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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Dec 16. 2020

국민과 민심의 환상과 허상

매일 아침 신문과 TV 뉴스를 통해 읽고 듣게 되는 소식 중에 제일 많이 듣는 단어가 무엇일까요? 요즘은 코로나 19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듣게 되고는 있지만 정치기사가 많은 우리나라의 언론의 특성상 '국민'이라는 단어가 그중의 하나일 겁니다. "국민의 뜻에 따라~" "국민이 원하는 데로~" "온 국민의 열망을 모아~" "국민이 원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등등 수많은 뉴스 속에 '국민'이라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국민'이라는 대규모 집단 명사를 사용할 수 있는 사례는 많지 않습니다. 개인의 취미 활동을 이야기하고 도시의 편의시설을 말하는데 '국민'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도 않고 맞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대부분 사용되는 '국민'의 단어는 정치권이나 정부 쪽과 관련되어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 '국민'이라는 단어를 정파와 관계없이 자기들 입맛에 맞게 가져다 붙이고 있어 듣기 거북할 때가 많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온갖 단체 및 정당들이 모두 '국민의 뜻'에 따라 행동한다고 내뱉습니다. '국민이 바라는 데로' 법을 만들고 집행한다고 하고 법의 제정을 반대하는 측에서도 '국민이 원하지 않기'에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도대체 이 '국민'은 어느 편에 속한 '국민'일까요? 모두가 '국민'은 자기편이라고 합니다. 정치권에서 가장 호도되고 있는 단어가 바로 이 '국민'이라는 단어가 아닐까 합니다.


자기에게 유리한 편향적 사고를 '국민'이라는 대명사를 사용하여 마치 바르고 합법적인 것인 양 포장하는 데 사용하는 가장 저질의 단어가 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합니다. '국민'의 사전적 의미는 " 한 나라의 통치권 아래에 있는 사람"입니다만 '국민'의 사전적 의미나 국가에서의 역할, 국가의 구성요소와 같은 거창한 표현으로 등장하는 '국민'을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뉴스 속에서 듣게 되는 일상적 '국민'이라는 단어의 거슬림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제발 '국민'이라는 단어를 이제는 제자리로 돌려놔 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국민'이라는 단어가 이젠 혐오감까지 갖게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그렇다고 '국민'이라는 단어를 정당 이름에 가져다 붙여 쓰는 단체를 비하하거나 혐오하자는 의미가 아닙니다.


'국민'이라는 단어 속에는 정파를 떠나고 사상과 이념을 떠나고 빈부의 차이를 넘어선 엄청난 집합을 다 포괄하여 품고 있습니다. 시정잡배와 같은 막말을 쏟아내는 논사들이 나불대는 그런 얄팍한 '국민'이 범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이라는 단어를 들이대는 이유는 바로 그 큰 집합의 힘을 알기에, 단어가 갖는 힘을 이용해 마치 국민들이 자기를 밀고 믿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기 위함일 겁니다. 아니 확증편향으로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제는 아무 생각 없이 '국민'이라는 단어를 가져다 붙입니다. 일상이 되어버린 것이죠. 매번 바뀌는 여론조사의 결과물을 해석하는 데에도 자기들의 편의대로 '국민'을 가져다 씁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이기에~" 또는 "국민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에~" 등등 말입니다.

'국민'이라는 단어와 함께 거의 동급으로 호도되어 사용되는 단어가 '민심'일 겁니다. '민심'은 "국민의 마음"입니다. "민심에 따라~" "민심이 바라는 데로~" 등등 '국민'과 '민심'을 단어만 바꾸어 놓아도 같은 뜻으로 인지됩니다. '국민'이 정량적 의미의 단어라면 '민심'은 정성적 의미의 단어로 인식하면 딱 맞을 것 같습니다.


'여론'이라는 단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론'은 "사회 대중의 공통된 의견"을 말합니다. "여론에 따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론에 의해 도로 정비를 했다" 등등에 사용됩니다. 이 '여론'에는 국민 각자의 의견이 반영되어야 맞을 겁니다. 그런데 저는 그 '여론'이라는 의미의 주장이나 제도에 동조하지 않을 수 있음에도 '여론'이라는 집단 명사에 휩쓸려 묻혀버립니다. 소수의 여론은 다수의 여론에 밀려 여론이라 하지 않습니다. 그냥 '소수 의견'으로 치부합니다. 수많은 사람이 모여사는 사회에서 의견이 공통될 수는 없습니다. 각자의 의견이 다르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지만 사회가 굴러가고 일이 진행되는 쪽으로 가기 위해서는 다수의 의견을 따르게 제도가 만들어지고 의견이 다를지라도 그 제도에 따르게 하는 것이 현대사회의 숙명입니다. 이 진행의 결과물을 내야 하는 사회의 속성이 '여론' '민심' '국민'이라는 단어를 가져다 효율을 높이는 쪽으로 진화해 온 것으로 보입니다. 모두 같은 의견은 아니지만 대다수 '국민'이, 대다수 '민심'이 그렇다고 하니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는 쪽으로 밀고 가고 싶은 것입니다. 


이제 확증편향의 대표 단어가 된 '국민' '민심' '여론'을 제자리로 돌려놓아야겠습니다. 정치인과 행정가들이 가져다 쓰는 '국민'의 뜻은 사실 '국민'의 숫자만큼 다양하니 아무 때나 가져다 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국민을 대표하는' 어쩌고저쩌고 식의 수 사어로 '국민'을 가져다 붙이지 말고 그냥 인간 누구누구, 단체 어디 어디로 부르는 게 맞을 겁니다. 단어가 혼동되어 의미가 다르게 해석되고 각인되어 버리면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의도적으로 결과가 호도되도록 노릴 수 도 있겠습니다만 적어도 우리 사회가 그나마 사회의 공동 선을 바탕으로 제대로 가기 위해서는 사용하는 단어 하나하나가 본래의 뜻을 벗어난 엉뚱한 의미로 해석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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