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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Nov 09. 2020

추울수록 밖으로 나가 뛰어라

월요일 아침, 서울의 기온은 영상 1도. 어제저녁부터 기온이 슬슬 내려오더니 이젠 얼음을 얼릴 기세입니다. 뺨에 닿는 아침 기온이 지난주와 확연히 다름을 알게 됩니다. 사실 예년 같으면 이번 주에 대입 수능시험도 있고 해서 소위 수능 추위도 있고 본격적인 겨울 채비로 나설 시기이긴 했습니다. 올해는 대입 수능시험일이 코로나 19로 한 달 정도 뒤로 밀려 12월 3일(목)입니다.


사실 아침 기온이 한자리 숫자로 오르락내리락 한지는 며칠 되었습니다. 겨울의 한 복판으로 가기 위한 준비운동을 살살하라는 경고가 있었던 것입니다. 겨울채비를 하기 위해서는 추위의 한 복판으로 직접 나서봐야 합니다. 체감온도가 얼마나 되는지 알아야 옷의 두께와 무게의 적정성을 산출해낼 수 있습니다. 물론 미디어에서 알려주는 기온의 숫자에 따라 맞출 수 도 있습니다. 하지만 직접 경험의 중요성은 언급할 필요도 없습니다.


매일 아침 집을 나서는 직장인들은 실시간으로 기온의 체감을 경험할 수밖에 없는 운명입니다. 어찌 보면 삶의 환경을 가장 잘 대면하고 있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도 직접 바깥 기온에 나서 봅니다. 어차피 나설 길이라면 즐기면 됩니다.


본인의 모든 감각을 통해 느끼고 체험을 하면 추위를 비롯하여 모든 것을 알게 되고 느끼게 됩니다. 추위조차도 내 것이 됩니다. 이 직접 경험이 쌓여야 간접 접근이 가능한 것입니다. 간접적으로 듣고 보아서 춥다는 것 역시 내가 과거에 그 정도 기온에서는 어느 정도 추위를 느꼈었는지에 대한 경험치가 판단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지만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알게 됩니다. 이는 곧 경험입니다. 직접 뛰고 보고 만나고 만져보아야 합니다. 체험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 현상이 각인이 됩니다. 각인이 된다는 것은 해마와 그물핵과 대뇌피질에 기억을 저장하는 주력 통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뉴런들이 평생 새로 생기고 죽어나갈 때에도 굳건히 살아남을 정도의 튼튼한 기억입니다. 기억이라는 것이 세포막 사이의 전위차라는 물질적 존재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우리는 체험이 살아있음의 생존을 위해 가장 절실한 현상임을 본능적으로 압니다. 산다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본능적으로 안다는, DNA내에 내재되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것, 그것은 바로 생존의 비밀이었습니다. 적응은 바로 생존과 본능을 통한 생사의 경계선이었습니다. 춥다는 것은 눈 쌓인 대지를 걸어 초록의 평원을 찾아가는 원동력이었고 새로운 도구를 만들고 불을 간직하는 방법을 고안해 내게 만든 원천이었습니다. 춥다는 것은 그렇게 인류 생존에 지대한 영향을 준 자연의 선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떤 종족에게는 추위가 멸절을 가져오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바로 빙하기 때 남아메리카로 이동했던 원주민들입니다. 이들은 16세기 유럽의 대항해 시대의 정복 당시 천연두로 인구의 90% 이상이 사망하는 엄청난 시련을 겪었습니다. 바로 지구의 마지막 빙하기가 도래했던 1만 8천 년 전, 따뜻한 곳을 찾아 정처 없이 길을 떠나 얼어붙은 베링해를 거쳐 알래스카로 접어듭니다. 로렌타이드 빙상과 코르딜레라 빙상 사이를 통과하면서 천연두 항체를 모두 잃게 됩니다. 추운 빙하 사이를 통과해 내려갈 때  바이러스들이 모두 사멸해 버리면서 원주민들의 항체도 없어졌던 것입니다. 그러다 스페인, 포르투갈의 침입으로 퍼진 천연두로 몰살을 당하는 비극을 겪은 것입니다.


현대의 우리는 이 추위를 또 어떤 창의로 새롭게 해석하고 적응해 나가야 할까요? 코로나 19의 바이러스 공포에 휩싸여 있는 동안 바깥의 다가오는 추위조차 두려움의 대상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춥다고 창문을 꽁꽁 닫아걸어 공기의 흐름을 실내에 가두어 놓습니다. 실내에 퍼진 바이러스들이 확산을 하는데 최적의 조건을 만들어줍니다. 춥다고 운동도 안 하니 체력도 떨어져 면역력도 약해집니다. 추위가 바이러스의 기승을 증폭시킨 것이 아니고 추위를 잘못 받아들인 인간의 행동 양식에 문제가 있었던 것입니다.


맞서야 합니다. 추위에 다가가고 이겨내야 합니다. 코로나 19 바이러스가 감히 범접하지 못할 정도의 체력과 적응력을 키워야 합니다. 물론 백신과 치료제가 나올 때까지 조심하는 게 최선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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