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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Dec 01. 2020

코로나 19로 지워진 달력 속 약속들

12월입니다. 추운 한 달이 될까요? 밖은 춥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따뜻한 한 달이 될까요? 코로나 19로 옴짝달싹 못하는 하루하루의 연속이라 예년 이맘때쯤이면 당연히 있어야 할 몇몇 풍경들이 사라진듯하여 안타깝습니다. 뭐 대표적으로 성탄절 분위기를 내는 백화점들의 장식들이 있을 텐데 예전 같지 않은 듯합니다. 예년 그 자리에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등장하긴 합니다만 뭔가 빠진듯한 허전한 느낌입니다. 휘황찬란한 조명 앞에 있어야 할 사람이 없어서 그런가 봅니다. 하지만 바깥 기온과 분위기에 관계없이 포근한 한 달이 될 것이라 최면을 겁니다. 환경은 그렇지 않더라도 마음만은 태양볕에 거풍을 한다고 되새겨 봅니다.


대입 시험일을 앞두고 반짝 영하의 날씨가 며칠 지속되고 있습니다. 응달에 고인 물들이 얼어서 반짝반짝 햇살을 반사합니다. 그위에 간밤에 내려앉은 낙엽이 꼼짝 못 하고 붙잡혀 있습니다. 그렇게 자연은 서로의 위치를 찾아가도록, 회귀하는 순환의 고리에서 자기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 공존하는 우리도 한치의 벗어남 없이 살고 있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눈치챈 유일한 존재로 살긴 하지만 말입니다.


시선을 책상 위의 달력으로 고정시켜 봅니다. 매일매일의 스케줄이 적혀 있는 한 장 남은 달력에는 빼곡히 일정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바쁜 한 달을 살아야 함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한 장 남은 달력에서도 이상한 점이 발견됩니다. 지워져 있는 일정과 물음표가 붙어 있는 모임 일정들이 많이 보인다는 겁니다. 연말이라 예전 같으면 송년 모임들이 줄줄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을 테고 올해도 어김없이 약속들은 잡혀 있습니다만 잡힌 일정에 취소 밑줄이 좍 그어져 있습니다. 바로 코로나 19로 취소한 모임들의 현주소입니다. 일정을 잡았다 취소한 송년모임만 벌써 4개나 되고 그나마 예정되어 있는 모임 약속조차 코로나 19의 확산속도를 봐가면서 확정 짓자고 말 그대로 예정 상태인 물음표로 있습니다. 코로나 19의 현재 추세로 보건대 약속된 모임 일정도 모두 취소될 분위기입니다. 한 해의 마무리를 아쉽지만 쓸쓸히 정리해야 할 판입니다.

시간의 흐름에 가끔씩 '뭐하고 산 거지?'라는 의문부호를 던져보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세상사는 사람 중에 삶에 만족하고 산다고 자부하는 부류는 얼마나 될까요? 그렇게 많지 않을 것입니다. 많지 않은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아니 많은 것이 이상한 일일 겁니다.


삶이 고달프고 힘들게 느껴지는 것 자체가 사실은 살아있다는 에너지의 원천일 수 있습니다. 스트레스 또한 삶을 헤쳐나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자극입니다. 우리는 삶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꿔야 한다고 수없이 듣게 됩니다. 하지만 삶의 현실은 그렇게 만만하지가 않은 것 또한 현실임에 직면합니다. 당장 해내야 하는 일들이 눈앞에 보이고 지불해야 할 비용이 있는데 주머니에 돈이 없으면 착잡해집니다. 겨울이라 찬바람이 뼛속까지 불어온다는데 차가운 바람 피할 곳도 없는 것 같고 마음 터놓고 이야기할 친구도 멀리 있는 것 같습니다. 전화라도 해서 소주 한잔 하자고 하려 해도 부담 주는 것 같아 망설이다 결국 포기하고 맙니다. 코로나 19가 막아서고 있기도 하지만 들었던 전화기를 내려놓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그렇게 12월의 겨울은 차갑게 다가옵니다.


그렇지만 현실이 그렇게 차갑지만은 않습니다. 따뜻한 차 한잔이 얼었던 몸을 녹이듯이 우리 옆에는 온기를 지닌 수많은 존재들이 있습니다. 내가 시선을 조금 낮추어 보고 주위를 둘러보면 함께할 많은 체온들이 있습니다. 혼자 있으면 외롭고 쓸쓸해 보이지만 함께 모이면 온기는 점점 뜨거워져 용광로가 됩니다. 나의 시간을 조금씩 보태고 나의 마음을 조금씩 내놓으면 마지막 남은 한 장의 달력이 외롭게 보이지 않습니다. 차가움의 현실도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생기도록 해야 합니다. 따뜻한 곳에서 가만히 있는 것보다 차가운 현장에서 온몸으로 뛰어, 열을 내어 땀이 나도록 하면 그곳이 바로 우리가 미소 지을 곳입니다. 코로나 19는 바깥의 차가운 현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차가운 현장을 피해 따뜻한 실내로 들어와 활동하는 시간이  많아졌기에 확산 속도가 빨라진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 시간의 길이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 바로 '지금 이 순간'입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12월의 초입에 서 있습니다. 오늘 떠오른 태양이 어제와 다르지 않고 또한 내일과 다르지 않습니다. 물리학적으로는 시간의 흐름을 거쳐가기에 다르다고 항변할 수 있습니다만 그 항변은 시간의 방향 축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시간에 방향성이 없다고 생각하면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소중한 시간입니다. 겨울의 차가움을 즐기고 눈 쌓인 대지의 흰색에 환호하며 받아들여야겠습니다. 모든 순간순간들이 너무도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시간'은 어제, 내일을 살고 싶었던 사람의 꿈같은 시간입니다. 어찌 힘들다고 버려버릴 시간이겠습니까? 코로나 19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며 깨어 있는 하루, 깨어 있는 한 달의 시작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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