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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Oct 29. 2020

"당신, 해봤어?"

만추(晩秋). 늦은 가을 무렵을 일컫는 말입니다. 가을이 깊었다는 표현을 할 때 등장하는 용어입니다. 같은 단어이지만 한자의 뜻을 바꿔 봅니다. 만추(滿秋)라고 말입니다. 가을이 가득 찼습니다. 절정입니다. 서울, 그것도 시내에서는 그렇습니다. 아직도 만추이기를 거부하는 가로수들도 있습니다. 아니 자동차의 열기로 아직 가을이 되지 못한 가로수의 비극인지도 모릅니다. 아니 아직 색을 바꾸지 못한 덕에 남아있는 가을을 기대하고 누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색의 조화가 이루어집니다. 세상의 조합은 참 묘한 것을 눈치챕니다. 가로수들이 다양한 색감으로 채색된 조화가 최고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서울시내는 말입니다.


다음 주 토요일이면 벌써 절기상 겨울에 접어든다는 입동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오는 듯하더니 벌써 가버리는 계절이 가을의 모습입니다. 알아채고 잡아채는 사람만이 느끼고 알 수 있는 계절이 바로 가을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나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가을색을 놓지 않은 가로수 덕에 가을의 끝자락을 붙잡고 가을이라 우겨봅니다. 혼재의 계절입니다. 섞여있습니다. 다양성입니다. 자연의 본질이자 생명의 본질입니다. 다양성이 표준입니다.


우리는 지금 자연의 다양성 중에 하나를 개념화해서 '가을'이라 칭하고 감정을 부여하고 우수에 젖기도 합니다. 감정은 문화입니다. 개념을 만든 게 문화이기에 민족에 따라 나라에 따라 천차만별의 개념과 용어를 쏟아 냅니다. 그 '가을'의 다양성 가운데 우리는 내가 경험한 과거 모든 가을에 대한 기억을 불러오고 오늘 지나온 덕수궁 돌담길의 색감과 설악산, 계룡산 색감을 오버랩시켜 나만의 '가을'을 떠올립니다. 이렇게 '가을'은 각자의 '가을'로 계절을 시뮬레이션합니다.


생각하고 기억하고 말하고 흥분하고 우울하고 즐겁고의 모든 감정과 드러냄이 호모 사피엔스가 군집을 이루며 번성하게 된 근본 원인이자 본질입니다. 근원을 추적하면 어떻게 존재하게 되는지, 보이는 성상의 현현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오고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 저 붉고 노란 색깔의 나뭇잎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래 그 자리에 그렇게 그런 색깔로 그렇게 있는 게 맞음"을 눈치채게 됩니다.

인간 브레인을 들여다봐도 마찬가지입니다. 브레인 작용의 모든 것은 뇌신경 세포 스파인 말단에서 일어나는 시냅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기억과 사랑과 죽음과 행복의 모든 것이 벌어지는 현장입니다.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으면 이상한 일입니다. 들여다봐야 합니다. 지금은 과학기술의 발달로 브레인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인간 브레인의 뇌세포는 1,000억 개가 넘습니다. 그 1,000억 개가 넘는 신경세포들의 각각이 1만 개 이상의 시냅스 상호 작용을 합니다. 인간의 숫자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계산이 머릿속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댜양하지 않은 게 이상하고 개개인의 개성이 없는 게 이상해집니다. 그것이 기억이고 그것이 생각입니다.


바로 다양성의 접근은 '적당하다'라는 해석의 또 다른 표현이지 싶습니다. 사전적 의미의 적당하다는 "들어맞거나 어울리도록 알맞다"는 뜻입니다. 중도이자 중용하고도 일맥상통하는 말이며 영어의 suitable, moderate, proper 정도의 뜻입니다. 뇌과학에서 '적당하다'는 의미의 해석은 의미심장합니다. 바로 인간 의식에서 '정상'이라는 것이 있느냐는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인간 의식은 스펙트럼만이 있습니다. 어느 수준이 정상이고 어느 수준이 비정상인지에 대한 표준은 해석에 달려있습니다. 현재 우리의 의식 수준이 정상인지 비정상인지는 그 시대의 사상과 현실을 반영한 결과물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바로 '적당한 수준'이 정상이라는 결론입니다.


브레인의 뇌세포에 스파인이 많이 만들어지면 기억이 좋아지지만 그 스파인이 너무 많이 생성되어 시냅스가 과도하게 발생하면 그것이 자폐증이 됩니다. 또 스파인이 줄어들거나 죽어나가면 치매가 됩니다. 뇌과학에도 바로 '적당함'이 적용됩니다. 이 '적당함'의 수준은 너무도 예민하고 방대하여 기준점의 스펙트럼이 넓다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현대 뇌과학은 이 스펙트럼의 수준을 정하는 일이고 밝히는 일일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적당히 잘하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기억을 잘해야 합니다. 기억을 잘하려면 '반복'적으로 해야 하며 '감동받는 일'을 하거나 경험해야 합니다. 다양한 경험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당신 해봤어?"의 의미가 그렇게 의미심장한 것입니다. 비교할 수 있는 경험치가 많아야 감동받을 수 있고 기억도 할 수 있습니다. 과거 기억을 피드백하고 비교할 수 없으면 기억할 수 없고 생각으로 표출할 수 없습니다. 결국 반복 훈련을 통해 기억을 만들어야 감동을 통해 각인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반복하여 공부해야 할 이유입니다.


나이가 들어서 기억력이 떨어진다는 핑계는 이제 개나 줘버려야 합니다. 자연이 부르는 날까지 공부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래야 이 만추의 계절을 느끼고 감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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