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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Dec 04. 2020

전철에서 살 박하사탕 한 알

12월로 접어들어서 눈에 보이는 걸까요? 건물마다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어스름 어둠이 지배하고 있는 이 시간에도 반짝이는 크리스마스트리의 불빛들이 더욱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크리스마스는 다가오는데 아직 경험하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구세군 종소리"입니다. 휴업기간이라 사무실이 있는 시내에 나가지 않아서 그런 이유도 있겠고 코로나 19로 외출을 자제하고 꼼짝 않고 집에 있기 때문에 제 귓전에 종소리가 들리지 않았을 겁니다. 이번 겨울에도 구세군 자선냄비는 어김없이 사람들이 북적이는 길모퉁이에서 도움을 요청하고 있을 것은 자명할 테니 말입니다. 혹시나 길을 가다 딸랑이는 종소리가 들리면 지폐라도 한 장 넣고 갈 일입니다.


매월 자동 이체되는 유니세프 기금이 그저 의무감 같은 거라면 길거리의 자선냄비는 감정선을 넘나드는 울컥함이 같이 있습니다. 작은 돈들이 모여 낮은 곳을 향하여 잘 쓰이고 있을 거라는 기대감이 우선합니다. 단체들의 건물을 높이고 직원들의 급여를 올리는 곳에 쓰이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입니다.


자선기금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를 명명백백히 밝혀주는 일은 자선단체의 의무입니다.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맡기는 사람들의 마음이 편안해지고 결국 자선의 반복을 이끌어냅니다. 국내 자선단체들이 모아진 기금에 대한 명세를 밝히기는 하지만 일반인이 그 용처를 찾아보기에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래서 오늘 일부러 국내에서 제일 유명한 모 자선단체의 홈페이지로 들어가 기금 사용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찾아봤습니다. 사업내역을 자세하게 올려놓았더군요. 지난해 홈페이지에 들어가 기금 사용처를 찾아봤을 때는 정말 눈을 씻고 뒤져봐도 보이지 않던 내용들이었습니다. 최근에 우연찮게도 그 단체에 자문위원으로 계신 교수님과 연이 닿아서 기부금 사용처 고지가 홈페이지에 제대로 안되고 있음을 말씀드렸고 그 교수님께서 자문회의 때 기금 사용처를 쉽게 볼 수 있도록 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말씀드렸다고 하더군요. 저의 의견이 반영된 것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어찌 되었든 기금 사용 내역이 자세히 공개되어 일반인이 볼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아니 당연한 일입니다. 기부금 끌어모으는데 주력하는 것 못지않게, 기금 사용처를 홈페이지 첫 화면에서 가장 잘 보이게 표출하는 것이 자선단체의 당연한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자선기금을 눈먼 돈으로 치부하는 몰상식한 단체들을 여러 차례 목도해 왔습니다. 선의를 악용하는 악덕 자선단체들은 사회에서 제거를 해야 합니다. 기금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철저히 감시해서 한 푼의 돈이라도 헛되이 쓰이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단체 직원들의 복지를 높이고 부대사업 자금으로 사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선단체의 직원은 자원봉사자로 꾸려지는 게 맞다고 봅니다.

본질이 흐려지면 돈에 눈이 멀게 됩니다. 기부한 돈들은 말 그대로 기부된 돈이기에 그 이후는 아무도 신경을 안 쓰게 됩니다. 단체에서 잘 알아서 사용할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이 '알아서 잘할 것'이라는 믿음은 '알아서 잘 오용'하기에도 쉽다는 것이 함정입니다. 초심의 마음을 유지한다는 것은 돈 앞에서 그만큼 어렵습니다. 그래서 감시와 견제 장치가 잘 작동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성심껏 잘하는 자선단체들도 분명 있을 것입니다. 자선단체는 한치의 불신의 틈을 보여서는 안 됩니다. 자선단체의 존재의 이유가 낮은 곳을 향하라는 신뢰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이 신뢰는 한번 무너지면 다시 쌓을 수가 없습니다. 회생할 수 없습니다. 자선단체에 대한 불신은 시민 각자의 개별 선행으로 방향이 바뀌게 됩니다. 선행은 항상 끊임없이 샘솟는 화수분 같이 인간의 존재 이유를 이끌고 있는 근본이었기에 감춰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아침을 반성합니다. 매일 전철로 출근하면서 2호선으로 왕십리역에서 갈아타 시청역에서 내립니다. 이 출근시간에 가끔 청량리역에서 탑승을 하시는지 정신지체가 불편해 보이는 남자가 흰색 비닐 쇼핑백에 식당에서 식사 후에 주는 박하사탕을 낱개로 쥐고 팔기도 하고 어떤 때는 문방구 앞에 놓여있는 뽑기 틀에 들어있을 법한 어린이용 조그만 장난감을 들고 전철안 좌석을 스쳐지나갑니다. 지난해에도 이맘때쯤 보던 모습이긴 합니다. 따뜻한 한 여름의 계절을 지날 동안은 마주치지 않았는데 찬 바람 불기 시작하면서 다시 출근시간에 마주한 모습입니다. 그나마 건강상태는 예년 그대로인 것 같아 안심이 됩니다. 지난해에는 어린이 장난감 입술연지를 산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도 여러 날 마주치고 있어  문득 천 원짜리 한 장이라도 건네주고 사탕 하나라도 받고 싶었는데 손이 지갑으로 가질 않습니다. 승객들에게 강매하지는 않는지라 사탕을 들고 그냥 사람들을 지나쳐 가기만 합니다. 차라리 잠시나마 내 앞에서 사탕을 내밀었으면 받아주었을 텐데 그냥 지나쳐가니 잡기에 머뭇거릴 수밖에 없습니다.


핑계입니다.


최근에는 전철에서 구걸하는 사람들을 거의 볼 수가 없습니다만 맨몸으로 구걸하거나 작은 물건이라도 파는 손에 내가 손 내밀어 도움을 주었던 일이 있던가 떠올려 봅니다. 미안하게도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저 피해야 할 존재이고 눈감고 있고 외면해 빨리 지나가길 바라는 존재로만 그들을 바라봐 왔습니다.


처절히 반성합니다. 액수의 많고 적음을 떠나 천 원짜리 한 장 건네주고 사탕 한알 받더라도 지나치지 않기로 다짐해 봅니다. 그리고 적어도 구걸하지 않고 무언가 대가를 팔고자 하는 그 생명의 모진 삶에 무너지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건강한 육체라도 유지하여 이 추운 겨울을 무난히 견디어 내줄 것을 바라봅니다. 환승역에서 등 떠밀려 전철을 내리며 바라본 박하사탕 담긴 흰색 비닐봉지가 자꾸 떠오릅니다. 다행히 빛 바래긴 했지만 두터운 모직 외투로 따뜻하게 입었습니다. 건강하시길 빕니다. 이젠 망설이지 않도록 미리 주머니에 작은 지폐나마 준비해 두었다가 만나면 반드시 사탕을 살 것을 약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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