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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Feb 02. 2021

두려워하고 멀리 했던 것

나이가 들면 들수록 가까이 가는데도 외면하는 것이 있습니다. 감히 두려워 쳐다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가까이 있으면 있을수록 궁금한 것이 인지상정일 텐데 궁금함에도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아니 알고 싶지 않아 합니다. 그러다 보니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내게는 오지 않아야 하고 멀리 있어야만 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김없이 찾아온다는 것조차 알고 나면 더욱 두려워집니다. 어찌해야 할까 잠시 망설이다 급기야 회피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습니다. 누구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게 막아놓습니다. 금기사항이 되어버렸습니다.


바로 '죽음'입니다.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가 종국에는 맞이하고 가야 할 길임에도 우린 두려움의 대상으로 상정해 놓은 덕에 기꺼이 가지 못합니다. 마지못해 갑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라고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래도 갈 수밖에 없는 길이라면 웃으며 가야지 울며 갈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어차피 가야 할 길인데 배웅받지 못하고 갈 필요가 있을까요? 어차피 나선 길인데 환송받으며 떠날 수는 없는 걸까요?


근래에 이 '죽음'에 대한 생각들이 많이 바뀌고 있음을 눈치챌 수 있습니다. 어제 조선일보에서도 '웰다잉을 준비하는 사람들'을 싣기 시작했습니다. 존엄사법이 시행된 지 3년째 되고 있어 '당하는 죽음'이 아닌 '맞이하는 죽음'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사연을 듣는 시리즈입니다. 무의미한 연명의료는 받지 않겠다는 내용의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사람이 80만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가족들에게 피해주기 싫어서이기도 하고 연명치료 거부 서약을 한 뒤 삶이 다시 보이더라는 것이 인터뷰한 사람들의 중론입니다.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너무도 당연한 것을 우리는 이제 눈뜨는 것 같습니다. 늦은 감이 있지만 우리 사회가 보듬어야 하고 널리 전파해야 할 일인 듯합니다.

대한민국 국민 4명 중 3명은 병원에서 사망합니다. 70~80년대만 해도 집에서 죽음을 맞고 장례를 치르는 경우가 많았지만 주거문화가 아파트로 바뀌고 하면서 장례문화는 병원 장례식장으로 옮겨갔습니다. 병원에서 사망하는 많은 경우는 중환자실에서 산소호흡기 등을 끼고 있다가 작별의 말 한마디 못하고 따뜻한 포옹 한번 못하고 새벽 2~3시에 이승을 떠납니다. 얼마나 허망한지요. 이런 죽음의 순간들을 우리는 너무나 많이 봐왔기에 죽음을 회피하는 쪽으로 발전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나는 저렇게 죽지 말아야지 말아야지 하지만 죽는 날을 아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오는 순서는 있어도 가는 순서는 없다고 아무도 모르게 다가오는 것이 죽음입니다. 


그러니 준비해야 하는 게 당연합니다. 걱정만 하고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기꺼이 맞이할 수 있게 준비해 놓는 것입니다.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의향서에도 서명을 해놓고 매년 유서도 작성해서 업데이트를 합니다. 너무 야박하고 매몰찬가요? 그래도 매년 유서를 업데이트하면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답니다. 저도 아직까지 써 본일이 없습니다만 제 지인께서 매년 유서를 갱신하며 마음을 다잡으시는 걸 보고 있습니다. 그 지인 왈, 매년 유서를 업데이트하는걸 자식들도 아는데 자식들의 눈빛이 달라진답니다. 혹시 유서에 유산에 관한 내용이 바뀌고 있을까 봐 그런 거 같답니다. 우스갯소리로 하시는 말씀이긴 하지만 자식들에게 긴장감을 줄 수 도 있어 기막힌 효도 유도 방법일 수 도 있겠단 생각입니다.


네덜란드에는 2007년에 설립된 '앰뷸런스 소원 재단(Ambulance Wish Foundation)'이 있습니다. 말기 환자들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주는 민간 봉사단체입니다. 죽기 전에 꼭 가보고 싶은 곳에, 꼭 만나고 싶은 사람들을 불러서 같이 데려다줍니다. 가족과 친지, 사랑하는 사람과 마지막 이승의 여행을 떠납니다. 이 소원의 현장은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그 아름다움을 지원해주는 단체와 봉사자들의 심성은 또한 얼마나 훌륭하고 아름다운지요. 울음보다는 미소와 행복과 따뜻함으로 세상의 마지막 풍경 속에 함께 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존엄사를 실천해주는 모습이 아닌지요.


우리는 죽음이 나에겐 모든 것이고 남에겐 아무것도 아닌 것임을 압니다. 그래서 드러내기가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젠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병원의 중환자실과 장례식장에서 수없이 거쳐간 사람들을 목도했기에, 쓸쓸히 차가운 병실에서 떠나보내야 했기에 그 전철을 되밟을 수는 없습니다. 사랑하는 가족, 친지, 지인들의 배웅 속에 기꺼이 가는 길이 될 수 있도록 준비하고 마음을 다잡아야 겠습니다. 이젠 기꺼이 장기기증 신청서에 서명하고 연명의료의향서에도 거부의사를 분명히 서약하도록 하겠습니다. 동참하시지요. 기꺼이 맞이하면 두려울 것도 없고 감출 필요도 없습니다. 홀가분하게 기꺼이 맞이할 수 있을 겁니다. 그날이 언제 오던지 말입니다. 혹시 이 글 읽고 119에 신고할까 고민하시는 분이 계실까요? 염려 붙들어 매시지요. 그대보단 오래살테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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