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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an 07. 2021

진심의 증표를 새기다

출근은 잘하셨나요? 지난밤 내린 눈이 낮은 기온으로 빙판으로 변한 관계로 출근길이 만만치 않습니다. 저도 어제보다 30분이나 지체되어 사무실에 도착했습니다. 평소 시간대로 전철에 올랐음에도 앞선 전철에 문제가 생겨 꼼짝 못 하고 갇혀 있었습니다. 그나마 전철이니 조금 늦더라도 무사히 사무실에 도착했을 겁니다. 제설이 제대로 안된 도로 위는, 말 그대로 빙판일 테니 조심 또 조심하여 출근하셔야겠습니다. 밖에 기온은 영하 15도를 가리키고 있습니다만 바람이 엄청 세게 불고 있어 체감온도는 영하 20도 가까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전철에서 올라와 잠시 걷는 동안에도 귀도 시리고 발끝도 시릴 정도입니다. 체감각이 모두 얼어버려, 인지 작동도 늦게 반응하는  것 같습니다. 따뜻한 차 한잔으로 얼어 있는 감각과 인지활동을 되돌려야겠습니다.


감각을 너머 지각으로 그리고 생각으로, 언어로 세계상이 표현됩니다. 그 세계상을 글이라는 상징으로 기억의 영역을 확장합니다. 호모 사피엔스가 만들어낸 가장 획기적인 외장하드가 바로 글입니다. 두꺼운 해골에 둘러 싸여 더 이상 확장할 수 없는 브레인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주름을 넣다 넣다 그마저 한계에 이르자 글이라는 외장하드를 통해 무한히 기억의 저장공간을 넓혀 왔습니다. 경이로운 일입니다.


이제 브레인은 색인을 만들고 찾아내는 사서의 역할만 하면 됩니다. 어느 기억의 저장고가 어디에 있는지만을 찾아내면 굴비 엮듯 줄줄이 과거의 경험들과 본인이 아니더라도 타인이 만들어 놓은 경험과 지식의 기억까지도 학습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인터넷은 외부 지식의 확장으로 전 세계인의 브레인을 한꺼번에 연결시켜 놓았습니다. 외부로부터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기에 굳이 외우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을 인터넷이 가져오긴 했습니다만 단편을 외우는 일을 줄인 대신에 방대한 지식의 영역을 확장할 수 있게 하는 장점이 이 문제를 충분히 보완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인터넷에 숨겨져 있는 인류의 공동 지식도 결국 글이라는 저장 도구가 가지고 있는 힘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언어를 글로 표현한다는 엄청한 상징은 인간이 발견하고 개발해온 진화의 유산입니다. 글을 쓰게 되면 일단 일목요연한 정리적 사고가 필요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을 유지하는 집중력도 필요하고 담아낼 내용을 끌고 올 지식도 필요합니다. 말 그대로 글은 종합적 사고 능력을 표현해내는 바로미터입니다. 말 잘하는 것과 글 잘 쓰는 것은 전혀 다른 능력의 발현인 것 같습니다. 두 가지를 동시에 잘하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말하는 것을 글로 그대로 표현한다는 것은 보통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존경을 받아도 좋은 사람입니다.


지식을 말로 전달하는 강의에서도 본인이 알고 있는 내용을 70% 정도 전달하면 잘하는 것으로 평가하고 80%만 되어도 대단한 전달 능력을 지닌 것으로 봅니다. 반면 글은 말과는 또 다른 전달 수단으로, 사고가 필요하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생각나는 대로 써 내려갈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글은 전혀 다른 기록을 남깁니다. 말은 흘려들을 수 있지만 글은 반드시 흔적이 남습니다. 한번 써놓으면 지워지지 않습니다. 바로 글은 그 사람의 모든 걸 보여주는 거울과 같은 것입니다. 물론 거짓으로 표현되는 사악한 글도 가능하겠으나 의도적 속임수가 섞여 있는 글은 글의 증거가 바로 목을 죄는 형틀이 됩니다. 글은 거짓을 언젠가는 드러내게 하는 증거로 남습니다. 요즘은 말도 녹음되고 녹화되어 증거로 남길 수 있습니다. 과학기술이 말과 글의 재생 증거 능력을 통합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함부로 말하고 함부로 글로 남길 수 없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증거를 남깁니다. 오늘 이 글을 쓰며 일체 거짓 없이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을 말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하기를, 설령 행복하지 않더라도 행복하다고 최면을 걸고 행복한 척할 수라도 있기를 바라봅니다. 허무주의가 아닌, 세상을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살아내는 하루하루의 현실적 삶이 가장 소중함을 적시해 봅니다. 오늘이 내 생의 가장 젊은 날임을 잊지 않고 돌아오지 않을 과거를 그리워하지 않으며 어떻게 올지 모를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 그런 배포와 용기를 가져 봅니다.


진심의 증표를 이 글에 새겨 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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