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hengrin Dec 03. 2020

대입 수능생을 두었던 아버지의 단상

오늘이 대학 수학능력 시험일입니다. 날씨조차 관습 따라 영하의 기온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수험장 교문 앞에서 "시험 잘 보고 나오라"라고 목청 높여 외치던 후배들의 모습과 정문에 엿을 붙이며 기도하던 학부모의 모습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코로나 19가 변화시킨 수능일의 풍경입니다. 시험을 치르는 당사자들에게는 오히려 차분한 기분을 갖게 해 줘서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대입 학력고사를 치르던 82년 11월 시험일에는 눈이 엄청 내렸습니다. 저희 집은 막내 녀석도 3년 전 수능을 치르고 대학을 가서 지금은 군에 입대해 있는 관계로 수험생은 없습니다만, 수능일이 되니 3년 전 시험을 앞두고 집에 들어서던 막내 녀석의 모습이 생생히 오버랩됩니다.


수능시험 전날 저녁 늦게 책을 한 아름 안고 막내 녀석이 현관을 들어섭니다. 그동안 학원에서 공부하던 책들과 인쇄물들을 정리해 들고 온 것입니다. 시험 하루 전날 수험표를 받고 고사장이 어디인지 확인하며 마지막 최종 

컨디션을 조절하는 시간이었을 겁니다. 현관문을 들어서는 녀석의 표정에 긴장감이 역력했습니다. "내일 청심환을 먹어야 하나?" "지난해 시험 볼 때도 떨리긴 했는데 올해는 좀 덜한 거 같아!" "고등학교 농구대회 결승전 때 뛰던 것보다는 덜 긴장되는 거 같아. 결승전 땐 어떻게 뛰었는지는 생각이 하나도 안나!"


막내 녀석은 3년 전 재수를 하고 있습니다. 부담감이 그 전 해하고는 또 다른 짐으로 얹어진 듯해 측은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그렇게 통과의례처럼 수능시험을 치르고 대학에 들어가고 군대에 가고 대한민국 젊은이 대부분이 거쳐가는 길을 가고 있습니다.

언어라는 불변 표상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하여, 시간이라는 상징을 만들어내 공유한 이래로 호모 사피엔스의 끝없는 경쟁은 지속되어 왔습니다. 놓여있는 파이의 크기보다 집어갈 존재가 많다는 것이 경쟁의 원천입니다. 경쟁에는 오직 한 가지만이 존재합니다. 이겨야 하고 앞서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로써 인간의 암투와 시기와 편견이 스멀스멀 끼어드는 빌미가 됩니다.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경쟁판에 던져진 글레디에이터는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합니다. 격전장에 뛰어들어 있는 자식을 보는 부모는 그 심정이 새까맣게 타들어갑니다. 본인도 거쳐온 길이긴 하지만 그 살 떨리는 긴장의 시간이 망령처럼 되살아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무릇 생명 있는 것들의 순환을 통해 면면히 유전자들을 전하고 본래 있던 無나 有로 돌아가듯이 어차피 걸어야 할 길이라면 기꺼이 두 팔 흔들고 걸어가라 합니다. 초조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느긋하기엔 좀 낯 뜨겁긴 합니다. 약간의 긴장이 필요합니다. 있는 그대로, 느끼는 그대로 존재의 의미를 내면으로 당겨 순간순간을 '생의 마지막 것'인양 대하며 살면 됩니다.


오늘 수험장을 나서는 많이 학생들은 어떤 모습으로 시험장을 나설까요? 물론 마스크 쓴 모습이긴 할 겁니다만 수많은 시간들을 오직 하루의 연필 긋기를 위해 희생했다고 생각할까요 아니면 그 집중된 시간이 자기의 인생에 중요한 티핑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생각할까요. 나름 긴 시간을 불평 없이 버티고 참아준 모든 수험생들이 대견합니다. 시험을 잘 치르고 못 치르고를 떠나 그 시간들을 무리 없이 견뎌냈다는 것만으로도 앞으로 인생을 사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부모가 대신 살아줄 수 도 없고, 대신 시험을 봐줄 수 도 없는 현실의 시간임을 스스로 느끼고 최선을 다했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길 바랍니다. 수험생을 둔 대한민국 아버지들의 '무관심 같은 관심'이 항상 든든한 백그라운드로 지키고 있었음도 알아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좋은 결과를 낳을 미래의 시작입니다. 그대의 든든한 응원도 함께 할 것이고 그대의 사랑이 저의 체온도 따뜻하게 만들 것이기에 차가운 입시한파가 닥쳐온들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그대의 사랑이, 힘을 발휘할 시간이 바로 오늘입니다. 


수험생과 수험생을 둔 모든 부모, 그리고 그 시험을 경험했던 모든 이를 위해 파이팅!!!

작가의 이전글 흔적의 기록, 잘 쓰고 있는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