명령어가 전달되지 않더라도 손의 기억만으로도 행동을 이끌어내는 것입니다. 그것이 효율적이기 때문입니다. 매번 글자를 입력할 때 자판에 있는 자음과 모음의 위치를 다시 생각해내고 찾는다고 하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비효율적일 겁니다. 기억은 바로 적응입니다. 몸의 기억은 그만큼 효과적인 적응이었던 것입니다. 수영을 하고 자전거를 타는 일을 오랫동안 하지 않아도 바로 할 수 있는 능력과 같은 것입니다.


전문가와 기능인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시간적으로는 10년 이상을 한 분야에서 꾸준히 종사해야 전문가로서의 평판을 들을 수 있으며 같은 작업이라도 1만 번 이상 해봐야 잘한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긴 세월과 반복은 바로 몸의 기억을 재생시키는 훈련의 시간이었고 그 시간을 견뎌낸 사람만이 전문가가 되고 기능인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나는 눈 감고도 해낼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는지 되새겨봅니다. 그저 눈 감고도 숟가락질할 수 있고 세수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고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데 잘 해내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말입니다. 부끄럽게도 떠오르는 기능이 없습니다. 전문가가 되기 위한, 기능인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결론입니다. 이것저것 많은 것을 수행하기는 하지만 아주 잘하지는 못하고 그저 뒤처지지 않을 정도만 해온 것입니다.


무엇을 하든지 어떤 일을 하던지 전문가처럼 해내도록 해야겠습니다.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관심 있고 하고 싶은 것은 반드시 최선을 다해야겠습니다. 그래서 몸이 기억하는 전문가 수준으로 기능을 향상하고 지식을 축적해야겠습니다.


잊고 지냈던 몸의 기억이 있으면 되살리고, 되살릴 몸의 기억이 없으면 새로 만들기 시작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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