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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Jan 27. 2021

습관은 이렇게 무섭습니다

하루쯤 쉬어갈까 했습니다. 오전에 병원에 정기검진이 있는 날이라 천천히 움직일 요량이어서 아침 글 쓰는 것도 땡땡이를 칠까 했습니다. 어제저녁까지는 확고했었습니다. 내일 아침은 컴퓨터를 아예 켜지를 말자고 말입니다. 마음을 먹고 나면 홀가분해집니다. 모든 것이 정리된 것 같습니다. 아니 해방감이라고 해야 할까요? 안 해도 된다는 자유로움은 큰 기쁨으로 밀려옵니다.


참 병원에 정기 검진하러 간다니까 걱정하시는 분도 계실 것 같은데 2년 전 건강검진 때 오른쪽 갑상선에 3mm 크기의 결절이 발견되었는데 계속 추적 관찰하고 있는 정도입니다. 크기가 작아 시료채취도 안 되는 정도라 계속 지켜보고 있는 수준입니다. 지난주에 초음파 검사를 했으니 오늘은 진료상담입니다. 갑상선 결절이 단시간에 커지는 게 아니어서 계속 추적하면 되니 걱정할 일은 아닙니다. 신체 사지도 그동안 50년 넘게 고장 없이 잘 사용해 왔으니 이제 슬슬 고장 나고 삐걱될 때가 된 것이겠죠. 닦고 기름치고 조이면 앞으로 40년 정도는 더 쓰지 않을까 합니다. 그러고 보니 매년 건강검진 때 기록되는 숫자들을 보면 조금씩 경계 치를 향해 가고 있음을 눈치채게 됩니다. 그럴 때면 덜컹 겁도 나고 운동도 하고 먹는 것도 가려먹고 영양제도 복용하고 해야지 하지만 며칠 지나면 그냥 예전처럼 행동하고 먹고 합니다. 건강검진 때만 반짝 건강을 염려하는 아주 비열한 마음 구조를 장착하고 있습니다.


나름 규칙적으로 운동을 한다고 하는데도 사실 잘 안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고등학교 동창 녀석 한 명은 정말 미친 듯이 매일 걷고 운동하는데 은근 질투가 나기도 합니다. 자기는 원체 건강이 안 좋아 매일 운동할 수밖에 없다고 변명을 하지만 옆에서 보는 입장에서는 그렇게 매일 운동을 할 수 있는 자세가 부러운 것입니다. 독한 놈인 거죠. 그 녀석 때문에 자극받아 저는 매일은 못해도 시간을 낼 수 있을 때는 언제든지 스트레칭도 하고 조깅, 골프 연습 등을 하고 있긴 합니다. 

셀러리맨 DNA에 학습되어 오늘도 5시 반에 어김없이 기상했는데 이불속에 더 누워있을까 하는데도 눈이 말똥말똥해집니다. 바로 일어나 거실에 요가매트를 깔고 스트레칭을 합니다. 1시간여 팔 굽혀 펴기 30개, 윗몸일으키기 30회를 5세트로 합니다. 가빠도 나온 거 같고 뱃살도 들어간 것 같은 착각으로 흐뭇해하며 요가매트를 접습니다.  그러나 문득 시계를 보니 7시밖에 안되었습니다. 아침 글을 안 쓰겠다고 마음먹으니 편안했는데 책상 위에 놓인 노트북에 자꾸 시선이 던져집니다.


뭔가 자꾸 찝찝해집니다. "아이씨 이거 아침 글을 써, 말어?" 잠시 망설입니다. 스트레칭도 해서 편안해진 몸과 마음이 한순간 찌뿌둥으로 바뀝니다. 뭔가 빼먹은 거 같아 편치 않습니다. 할 수 없이 책상에 앉아 노트북의 전원을 켭니다. "에이 이게 뭐야?" 다시 하얀 백지의 화면과 마주합니다. 


습관이란 이렇게 무섭습니다. 매일 하던 루틴은 해놓고 놔야 마음이 편해집니다. 그렇게 해야 몸과 마음이 편해지게 세팅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백지를 채워나가는 것이 마음이 편한데 어젯밤에 잠시 자유를 느꼈던 그 감정은 무엇인지 옭아매어 가져와 봅니다. 하지 않아도 되는 것에 대한 자유는 얽매임을 풀어놓는 방생의 홀가분함이었는데 그 자유의 기분을 잠깐 동안 누리다 다시 족쇄의 굴레를 뒤집어써야 마음이 편해지는 곳으로 되돌아왔습니다. 굴레를 씌워놓고 속박을 해놓는 것이 장기화되면 그것이 더 편한 것으로 착각을 합니다. 세뇌를 당하는 것입니다. 한 곳에 너무 집착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오늘 아침 불안감을 통해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하루를 쉬어간다고 누가 뭐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기만족이며 자기 위안입니다. 생각의 방향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몸의 방향까지도 같이 움직입니다. 확증편향적 사고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편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생각의 구두쇠'가 인간입니다. 사실 깊이 생각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그저 몸이 가는 데로 눈에 보이는 데로 생각하고 행하는 단순함이 우선합니다, 그렇게 우리의 브레인은 세팅되어 있습니다. 습관에 젖도록 말입니다. 


오늘 아침 과감히 떨쳐버릴 수 없는 습관으로 이 글을 떠나보냅니다. 그저 휘휘 시간 때우는 글의 전개일 수 있으나 습관의 무서움을 들여다보며 다시 한번 각성하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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