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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an 06. 2021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아침잠에서 깨어남과 동시에 우리는 무언가를 선택해야 하는 운명입니다. 잠은 깼지만 자리에서 일어날 것인지 말 것인지? 양치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 조차 내가 선택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잠에서 깨는 것 자체를 선택할 수 있을까? 잠에서 깨는 것은 선택이라기보다 본능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찍 일어나야 한다고 전날 저녁에 각인을 하고 잠이 들면 새벽에 잠이 깨기도 하지만 이를 선택이라고 이름 붙이기에는 다소 어색합니다. 선택은 의식이 있고 나서 본인의 의지에 의해 벌어지는 현상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일 때는 하지 말며, 무언가 줄까 말까 망설일 때는 주고, 갈까 말까 망설일 땐 가며, 살까 말까 할 때는 사지 말고, 먹을까 말까 할 때는 먹지 마라" 일상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삶의 지혜로 자주 인용되는 말입니다. 망설임을 벗어나 결정의 선택은 바로 행동을 가져오며 이는 곧 그 사람의 모든 것을 결정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위 문장은 아주 소소한 조심스러움처럼 보이지만 과감한 행동이 숨어있습니다. 망설인다는 자체가 행동으로 들어가기엔 무언가 선택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건데 그러면 무엇이 되었든, 안 하는 것이 좋을 수 있겠으나 사회란 인간관계 속에서는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이 있다는 겁니다. 결국 위의 지혜라는 것은 " 인간 관계론"에 관한 것입니다. 최선의 선택을 하여 무리 없이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작은 표상 같은 거라고나 할까요? 어차피 삶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하지만 삶의 선택은 단순히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저급한 수준의 골라냄이 아닙니다. 무한대로 발생할 수 있는 선택의 길에서 하나를 결정하는 아주 엄청나게 중요한 일입니다. 매일 매번 매초 발생하는 선택이 이렇게 중요함에도 우린 그저 당연한 것으로 치부할 만큼 무관심하게 선택을 하는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선택을 관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상의 반복으로 인해, 무조건적으로 선택해도 삶에 위협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좀 더 효과적이고 좀 더 깨어있는 자세로 선택을 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같은 선택을 해도 질적으로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똑같은 선택이지만 그 내면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그것이 세상을 보는 자세입니다.

이 선택의 시각 문제는 사무실에 있는 화분 몇 개를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회색의 사무집기와 흰색의 벽면, 아이보리색 천장의 색깔 속에서 화분들은 눈에 띄는 녹색을 담고 있습니다. 무생물 세계의 환경 속에서 유일하게 생명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생명으로 화분을 보면 매일 인사하고 매일 물도 주고 하게 됩니다. 세상을 어떻게 볼 것인가의 자세는 바로 바깥세상의 사물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선택의 문제였던 것입니다. 


생명의 진화에서도 보면 단세포에서 다세포 생물로 오면서 죽음을 진화시켜 왔습니다. 진화도 자연선택의 단계입니다. 미토콘드리아를 통한 호흡으로 ATP라는 에너지를 만들어 생명의 원천으로 삼아왔습니다. 식물이나 동물이나 근원을 따라가면 똑같은 출발점에서 시작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에서부터 무생물의 존재에 이르기까지 공진화의 선택은 바로 우주의 존재 원리였던 것입니다. 살아있는 모든 생물은 138억 년 우주의 진화에서 일어난 선택된 산물이며 46억 년 지구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어마어마한 선택된 존재들입니다. 우리가 길가에 피어나는 이름 모를 야생화와 어둠 속에 기어 다니는 바퀴벌레 한 마리까지도 소중하게 여겨야 할 이유입니다.


사무실 한 구석에의 작은 화분이지만 그 좁은 토양에서도 양분을 흡수하고 태양빛과 유사한 형광등 불빛의 광자를 받아 광합성을 하여 잎과 줄기를 키우고 꽃도 펴 씨앗도 만들어 냅니다. 생명의 선택은 그렇게 온갖 곳에, 아니 온 세상에 널려 있는 일상이었던 것입니다. 초록의 잎도 미토콘드리아 호흡을 하는 동안 자유 라디컬이 쌓여 산화되고 자연의 원래 자리로 돌아갈 겁니다. 자연의 부름은 서서히 노화되고 잎이 바래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인간을 제외한 모든 생물은 자연의 노화 현상과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인간이 자연에 배워야 할 덕목입니다. 기꺼이 받아들이는 포용력의 선택 말입니다. 인간만이 이 자연의 순환 고리를 중간에 끊어 생존의 일탈권에 개입을 합니다. 인간의 오만입니다. 바로 선택에 인간의 의지를 끼워 넣었기 때문입니다. 선택에 의해 세상에 오지 않았지만 선택되었다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 결말도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온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그래서 그 중간과정은 본인이 끝없이 선택하는 과정임을 알고 선택을 통해 벗어나고자 했던 그 무엇을 끝없이 추구합니다. 본질을 떠나 상상의 존재를 만들어낸 인간이 결코 빠져나오기 힘든 수렁이 바로 오만(hubris)이었던 것입니다.


스스로 자각하는 일, 이 또한 선택입니다. 우주 자체가 선택의 연속선상에 있기에 일개 인간의 삶 또한 선택의 연속임은 자명합니다. 오늘은 어떤 선택으로 삶의 한 페이지를 써나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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