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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Dec 02. 2020

흔적의 기록, 잘 쓰고 있는가?

"세상에 흔적을 남긴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연은 순환의 고리를 돌기 때문에 재사용되고 재활용되어 본래의 모습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세상에 등장했다가 세상의 저편으로 사라져 갈 때 미시세계의 원자들로 흩어졌다 다시 분자로 모여 생각의 존재로 등장하는 루프에 있는 것이 실상이기 때문입니다. 분자의 형태가 계속 바뀌는 것을 생명현상이라고 합니다. 그 속에서 과거의 흔적을 찾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고 찾을 수 도 없습니다. 그러나 유일하게 흔적을 남길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기록입니다. 유명 관광지 한 구석에 "개똥이 다녀감"이라고 흔적을 남긴 여러 사례들을 참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해외 유명 관광지 및 시설물에 한글로 새겨진 이름을 보며 개탄을 하고 그러지 말자고 계몽을 하던 시절이 얼마 전입니다. 최근에는 그런 몰지각한 관광객이 사라진듯하여 안심이 되긴 합니다. 하지만 국내 물 좋고 산 좋은 유명 계곡에 가면 옛 문인들이 바위에 새긴 이름 석자를 쉽게 발견합니다. 취객들의 호기일 수 도 있겠습니다만 예나 지금이나 흔적을 남기고자 하는 인간 심리는 변하지 않은 듯합니다. 역시 유전자를 계속 퍼트려 종족 보존을 해야 하는 생물학적 본능이 바위에 이름 석자 새기는 쪽으로 확장된 것은 아닌지 연관성을 찾아볼 일입니다. 유전공학에서도 DNA 염기서열 변화의 흔적을 통해 진화의 연결고리를 찾아내듯이 말입니다. 염기서열도 배열 순서의 기록이니 연관성은 분명해 보입니다.


무엇을 남긴다는 흔적은 그래서 본능의 확장으로 이해할 수 있고 기록은 그 본능의 최전선일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인간만이 이 배열과 순서 비밀을 알아챈 유일한 존재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흔적은 그만큼 중요한 단서였던 것입니다.

흔적은 남기고 싶어서 남길 수 도 있지만 남기고 싶지 않아도 남겨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남기고 싶은 흔적이 바로 인간의 최우수 발명품 중의 하나인 글을 통해 생각을 정리해 놓는 것입니다. 바로 지금처럼 말입니다.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종이로 만든 책에서 이제는 이렇게 컴퓨터 반도체 회로 속에 생각을 저장하고 무한 복제도 가능한 시대가 되어, 흔적을 남기는 일은 이제 가장 쉬운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아니 이제는 스스로 흔적을 남기지 않아도 나도 모르게 저장되는 수많은 이미지들이 반도체 회로에 축적되고 있습니다. 길거리 폐쇄 회로망이 그렇고 코로나 19 확진자의 휴대폰 위치추적이 그렇습니다. 자동차를 타면 자연스럽게 켜게 되는 내비게이션을 통해 운행 데이터를 자연스럽게 내비게이션 회사에 넘겨줍니다. 차량이 많아 운행속도가 느린지 빠른지 실시간으로 알려주는 것도 바로 내비게이션을 쓰고 있는 자기 자신입니다. 자기의 흔적을 통해 서로 편리해지는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데이터가 선의로 사용될 때까지만 말입니다. 운행이 끝나면 내비게이션 안내에 만족하는지 묻기까지 합니다. '당신의 데이터를 저장해 다음번 안내에 활용하겠다'는 말의 다른 표현일 것입니다. 


흔적의 확장을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때가 아닌가 합니다. 흔적이 상처의 흉터로 남아 있어서는 곤란합니다. 물론 상처의 흔적을 보면서 재발 방지를 할 수 있는 대책을 세우고 방비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디지털의 흔적은 지워지지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반도체 회로에 저장된 흔적은 디지털 포렌싱으로 되살려내기도 합니다. 그래서 흔적은 아날로그일 때 감성을 입힐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흔적의 상처는 디지털보다 더 깊을 수 있겠지만 잊고자 하면 또한 쉽게 망각할 수 있는 것이 아날로그입니다. 가변성을 가질 수 있는 아날로그로 기록하는 흔적은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흔듭니다. 디지털의 '메마르다' '삭막하다'라는 대표어를 '부드럽다' '감상적이다'라는 아날로그로 바꾸면 마음이 훈훈해지는 이유입니다. 디지털의 흔적이 명명백백하기는 하지만 아날로그의 흔적이 더 마음에 와 닿는 것입니다.


오늘처럼 하얀 화면에 검은 글자로 마음의 흔적을 남기는 것보다 만나서 얼굴 한번 보고 손 한번 잡아보는 것이 훨씬 이 추운 겨울을 이겨낼 수 있는 흔적의 산물임을 깨닫게 됩니다.코로나 19가 막아논 사회적 거리의 장벽이 무너져야 가능한 일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문자화 된 글의 흔적보다 눈으로 직접 그대를 보고 가슴에 그대의 흔적을 새기는 것이 더욱 소중함을 알게 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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