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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hengrin Feb 03. 2021

코로나 시국에도 줄 서있는 식당의 이유

코로나 시국에 점심식사들은 어떻게 하고 계신가요? 타인과의 접촉을 피하기 위해 가볍게 샌드위치나 햄버거를 사서 사무실에 돌아와 간단히 해결하고 점심시간을 쉬시는 경우도 있으실 테고 직원식당이 있는 경우는 메뉴 선택의 고민이 없으니 그냥 후다닥 끼니를 때우는데 의의를 두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저는 회사가 사대문 안쪽에 있다 보니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 직원식당보다는 회사 근처 식당을 찾아 점심식사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코로나 창궐 이후 서소문 인근 식당 중에 폐업을 한 김치찌개 집도 있고 썰렁한 분위기는 계속되고 있지만 특이하게도 이 엄중한 시국에도 줄을 서서 기다리며 먹어야 하는 식당들이 있다는 겁니다. 나름대로 QR코드로 다녀갔음을 인증하고 식탁마다 플라스틱 칸막이도 설치하여 방역에 신경 쓰고 있긴 합니다만 식당 밖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적고 30분 이상 기다리고 있어야 호출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예약도 안 받습니다. 예약을 안 받아 줄 서 있는 모습을 홍보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도 영업전략일 수 있으나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생각됩니다. 예약을 받으면 하루 준비해야 할 음식량이며 모든 것을 맞춰할 수 있어 더 효율적이고, 고객 입장에서도 예약시간에 맞춰가면 역시 시간을 효과적으로 쓸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그렇다고 낮시간 내내 줄을 서는 것은 아니겠지만 12시도 아닌 11시 반만 되어도 줄을 서야 할 정도면 인기 있는 정도를 넘어 꼭 먹어봐야 하는 집으로 등극을 한 것이 틀림없습니다.


코로나 시국에 대부분 식당들이 힘들다 힘들다 하는데 이렇게 줄을 서서 기다리게 하는 식당들의 영업비밀은 뭘까요? 두말할 필요 없이 '맛'이 최우선입니다. '맛'이라는 것이 참 묘한 녀석이라 사람마다 느끼는 맛의 차이는 천차만별일 텐데 '맛집'으로 등극한 식당에서 제공하는 음식들은 관련 음식 중 최고의 맛이라고 평가받습니다. 그런데 정말 최고의 맛일까요? 남들이 그렇다니까 그런 것은 아닐까요? 내 입맛엔 맞지 않는 거 같은데 남들이 좋고 맛있다고 하니까 맛있어 보이는 현상 말입니다. 바넘 효과도 맛에 적용되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집니다. 하지만 맛집이라고 소문난 집에 가보면 맛은 그냥 대중적인 수준이 대부분인 것을 경험해보셨을 겁니다. 정성을 다해 음식을 준비하여 특별하고 진득한 맛을 내시는 곳도 물론 있습니다. 그 정성과 노력을 폄하하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점심 한 끼를 위해 밤새 준비하시고 담아내시는 그 노력은 당연히 존경받고 인정받아야 마땅합니다.


맛과 더불어 식당 종업원의 서비스 태도가 엄청 친절하다는 것도 맛집의 맛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맛집에서 좋은 서비스를 받았다는 인상을 주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일단 손님이 줄을 설 정도로 많다 보니 종업원 입장에서는 일일이 살갑게 대할 수가 없습니다. 매뉴얼화된 정형된 서비스만을 제공하게 됩니다. 물론 친절한 서비스를 병행하여 맛집의 최상위를 점유하고 있는 식당이 있음은 불문가지입니다.

맛집이라고 하는 곳에 줄을 서게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사회심리적 현상을 들 수 있습니다. '맛있는 집' '전망이 좋은 집' 등 SNS에 자랑질을 할만한 곳으로 평가받은 집이면 나도 반드시 가보고 먹어봐야 하는 곳으로 설정되어 버립니다. 남이 하면 나도 해야 되고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보여줘야 합니다. 나도 다녀왔다는 증거를 남겨야 합니다. 가보지 않고 먹어보지 않으면 뒤쳐진듯한 느낌이 강해 참을 수가 없습니다. 맛집에 줄을 서는 이유입니다.


맛과는 상관없이 일단 유명하다는 맛집은 증명사진으로 SNS에 남겨두면 '나도 가봤어'가 됩니다. 친구들과 대화 중에 맛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자연스럽게 대화에 낄 수가 있습니다. 다녀왔다는 자부심도 가질 수 있습니다. 무시당하지 않아도 됩니다.


결국 '맛집'은 사회현상이 빚어낸 신기루가 묘하게 맛과 버무려진 곳일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왜 그럴까요? 한국사회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자아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라는 개념입니다. 우리나라, 우리 가족, 우리 회사 심지어 우리 남편, 우리 와이프라고 합니다. 남편과 아내를 공유하는 문화입니까? 언어로 표현하는 우리의 개념은 그렇게 광범위하게 사용하여 사회 현상으로 표출됩니다. '우리'가 하는 걸 '내'가 해야 하는 걸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언어가 주는 의미의 장에 갇힌다"는 주장은 그래서 설득력을 얻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는 것이 곧 내가 하는 것이기에 남들이 하는 것은 나도 반드시 해야 합니다. 사회를 동질적으로 만드는 데는 효과적이긴 한데 경쟁에 불을 댕깁니다. 교육열에까지 번집니다. 한국사회 곳곳에 이 '우리'문화가 '나'의 존재로 변이 되는 현상으로 스며들어 있습니다. 옆집 애가 피아노 학원에 다니면 우리 애도 다녀야 하고 옆집 애가 동남아 갔다 왔다고 자랑하면 우리 애는 적어도 미국은 놀러 갔다 와야 자랑거리가 됩니다. 바로 '인정 투쟁'입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을 받을 때 자신의 정체성을 얻는 현상입니다. 이 획득된 정체성은 더 높은 인정을 받기 위한 요구를 끊임없이 합니다.


'맛집'이라고 소문난 집에 이 추운 입춘의 날씨에도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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