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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Nov 06. 2020

코로나 19로 인한 골프 넋두리

내일이 입동이라 겨울의 초입이긴 하지만 아직은 들로 산으로 야외 활동하기가 좋은 계절입니다. 코로나 19가 장벽처럼 막아서 있긴 하지만 말입니다. 그래도 조심조심 마스크 쓰고 개인위생에 신경 쓰며 눈에 담아둘 일입니다. 기억의 저장 창고에 공백이 생기면 내년에 다시 그 기억을 떠올리지 못할 듯해서입니다. 연속적으로 이어져야 기억도 줄줄이 사탕처럼 이어져 나올 텐데 2020년의 기억이 채워지지 못하면 나머지 해당 기억조차 인출해 내지 못할 것 같은 걱정 때문입니다. 기억의 치매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조심조심 자연의 향기를 브레인의 저장 창고에 각인시킬 일입니다.


그런데 주말인 내일엔 비가 온다고 예보되어 있으니 어떡하죠?


그러고 보니 작년 이맘때면 가까운 사람들과의 골프약속도 여러 건씩 잡혀 있었는데 올해는 약속된 골프 약속이 연말까지 하나도 없습니다. 요즘 골프장 부킹이 하늘의 별따기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린피가 장난이 아니게 비싸졌기 때문입니다. 평일의 경우도 작년의 거의 배 이상 가격이 비싸졌고 그나마 예약이 안될 정도입니다. 주말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젠 주중에 골프 나가도 그린피, 카트비, 캐디피에다 가볍게 식사라도 할라치면 30만 원 정도 지출해야 할 정도여서 월급쟁이가 언감생심 쳐다보지도 못할 비용이 되었습니다. 코로나 19로 골프장이 미쳐 돌아가고 있는 만큼 골퍼들도 같이 미쳐가고 있는 느낌입니다. 요즘은 골프장 부킹 했다는 것이 자랑거리가 되고 있을 정도입니다. 돈이 문제가 아니고 부킹을 했냐 못했냐가 쟁점입니다. 심지어 골프장 부킹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웃돈을 주고 부킹 시간을 샀다는 이야기가 들립니다. 주중 5만 원, 주말은 15만 원을 추가로 달라고 하더랍니다. 물론 암암리에  부킹 시간을 선점해서 파는 중개인들의 못된 상술이 있기 때문인데 그만큼 공급 대비 수요가 많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입니다. 누가 미친 걸까요? 골프장이 미친 걸까요? 아니면 그 돈이라도 내고 골프를 쳐야 하는 골퍼들이 미친 걸까요? 사실 그린피 걱정하고 할 정도면 골프채 놓는 것이 맞습니다만 그래도 뭔가 찜찜함, 내가 놓고 싶어서 놓는 것이 아니고 강제로 골프채를 빼앗기는 느낌이랄까요?

제가 보기에는 우리나라 비즈니스 생태계가 미쳐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골프가 운동이 아니고 접대문화의 상징이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비즈니스 수단으로써 골프만 한 것이 없긴 합니다. 하루 종일 상대방과 같이 카트도 타고 다녀야 하고 식사도 같이 해야 해서 가까워질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본질인 운동보다 사교의 수단으로 더 작동하기에 여러 문제가 부수적으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운동으로서만 골프가 기능한다면 지금처럼 골프장 부킹이 안될 수가 없습니다. 골프를 쳐보신 분은 알겠지만 "이런 운동을 왜 하지?" 하는 느낌이 들 때가 많습니다. 돈도 많이 들지, 시간도 많이 들지, 안 맞아서 신경질 나지, 카트 타고 다니니 운동도 안되지 뭐 좋은 이유를 대라면 유일하게 잔디를 밟고 잘 조경된 자연 풍광 속에 있다는 것일 겁니다. 그런데 그 정도 자연을 감상하려면 등산 가는 것이 훨씬 좋을 텐데 왜 골프장에 몰리는 사람이 그렇게 많을까요? 뭔가 이유가 있다는 겁니다.


그중에는 '골프가 안되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있습니다. "안 맞기 때문에 골프장에 자꾸 간다고?" 역설이기도 하지만 필드에 나갈 때마다 다르기 때문에 자꾸 도전하고 싶어 진다는 겁니다. 또한 18홀 돌고 나면 기억에 남는 것은 잘 맞은 드라이버 샷, 버디 한 홀 정도만 기억에 남깁니다. 한 라운드에서 100타 정도 쳤는데 기억에 잔존하는 것은 잘 맞은 서너 개 샷만 있습니다. 낚시광들이 놓친 고기는 '항상 월척'이듯이 말입니다.  다음번 필드 나가면 다른 샷들도 정말 잘 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 나갑니다. 그런데 스코어는 그때그때 다릅니다. 이를 어찌해야 할까요? 또 나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무한 루프를 돌게 하는 운동. 이것이 골프입니다. 참 희얀하죠.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 중에 한국인의 구미에 딱 맞는, 도박이라고 하기엔 그렇지만 약간의 돈을 내고 경기에 몰입하게 하는 '쪼는 맛'이 일품이라는 것입니다. 이것 역시 중독입니다. 작은 돈이지만 사람들을 긴장하게 합니다. 경기에 몰입하게 합니다. 참 희얀하죠.


그래도 저는 멀리건, 컨시드 없이 액면으로 80대 초중반 수준을 치고 있는데 이젠 스코어를 잊어야 할까 봅니다. 골프를 2002년 월드컵 전에 시작했으니 20년 정도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젠 몸에 익은 스윙 자세대로 치고는 있는데 정말 희얀한건 스윙 폼은 자기가 편한 자세대로 세팅되어 변해간다는 것입니다. 연습을 지속적으로 해야 하고 코칭을 계속 받아야 현상유지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골프는 "비탈길에 세워둔 자동차와 같다"라고 합니다. 비탈길에서 뒤로 밀리지 않고 제자리에 있기 위해서라도 액설 레이터를 계속 밟아주어야 한다는 겁니다. 앞으로 가기 위해서 스코어를 줄이기 위해서는 엑설 레이터를 더 세계 밟아야 하고 연습을 더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이죠. 참 희얀한 운동이죠. 그래서 묘미가 있고 재미가 있는 게 골프인가 봅니다. 프로골프 선수가 매번 경기에서 우승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타이거 우즈 정도 되면 매회 매년 우승해야 할 텐데 그렇지 않은 것이죠.


골프라는 운동은 히얀하게도 필드에서 익힐 수밖에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현장에서 해봐야 알게 되는 것들이 골프에서는 더 작동한다는 겁니다. 숏 게임이 그렇고 퍼팅이 그렇고 아니 모든 샷들이 그렇습니다. 스크린에서 아무리 잘 치는 것 같아도 필드에 나가면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됩니다. 무한대의 자연환경이 확률로 작동하기에 그렇습니다. 스크린은 그 많은 확률을 제한적으로 한정해놓은 게임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올해는 친구들과 골프 납회도 못하고 지나갈 판이라 넋두리를 해봤습니다. 동계 훈련이나 빡세게 해 볼 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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