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hengrin Jan 19. 2021

날씨 예보는 국민의 마음을 좌우하는 중요한 일

트라우마라는 놈은 정말 무섭습니다. 외부에서 일어난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해 발생한 심리적 외상입니다. 보통 과거의 안 좋은 일이 재발할까 봐 걱정하고 염려하는 마음이 너무 커서 발생하는 두려움입니다. 주말을 지나고 어제 새벽에 벌어졌던 폭설에 대한 공포도 트라우마의 한 종류였던 것 같습니다. 빗나간 폭설 예보로 밤잠까지 설쳤던 사람은 아침에 맞이한 '눈 없는 바깥 풍경'을 보고 다른 세상에 들어선 착각에 빠졌을 것입니다.


저만 해도 그렇습니다. 월요일 새벽 4시 반에는 집에서 나와야 하는 출근길이라 눈이 많이 온다는 주말 내내의 경고에 잔뜩 쫄아 있었습니다. 새벽 4시 반에는 전철도 버스도 다니지 않는 시간이라 차를 가지고 출근할 수밖에 없는데 폭설이 내린다니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몇 주 전 퇴근길에 내린 눈길의 공포가 되살아났기 때문입니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걱정이 폭설처럼 머릿속을 짓누르는 통에 잠까지 설치게 만들었습니다. 자는 둥 마는 둥 일어난 4시에 처음으로 하는 일은 창문을 열고 눈이 얼마나 많이 쌓여있는지 체크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게 뭐야?" 바람에 흩날리는 정도의 눈밖에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겁주던 눈은 다 어디로 간 것인지? 너무 겁을 주어 눈들이 내리지 못하고 그냥 지나간 것일까요?


그렇게 예보는 어제 하루 종일 바뀌어 발표됩니다. 아침 6시부터 폭설로 출근길 혼잡이 예상된다고, 그러더니 다시 북서쪽에서 몰려오는 구름들의 움직임이 늦어져 10시 정도 되면 폭설이 본격화될 것이라고, 그러더니 또다시 오후 1시부터 엄청난 눈이 내릴 것이라고 예보합니다. 그런데 오후 2시 정도 되니 하늘이 푸르게 색을 바꿉니다. 눈구름은 그냥 서울을 지나가 버렸습니다. 다행입니다.


다행일까요? 제길 눈길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는 것보다는 천배 만배 좋긴 합니다. 그런데 어쩐지 기상청에 속고 있다는 느낌은 속는다는 감정의 정도를 넘어 배신의 분노까지 다다르게 합니다.

하도 오보를 쏟아내는 통에 이젠 양치기 소년의 늑대가 되어버린 것은 아닌지 허탈하기까지 합니다. 하긴 대기의 움직임을 하찮은 인간이 읽어내고 방향과 비 내림 눈 내림을 척척 맞춰내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할 일일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과학의 총아라는 슈퍼 기상 컴퓨터까지 가동하여 확률 게임을 해나갈 때 그래도 최대한의 확률로 벌어질 일은 예상하고 예측해 내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일 겁니다. 너무도 어려운 일임은 누구나 인정하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하루 날씨 예보가 사람들의 심상까지 매일 좌우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면 무책임에 가까운 오보는 최소화시킬 사유가 충분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의 하루 컨디션을 날씨가 쥐고 있으니 말입니다.


날씨 예보가 점쟁이 관상 보듯 두리뭉실해서는 안됩니다. 대충 던져진 상황을 자기 합리화시키는 바넘 효과를 유도하게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상청의 전매특허가 있습니다. "곳에 따라"입니다. 곳에 따라 눈이 내리거나 안 내리거나 많이 내리거나 할 수 있다는 겁니다. 뭐 이런 예보 정도는 슈퍼 컴퓨터를 돌릴 필요도 없습니다. 비전문가인 저도 할 수 있습니다. "내일은 아침은 해가 뜰 것입니다. 해가 뜨기 전에는 영하의 기온을 보이다가 해가 뜨면 기온이 조금 더 올라 춥지는 않을 것입니다. 곳에 따라 눈이 내리기도 하고 비로 바뀌어 내리는 곳도 있습니다. 출근길 조심하시고요. 넘어져 낙상사고 나지 않도록 말입니다"


하도 오보가 많으니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서 계속 보도를 합니다. 아니면 말고입니다. 이 아니면 말고 가 되어야 비난을 덜 받습니다. "최악의 상황을 대비했는데 그 전 단계까지만 가니 얼마나 다행이야!" 이런 심리현상을 이용하는 겁니다. 눈이 별로 안 온다고 예보했다가 괜히 엄청나게 내리면 그 뒷감당을 할 수 없다는 면피성 발표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늘도 곳에 따라 추운 곳도 있고 조금 덜 추운 곳도 있습니다. 추운데 사는 사람은 재수 없다 자기 합리화하시고 옷을 따뜻하게 입으시고, 조금 덜 추운 곳에 사는 사람은 곧 추울 수 도 있으니 더 따뜻하게 옷을 챙겨 입으 시기 바랍니다. 이상 있으나마 나한 기상청에서 알려드립니다" 이런 멘트를 듣지 않기를 바랍니다. 국민의 하루 심상을 좌우하는 날씨를 알려주는 일은 정말로 중차대하고 막중한 임무입니다. 어렵지만 좀 더 정답에 다가가는 예보로 국민들의 하루 심리상태를 잘 이끌어가 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작가의 이전글 코로나 시국에 재점검하는 신년 계획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