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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an 28. 2021

드론 카메라와 겸재 정선

요즘은 모든 사람이 사진작가 반열에 들어서 있습니다. 예전에는 카메라가 집에 가보로 취급받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감히 상상이 안되시는 분이 계실 텐데요. 휴대폰에 카메라가 장착되기 훨씬 전, 아니 디지털카메라가 득세하던 시절도 훨씬 지나 아날로그 필름 카메라가 위세를 떨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휴대폰 안으로 카메라가 들어온 시간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스마트폰과 카메라가 융합이 되면서부터니까요. 그전에는 카메라가 독립적으로 활약하던 디지털카메라의 전성기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디지털카메라가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고가의 장비로 등극해 있습니다. 이 디지털카메라의 시작도 20여 년이 갓 넘었습니다.


저도 이 디지털카메라를 처음 접했을 때의 놀라움과 경이를 아직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1999년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회사 업무 용도로 미국에서 당시 일본 소니에서 만든 디지털카메라가 사무실에 도착했습니다. 카메라 옆면으로 5.25인치 플로피 디스켓을 끼우는 형태였습니다. 저장 용량이 아마 1.2MB 정도였을 겁니다. 요즘 휴대폰 카메라로 찍히는 사진 1장도 저장할 수 없는 용량입니다. 그런데도 당시에는 정말 신기하고 놀라운 기계였습니다. 이 엄청난 사진기를 들고 당시 지진으로 혼란했던 대만에 구호품을 싣고 가서 공항에 도착하는 항공기를 촬영해 홍보자료로 서울로 전송했습니다. 그 당시에 대만 공항에 디지털 카페가 막 생겨 사진 파일을 서울로 전송할 수 있었습니다. 디지털 카페 조차 신기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아 참 오늘은 뭐 디지털카메라와 얽힌 에피소드가 소재는 아닙니다. 카메라가 주제이긴 합니다. 제 주변에 드론 카메라를 가지고 촬영하시는 분이 몇 분 계셔서 드론 카메라가 찍는 사진 구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카메라가 급격히 발달해 최근 정점에 와 있는 것이 드론형 카메라입니다. 장비 가격이야 차치하고 드론 카메라로 찍는 부감형 사진 구도는 장엄하기까지 합니다. 인간의 시선으로 찍는 것이 아니고 새의 시선으로 찍기 때문입니다.  디지털카메라로 무엇을 찍느냐에 따라 사진 구도의 형태야 무한대로 만들어낼 수 있지만 자연 풍광을 촬영하는 쪽으로 한정해 본다면 드론 카메라를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숲이 아니고 나무를 찍는 것도 자연을 촬영하는 기법이겠지만 숲을 넘어 산을 찍을 때는 드론 카메라의 구도를 넘어설 수 없습니다. 이젠 동영상이 대세인 시대가 되어버린 덕에 드론 카메라의 위세는 더욱 거셀 수밖에 없습니다.


동영상 기능으로서의 드론 카메라의 영향력도 크지만 드론 카메라만이 보여줄 수 있는 부감형 시각이 자연의 장쾌함을 담아내는 데는 적격이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부감(俯瞰)은 높은 데서 굽어본다는 뜻입니다. 새의 시선으로 봐야 가능합니다. 산수화를 그릴 때 고원 법(高遠法)이라는 기법도 있습니다.  고원 법도 높은 데서 보는 것이긴 한데 부감과는 느낌이 다릅니다. 

정선  '인왕제색도' 국보 216호 리움박물관

그런데 최근에야 드론 카메라를 통한 부감형 동영상과 사진이 대세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데 조선시대 후기 겸재 정선(1676~1759)은 이미 이 부감 기법으로 진경산수화를 그렸습니다. 대단하지 않나요? 비행기도 없던 시대, 연이라도 타고 올라가 내려다봤을까요? 그러지도 못했을 테고 오직 상상만으로 그렸을 텐데 정말 대단한 상상력이 산수화에 담겨 있습니다. 정선의 이 부감 기법은 당시에도 비판을 받았다고 합니다. "새처럼 하늘에서 내려다보았다면 그것이 진실이겠느냐?"는 평가를 말입니다. 실경산수화 즉 실제 산수를 있는 그대로 묘사하던 시절에 진경과 더불어 이상향이라는 선경의 의미를 포함하여 사람의 시선으로는 볼 수 없는 장엄한 자연경관을 압축적으로 그려 넣기도 하고 실경에서 보고 느낀 감상을 그림으로 표현했으니 천재적 발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겸재 정선과 같은 천재는 300여 년 전 이미 상상력 만으로도 부감의 그림을 그려냈습니다. 현대 과학 기법을 활용한 첨단 기기와 드론으로 이제야 그 천재의 시선을 카메라로 재현하는 정도입니다. 우리는 위대한 선조들이 있었음에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존경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봅니다. 시대를 앞서갔던 수많은 문인과 화인들이 묻혀있을 텐데 각 분야에서 전문가들이 하나하나 발굴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잘한 것은 잘했다고 인정해주고 존경해주는 자세야말로 못난 후대가 더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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