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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Nov 24. 2020

발가벗고 드러내 보여주는 일

이 아침, 체크해야 할 이메일을 일견하고 백지의 화면과 마주합니다. 무엇을 써 내려갈지는, 매일 아침 마주하는 망설임입니다. 그 망설임조차 글로 나타내기를 벌써 몇 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개발새발일 수 도 있고 가끔은 예전의 글들을 훔쳐보다가 이 글을 내가 쓴 것이 맞는가 하고 의심이 들 정도일 경우도 있습니다. 모든 것을 기억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매일의 기억이든 생각이든 또 다른 브레인의 확장인 편지나 이메일을 통해 남겨놓는다는 것은 역시 '기억의 확장성'에 있어 중요한 이정표가 됩니다. 과거를 끌고 올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항상 그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의 경험과 생각들이 그 글 안에 녹아 있습니다.


무언가 해야만 하는 강박에 시달리면 제약이 따라옵니다. 좀 더 글을 잘 써야 할 텐데, 이것을 타인이 보면 무어라 생각할까 등등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망상들이 글의 흐름을 방해합니다. 그러면 일상을 술술 담아내던 글들에 과장이 숨어들게 됩니다. 글이라는 것은 그래서 힘든 작업입니다.


매일매일 예전 오늘 썼던 글들을 퍼올려 옵니다. 어떤 날은 글들이 5개 이상 있을 때도 있고 어떤 날은 2~3개가 있을 때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글들이 아침에 쓰이는 것이라 일기예보 수준의 서두로 시작합니다. 기상청에 "과거의 그날, 아침 날씨"에 대한 정보를 팔아도 될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그 시작의 화두를 통해 하루의 모습들이 되살아납니다. 5년 전 오늘 아침은 상당히 쌀쌀해서 트렌치코트를 입을 것인지 두터운 외투로 바꾸어 입을 것인지 아침에 고민했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기억의 확장"은 그렇게 아침의 글 속에 일상을 담아내고 또 어떤 날은 그날 아침의 생각과 사회의 분위기와 주변의 소소한 스쳐감도 새겨져 있습니다. 소중한 하나하나의 모습입니다.


세상 모든 일은 "무한대의 가능성으로 발생한 현상"으로 존재합니다. 그 무한대 중, 하나하나의 형태가 바로 매일 쓰는 글의 하나로 표현됩니다. 그냥 놔두고 잊고 있어도 그 또한 무한대의 존재 형태이지만 글을 통해 형체를 갖고 기억의 뿌리로 새롭게 되새김됩니다. 아침 글이란 그런 생명력을 갖는데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래서 아침 글은 설렘을 동반합니다. 설렘은 어떤 의미일까요? 현재와 미래에 대한 긍정적 기대입니다. 나에게 좋은 일이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가벼운 흥분으로 전달되어 아드레날린을 분출하여 신경이 평소보다 과반응하는 현상입니다. 그런 설렘이 이 아침에 늘 함께 합니다.


이 글을 읽어주는 몇몇 대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긍정의 대상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 대상이 사람이 되었던 자연 풍경이 되었던, 어떤 사물이 되었던 삶에 활력이 된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삶의 자극이 되는 대상을 긍정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엄청난 수준 차이가 있습니다. 수준이라는 단어 자체가 높낮이의 깊이를 담고 있긴 합니다만 우열의 차이를 담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좋고 나쁨의 차원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만에 빠지지 말고 남보다 낫다는 아집에 들어서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속한 수준의 수위를 알고 그 수위를 지속적으로 높이고 향상하는 쪽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자아의 발전이며 계발입니다. 관조하듯 위치를 확인하고 전진해 갑니다. 먼저 있던 자리와 위치가 지금 보다 못한 것이 아니라 좀 더 많은 지혜와 지식을 담아 가고 있는 것이라 여깁니다. 똑같은 듯 하나 전혀 다른 그룻이 됩니다. 그렇다고 우열이 있는 차별의 그릇이 아닙니다. 그 존재 자체로 의미가 있는 그런 담음입니다. 작았을 때는 그 자체로의 아름다움이 있고 조금 더 컸을 때는 큰 나름대로의 멋이 있어야 합니다. 치우침과 차별이 없는 상태, 과녁을 맞히기 위해 용을 쓰는 중용의 경지에 이르러야 수준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아침 글의 설렘 수준은 잔잔한 호수에 파문이 밀려가는 파동입니다. 내면을 들여다보는 거울입니다. 하루를 시작하기에 충분히 예열된 상태입니다. 바깥 기온은 낮지만 '파이팅'하는 하루의 시작이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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