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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Nov 25. 2020

상징의 공유

휴대폰 화면에 찍히는 아침 온도가 영상 1도입니다. 아침 글을 쓰는 지금은 조금 올라 3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태양이 지평선을 올라와 에너지를 전하고 있으니 기온이 빠른 속도로 오르겠지만 기온의 기울기가 평탄하다는 것은 태양이 아직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기온조차도 사실 언어의 표현으로 그 의미를 갖습니다. 

'춥다'라는 표현이 온도계의 어느 정도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는 언어적 표현으로써만이 가능한 인식 표출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언어의 장'에 갇혀 있습니다. 언어가 생각과 개념을 만들어내고 범주화합니다. 인간 사고의 기본 틀이며 감정을 만들어내는 출발점이 바로 언어입니다. 혼자 떠올리는 내적 언어가 바로 생각입니다. 우리 브레인은 개념을 동원해 감각 신호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것이 어디에서 왔는지, 세계에 있는 무엇을 가리키는지 그리고 그것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을 만들어 냅니다. 우리는 지각하고 피부에 닿는 온도조차 너무나도 생생하고 직접적이기 때문에 세계 자체를 경험한다고 믿지만 실제로 경험하는 것은 "내가 구성한 세계"입니다. 우리가 경험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은 사실 "내 머릿속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하지만 내 머릿속의 개념조차 동의하는 사람이 있어야 의미를 갖습니다. 나 혼자 알고 있는 개념과 단어는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 사람이 공유하는 지식을 집단 지향성(collective intentionality)이라고 합니다. 사람의 감정조차 집단 지향성입니다. '분노'를 얼굴에 표현할 때도 '분노'에 대한 공유된 이해가 있어야 '분노'임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화난 표정이 역력한데 언어로는 '즐거움'이라고 했다면 서로의 감정 전달이 될 수 없습니다. 학습과 교육은 그만큼 사회를 형성해 나가는 중요한 요인이었던 것입니다.

온도에 대한 학습조차도 바로 인간 사회의 기본 언어였기에 집단 지향성으로 공유되어 같은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0'도에서는 액체가 얼고 차갑고 겨울이고 등등 모든 개념과 의미가 따라붙습니다. 사실 온도의 변화는 자연의 대기 순환 현상으로, 너무도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한반도를 덮고 있던 기류들이 모여 대지로 내려올 때 지상의 온도가 높으면 비의 형태로 내려올 것이고 북극의 차가운 시베리아 기단들이 밀고 들어오면 기온이 더욱 내려갈 겁니다. 이 물리적 현상에 익숙해져 있다 보니 이 순환의 패턴을 읽어내고 예측을 합니다. 곧 추워질 것이고 영하로 내려가 얼음이 얼고 눈이 내릴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 예측의 해석에 지형적, 관습적, 문화적 배경이 접목되면 "대입수능일만 되면 날씨가 춥다"는 등식이 성립됩니다. 의미를 부여해 자연현상을 해석하는 방법입니다.


기온이 낮긴 하지만 해가 중천을 향해 가고 있을 시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침이 늦게 시작된 듯한 느낌입니다. 어둠의 길이가 아침 시간까지 점령해 들어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둠의 길이가 길어졌지만 그 안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의 행태는 바뀌지 않습니다. 태양이 지배하던 한여름과 똑같이 움직임을 합니다. 자연은 바뀌는데 사람은 바뀌지 않는 독특한 현상입니다. 일조량의 변화에 따른 호르몬의 감소로 인해 우울해하는 사람들도 있긴 합니다. 자연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이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시간'이라는 상징을 만들어냈습니다. 상징은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상징은 바로 다른 상징들의 맥락과 관계 속에서만 존재합니다. 생명체중 인간만이 시간의 화살 방향에 일희일비합니다. 바로 시간의 상징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이 언어를 통한 상징성의 공유를 통해 자연의 흐름을 이겨내는 지혜와 생존의 방법을 알아냈습니다. 인간을 제외한 모든 생명체는 자연의 흐름에 순응합니다. 그렇게 진화되어 왔기에 당연한 것입니다. 기온이 내려가면 잎을 내려놓고 봄을 기다리고 생명유지의 에너지를 원활히 공급할 수 없을 때는 동면에 들어가기도 합니다. 오직 인간만이 추운 계절과 어둠을 이겨내기 위한 방법들을 개발해내어 다른 생명체를 지배함으로써 에너지의 공급을 이어왔습니다.


아직 앞으로 한 달 정도는 더 어둠의 세력이 지배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밤의 길이가 가장 길어지는 동지가 될 때까지 말입니다. 그날이 오면, 벌써 땅 밑 저 아래에서는 새로운 계절을 맞이할 준비를 할 겁니다. 생명의 성장판을 깨우고 땅속 깊이 흐르는 물줄기를 찾아 발아시킬 준비를 할 겁니다. 차곡차곡 준비를 해놓았다가 어느 봄날 온 대지를 초록의 색깔로 덮어버릴 것이고 그 색깔 안에 온갖 생명을 풀어놓을 것입니다.


세상의 깊이는 그 안에 있습니다. 어둠에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미래의 따뜻한 날을 준비하는 휴식의 침묵이었던 것입니다. 생명이 숨 쉬고 약동하는 어둠 속의 진실을 들여다보면 밖의 저 차가움 조차도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당연한 모습임을 알게 됩니다.


상징에 의미를 부여해야만 목표가 되고 실현시킬 수 있습니다. 그래야 12월을 어떻게 맞을 것인지도 다짐할 수 있습니다. 상상과 상징을 현실로 만드는, 그런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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