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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Nov 23. 2020

숫자 '0'의 변곡점

가을과 겨울의 경계를 이야기할 때 온도 '0'이 등장합니다. 아침마다 울리는 휴대폰 알람 소리와 함께 보게 되는 게 아침 온도인데 오늘 드디어 '0'이라는 숫자보다 더 아래로 내려가 '-'를 찍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 온도는 영하 1도였습니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기록하는 영하의 기온입니다. 그나마 아침에 나선 바깥은 바람이 없어서 그런지 체감온도가 기온보다 더 낮지는 않아서 다행입니다.


이젠 단풍과 낙엽을 이야기하기보다 눈과 얼음을 이야기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생태계에 있어 온도 '0'의 의미는 커다란 전환점입니다. 바로 '0'은 액체인 물이 고체로 되는 변곡점이기 때문입니다. 액체가 고체가 되면 일단 흐름이 '0'이 됩니다. 이 '0'에는 그만큼 큰 의미도 함께 존재합니다.


흐르지 않으면 모든 것은 멈추게 됩니다. 생명의 흐름도 역시 멈추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자연은 그리 호락호락하거나 녹녹지 않습니다. 흐름을 멈추고 서야 하지만 그 흐름을 끊이지 않고 이어가기 위한 생명의 위대한 흐름이 또 존재합니다. 땅 속 깊이 생명을 감추거나 외부의 숫자 '0'에 함몰되지 않기 위해 쉼 없이 에너지를 모으고 발산하여 '0'에 대항을 합니다. 그렇게 적응하고 대항하여 '0'이 주는 의미를 그저 변화의 순간으로 인식하고 치부해 버리는 경지에 까지 이르렀습니다. 우리는 지금 자연의 순환에 있어 쉼의 순간을 너머 도약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 추위의 변곡점에 서서 말입니다.

숫자 '0'의 변곡점은 사람들의 표정까지도 변화를 줍니다. 어깨를 잔뜩 움츠리다 보면 얼굴 표정도 같이 굳어집니다. 찬바람에 노출되어 얼얼해진 얼굴에 밝은 미소가 스며들 틈이 없습니다. 세상이 온통 삭막하고 험악해 보입니다. 어떻게 하면 밝게 바꿀 수 있을까요?


"사람은 어떻게 사는가?" 타인의 얼굴 표정 속에 산다고 합니다. "내가 아는 주변인의 얼굴 속에 내가 있고 나라는 존재 자체는 없다"는 역설입니다. 사회라는 집단이 형성되고 그 안에서 살아야 하는 필연 앞에서 이 관계의 형성을 가장 극단적으로 표현한 문구가 아닌가 합니다. 자아는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표현으로 주변을 살피게 됩니다. 타인이 내게 원하는 것이 타인의 얼굴 표정에 나타나고 나는 그 얼굴 표정을 살펴 선호를 맞춰 나가는 것. 바로 관계입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상대의 얼굴 표정이 환해지는 쪽으로 계속 발전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긍정적인 표현을 하고 긍정적인 행동을 하면 타인도 긍정적으로 될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긍정의 관계입니다.


이렇게 모 여살 수밖에 없는 사회적 구조속에서 최고의 선을 추구하는 방법이 서로 생존해 나가는 최고의 방법임을 알려줍니다. 결국 생존이라는 근원에 도달합니다. 살아남기 위한 최선의 방법을 찾기 마련이라는 겁니다. 자연선택을 통해 끝없이 진화되고 최고의 생존 상황을 연출한 것, 바로 주변인과의 관계 속에서 그 확률을 높여왔기 때문에 가능한 겁니다. 지진과 같은 전혀 예상치 못한 자연재해 상황이 벌어지면 그 상황을 빨리 진화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시도됩니다. 마찬가지로 현대사회는 극단의 끝에 서 있는 사람들의 생각을 어떻게 주변인의 관계로 끌어들일 수 있는가가 현 인류의 과제가 아닌가 합니다.


분명 어떤 이유가, 어떤 오해가 사이클을 그리며 공존하고 있을 겁니다. 극단의 사람들은 타인의 얼굴에서 자기 얼굴을 발견해내지 못하는 사람들일 겁니다. 편협과 편식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들을 가져오는지는 여러 사회현상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자기의 얼굴을 스스로 볼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거울을 통해, 창문에 비치는 모습의 얼굴이 자기의 얼굴이라고 인식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거울이 갖는 굴곡으로 생긴 왜곡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결국 내 얼굴을 보는 주변인들의 얼굴이 내 얼굴 표정임은 자명합니다. 주변인의 표정이 밝은지 한번 둘러봐야겠습니다. 주변인의 표정이 밝지 못한 것은 내 얼굴이 밝지 않기 때문임을 시인하고 밝게 웃는 얼굴로 바꿔야겠습니다.


숫자 '0'의 변곡점 아래로 내려갔던 이 아침 기온이 서서히 '+'로 올라가듯 표정의 밝음도 높아지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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