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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Dec 07. 2020

시간에 대한 멍청한 질문, 현명한 해답

시간은 유수와 같다고 합니다. 흘러가면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겁니다. 모든 것은 변하고 지나가고 생로병사의 길을 가는 것이 운명입니다. 빅뱅 이후 시작된 방향성 때문에 생긴 물리적 실체가 바로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물리적 실체가 바로 사건이며 이 사건의 배열이 곧 시간입니다. 시간은 우주가 생기면서 만들어진 배열이었던 것입니다. 생명이 아미노산 순서의 배열이듯이, 배열과 리듬과 하모니는 그래서 우주의 원초적인 흐름이었고 이를 인간은 시간이라 명명했습니다. 거스를 수 없는 것을 놓고도 인간은 상징의 언어로 안타깝다고 표현을 하고 그 언어에 매몰되어 마음 상해합니다. 참 어이없는 일입니다. 시간이 왜 흐르냐고 묻는 질문처럼 어리석은 것이 없습니다. 시간은 흐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질문의 대상이 아니란 것입니다.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면 그 흐름 또한 즐길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12월이라고, 벌써 한해의 마지막 달이라고, 싸늘한 것 같더니 며칠 전부터 영하의 기온을 보인다는 둥 뭐 이런 넋두리들을 합니다. 위안을 받고자 하는 변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되돌아보니 이룬 것 하나도 없는 것 같고 되는 일 또한 아무것도 없는 듯합니다. 불안하기만 합니다.  핑계될 것이 필요합니다. 만만한 것이 시간과 세월입니다. 너라는 놈이 흘러가기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고 마녀사냥을 시작합니다. 시간이라는 녀석이 지나가지 않고 머물러만 있었더라면 무한히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었을 텐데 모든 것이 시간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변화한다는 것입니다. 나고 익고 썩고 어느 것 하나 예외일 수 없습니다. 굳이 뉴톤의 제2법칙인 엔트로피의 법칙을 가져다 붙일 필요도 없습니다. 생각도 의식도 변해가고 사라져 갑니다. 물론 본래무일물이라 본래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잠시 신체를 빌어 의식이 머물고 생각이 담겨있다가 본래의 형태로 되돌아가고 또 다른 형태로 표출되는 것, 그것이 시간입니다. 우주의 시간 138억 년 동안 한치도 벗어난 적이 없는 사실이며 벗어날 수 도 없습니다.


그 핑계의 시간이 현실의 이 순간에 맞닿아 있습니다. 어떻게 사용하고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나에게 달려있습니다. 세상을 힐난하고 상대를 욕해봐야 속 좁은 자기 마음만 곪고 있음을 눈치채게 됩니다. 눈치채지 못하면 곪아 터지고 맙니다. 시간이란 속성은 그런 것입니다. 눈치채는 자에게는 한없이 길 것이고 알지 못하는 자에게는 한없이 짧습니다.


아침시간의 활용도 바로 시간에 대한 눈치채기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항상 예민하게 깨어 있기는 불가능합니다. 그나마 하루 중 예민하게 촉을 세울 수 있는 시간이 바로 아침이지 않을까 합니다. 온 감각을 세우고 세상을 둘러봅니다. 손끝에 전해지는 자판의 감각과 코끝에 다가오는 차향의 은은함과 흰 화면에 흘러가는 검은 글자들을 주시하는 눈과 혹시 휴대폰에 문자가 올지 몰라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체감각까지 --- 아침시간의 눈치채기는 이렇게 긴장의 순간을 손끝으로 모아 전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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