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hengrin Jan 26. 2021

'걷기'에 '속도'를 빼고 '사유'를 넣자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에 준비운동처럼 하는 행동이 있는지요? 신년 초에 하는 작심삼일의 계획을 세우는데도 최소한 몇 시간 아니 며칠은 '올해의 계획'에 대해 지속적인 생각을 하고 심지어 스트레스를 받아가면서까지 정리를 해서 몇 개의 행동지침을 마련합니다. 시작하거나 계획하는 일은 모두 어떤 일을 하기 위한 준비입니다.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그 행동의 생각한 올바른 결과를 만들어내도록 길을 만들어 놓는 예측 과정입니다. 결국 움직임입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최종적으로 움직여야 목표한 지점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상상의 결과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상의 결과를 얻으려면 상상한 일들을 몸으로 행해야 합니다. 움직이지 않고 행하지 않으면 어떤 일도 해낼 수 없으며 결과를 만들어낼 수 없습니다.


그런데 행동에 들어가기 전 준비단계를 가장 체계적으로 생각하게 하는 것이 '걷기'랍니다. 이 '걷기'는 이미 인류의 철학 과정에서 고대로부터 터득되어 활용되어 온 방법이기도 합니다. 종교에서도 걸으면서 묵상하는 전통이 있습니다. 서양 철학에서 이 '사유의 걷기'를 하는 산책을 아주 유용하게 사용한 사람으로는 칸트와 니체가 있습니다.


산책은 일상의 복잡한 자극에서 벗어나 자연의 향과 풍경에 합일이 되어 오롯이 자기의 생각에 집중할 수 있게 합니다. 그래서 철학자들의 산책은 새로운 길이 아닌 집 주변에 아주 익숙한 오솔길을 걷는 것입니다. 새로운 환경에 오감을 빼앗기지 않고 자기에게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입니다. 땀을 뻘뻘 흘리는 운동으로써의 산책이 아니고 '사유의 걸음걸이'를 하는 것입니다. 솔비투르 암블란도(Solvitur Ambulando ; 걸으면 해결된다)는 그렇게 인류사에 증면된 경구로 자리 잡았습니다.


심리학에서도 걷는 것을 '두 발로 사유하는 철학'이라고 표현합니다. Solvitur Ambulando의 확장형입니다. 황당한 상황에 닥쳐 화가 날 경우에도 그 상황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 자리를 피하라고 합니다. 걸어서 그 자리를 피하는 것만으로도 심리적으로 화를 가라앉힐 수 있는 전환 장치가 된답니다. 화가 난 장소에서 멀어지면 감정적으로 멀어질 수 있습니다. 잠시 화가 난 장소에서 멀어지면 '내가 왜 화를 내고 있는 거지?'라고 되묻게 됩니다. 화가 난 감정에 의도적으로 시간과 환경을 개입시켜 화를 지연시키고 원인을 되묻게 됨으로써 화를 누그러트릴 수 있게 됩니다. 회의시간에 화가 나면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 한잔을 가져오며 시간 딜레이를 가져보는 것이 좋습니다. 사실 Sovitur Ambulando의 실천은 우리의 일상에 배어 있습니다.

하지만 운동과 건강에 목을 매고 살고 있는 우리네 주변을 둘러보면 대부분 죽기 살기로 걷습니다. 하루에 '1만 보 걷기'를 지상과제로 만들어놓고 어떻게든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걷고 또 걷습니다. 하루라도 1만 보 걷기가 부족한 날이면 다음날에라도 부족한 걸음걸이를 채워 넣고자 노력합니다. 걷는 것이 즐거움이 아니고 의무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도 의지로 세워놓은 목표이기에 어떻게든 매일 달성하려 애를 씁니다. 인간의 의지력으로 총량의 법칙을 극복하는 대표적인 사레입니다.


그런데 걷기를 하면서 무언가 빠진듯한 느낌이 들지는 않으신지요? 너무 운동에 대한 강박관념에 휩싸여 사유가 빠진 걷기만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요? "뭐 걷는데 복잡하게 생각하게 만들어 그냥 걸으면 되지?"라고 반문할 수 도 있습니다. "아니 그냥 편하게 이어폰 끼고 좋아하는 음악 들으며 강변길과 뒷산을 걸어서 하루 1만 보 정도 채우고 있으면 되지. 뭐 그렇게 시시콜콜 사유가 어떻고 들이대시나? 편하게 살아. 걷고 와서 샤워하고 시원한 맥주 한잔 마시면 그게 사는 거지"


맞습니다. 그게 사는 겁니다. 그게 걷는 겁니다.


그래도 내딛는 발걸음에 의미를 부여하면 그 걸음걸음이 더 자연스럽게 되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는 걷기에도 속도를 개입시킵니다. "운동이 되려면 조금 빨리 걸어야 돼"가 무의식적으로 각인되어 있습니다. 경보 선수처럼 걷게 됩니다. 당연합니다. 운동에 초점을 둔 걷기를 하기 때문입니다. 매일 걷기를 하신다면 이젠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사유의 걸음걸이'를 해보시는 것은 어떠신지요? 속도를 조금 줄여보시죠. 속도가 느려지면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산책로 옆에 아직 녹지 않은 눈도 보일 것이고 개천가 버들강아지의 보송보송한 털도 눈에 들어옵니다. 어제 읽은 시의 아름다운 운율도 떠오르게 됩니다. 그러면 몸의 개운함과 함께 머리도 맑아짐을 눈치챌 수 있습니다. 몸 건강도 중요하지만 마음 건강 역시 일심동체임을 말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마스크 때문에 표정을 읽을 수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