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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Feb 01. 2021

마음의 진통제

새벽에 비가 잠깐 내렸는지 출근길 보도가 촉촉합니다. 다행히 출근길 동안은 내리지 않아 우산을 펼쳐들지 않아도 됩니다. 이젠 추위가 다 갔다고 해도 될까요? 모레면 입춘이니 슬슬 봄을 이야기하고 봄을 기다려도 될 듯하지 않을까요? 물론 그래도 아직 추위가 강세일테니 추위를 얕잡아봐서는 안 되겠죠. 올 겨울은 눈 구경도 제법 여러 차례 했으니 겨울다운 겨울을 보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눈이 많이 오면 뭘 하나요? 요놈의 코로나로 집안에 갇혀 지내다 보니 그저 창문 너머 눈 구경으로 자족해야 했으니 말입니다. 골방쥐 뒤주 드나들듯 눈 쌓인 산하를 휘젓고 다니고 싶은 마음 굴뚝같으나 차마 나서지 못했던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눈이 오면 꼭 가봐야 하는 아지트가 있는 사람도 있을 테고 검푸른 겨울바다 모래톱에 쌓인 흰 눈 위를 걸어야 하는 사람도 있을 텐데 코로나 19는 이런 사람들의 마음에 깊은 공허를 남겨놓았습니다. 비어버린 한 겨울의 경험과 풍경을 어떻게 채워 넣을 수 있을까요?


눈에 보이는 신체의 상처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처는 무시되기 십상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까 없는 거나 다름없게 취급됩니다. 마음의 상처는 증명해 보이기도 쉽지 않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 마음의 상처가 신체의 상흔으로 드러날 때가 되어서야 아픔을 눈치채게 만듭니다. 몸과 마음이 공진화하는 생물임에도 눈에 보이느냐 안 보이느냐에 따라 다르게 착각하게 만듭니다.

오로지 착각입니다. 실제로 신체의 상처로 인하여 아픔을 느끼는 것과 마음의 상처로 인하여 아픔을 느끼는 브레인의 부위가 같습니다. 전두엽 한가운데 있는 대상회전측부분(ACC ; Anterior Cingulate Cortex)입니다. 이 ACC가 주의나 반응 억제 및 통증에 관여합니다. 팔다리에 상처가 나서 통증이 있을 때 복용하는 진통제는 상처부위인 팔다리로 가서 진통효과를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이 ACC 세포를 진정시킴으로써 아프지 않은 것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의 상처도 진통제를 먹으면 효과가 있습니다. 진통제가 같은 작용을 한다는 것은 마음의 상처가 발현하고 치유되는 곳도 이 ACC와 연관이 있다는 것입니다. 

브레인이라는 하드웨어는 물리적인 것인지 관념적인 것인지 구분하지 않고 오로지 화학식으로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생각도 '나트륨과 칼륨의 화학적 전자의 이동'이라고 정의 내리면 너무 어려울까요?


하지만 우리 브레인이 작동하는 원리는 '전자의 이동'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기에 신체적 상처와 정신적 상처를 구분하지 못합니다. 다만 그 현상이 눈에 보이는지 보이지 않는지만을 보고 관심을 더 갖는지 안 갖는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처, 사람으로 인한 상처를 신체의 상처처럼 보듬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교통사고로 팔다리에 깁스를 하고 누워있으면 찾아가서 "빨리 나아라" "곧 좋아질 거야"라고 위안을 하면서 이별하거나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은 사람에게는 따뜻한 말 한마디나 위로의 포옹조차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잊어버려" "너만 스트레스받는 거 아니야"라고 위로라고 한답시고 오히려 염장을 지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람으로 인하여 힘들어할 때도 몸의 상처처럼 보듬어주어야 합니다. 따뜻한 배려가 필요합니다. 그 배려는 크게 위해주고 양보해주고 하는 게 아닙니다. 그저 말 한마디 "힘들었지. 오늘은 좀 쉬어" 정도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리고 따뜻이 손잡아주고 포근히 안아주기만 해도 됩니다. 이 따뜻한 말 한마디는 옆에 있는 사람에게도 필요합니다만 나 자신에게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고생했지. 오늘 하루 열심히 잘 살았네. 내일은 더 좋은 일이 있을 테니 힘내고" 위로의 한마디를 건네주시죠. 그래 우리는 그렇게 또 하루 아니 또 한 달을 맞이하는 힘을 얻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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